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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가 Mar 09. 2016

#12. 크락 데 슈발리에

짧은 휴식, 그리고 여정을 위한 재충전 @ 시리아, 하마

요르단에서 시리아로.

2010.08.04. 거친 트래킹과 계속된 국경 넘기로 병이 났다.


요르단의 사설택시로 국경을 건너, 다마스쿠스에서 다시 시리아 북쪽의 도시 하마로 이동했다. 시리아에서 여행하기 좋은 도시로 누구나 추천하는 멋진 도시였다. 이곳에서 나흘 정도 여유 있게 지내면서 이것저것 글도 좀 많이 쓰고 휴식할 계획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계획대로는 되지 않았다.  다시 도진 설사와 복통으로 거의 기력 없이 이틀을 보냈다. 물 때문이었는지, 음식 때문이었는지, 적도에 가까운 땅의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가며 돌아다니니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찾기가 힘들었다. 무조건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 쉬기로 했다. 다행히 쾌적하고 작은 도시, 좋은 조건의 호스텔 방안에서 흐느적거리며 만화책과 소설책을 번갈아 보는 것으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몸이 안 좋은 것을 핑계 삼아 근 3주 만의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국경을 두 번씩이나 건너고 말도 안 통하는 이방인들 사이에서 은근히 긴장했던 것이 드디어 터진 심인성의 요인도 있을 터였다. 이런 줄기찬 설사 증상이 국경을 넘는 날에 터졌다면 정말 어찌 되었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엊그제 만난 한국인 여학생들과 폭풍 같은 한국말 수다를 떨게 된 것이 아마 그 긴장의 끈을 놓게도 했다. 그렇게 풀어진 몸과 마음을 그냥 생각 없이 한 이틀 푹 놓아두고 지냈다. 정말 이제껏 내가 경험한 호스트 중 최고로 친절한 압둘라 아저씨의 배려로 (난 학생도 아닌데) 그녀들과 같이 학생용의 저렴하고 깨끗한 도미토리 방을 아늑하게 쓸 수 있게 되어 휴식에도 더 보탬이 되었었다. 며칠을 방안 출입 없이 화장실만 들락거리는 내 핼쑥한 모습을 보더니 아마도 짐작했을까? 3일째 되는 날 역시 침대에서 뒹굴며 컴퓨터만 만지작 거리는 내게 삶은 옥수수 몇 개를 건네준다. 고마운 압둘라. 그나마 속이 좋아지니 근처의 마켓에서 인도네시아 라면을 사두었던 것으로 끼니를 연명했다.


간신히 일어나 크락 데 슈발리에라는 십자군 전쟁의 중심이 되었던 오랜 성터를 둘러보는 투어에 함께 하기로 했다. 투어에는 멋쟁이 사진작가, 그리고 유럽 여행을 하던 아이들 몇몇이 함께 했다. 이곳이 그 유명한 중세의 격전지라니, 성벽의 틈새에 올라, 또 한번 과거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아보았다. 


아하, 이 오래된 곳에서도 현재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근처 아이들의 귀여운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천년 넘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반복되면 이런 흔적이 남게 된다. 아무리 단단한 돌덩이라도 바다같은 파도가 친다.


물의 도시, 물레방아의 도시, 하마의 아름다운 정경은 내 피로를 곧 날려주었다.  작지만 아담한 도시 하마에서 그야말로 휴양을 했다.  생각 같아서는 한 일주일쯤 더 그 침대에서 뒹굴고 싶었으나, 인생은 짧고, 그 짧은 시간 중 내가 가져온 금쪽같은 시간의 조각은 너무도 작고 귀중했다. 작고 아담하고 편안한 도시 하마에서 재충전한 몸을 이끌고 다시 여정을 꾸렸다. 지난 저녁 밤마실을 다녀오느라 늦잠을 자는 한국인 동생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하마 터미널로 향했다. 다시 혼자가 된 셈이구나. 팔미라는 시리아 중심에서 동쪽에 위치한 유적지로 하마에서 들어가려면 교통의 요지 홈즈를 지나간다. 다른 도시들과 달리 조금 외딴곳이지만 다행히도 한 버스회사가 팔미라까지의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중동의 버스는 정말 쾌적한 편이다. 카드무스라는 회사의 버스를 타고 팔미라 정류소에 내리니,  다시 뜨끈한 오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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