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에서 만난 사람들, 유목민 이야기
유목민 Nomad 이야기: 황무지에서 ‘사람’을 만나다
바위는 차갑고 땅은 뜨거웠다. 빛과 그늘을 번갈아 느껴가며 협곡 곳곳에서 ‘인간’이 살았던 흔적들을 만났다. 협곡을 따라 설계되어있는 수로나 장인의 손길로 정교하고 균형 있게 만들어진 장식 조각들을 지나면 그리고 그 사이를 스쳐가는 바람이 주는 묘한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만 같다. 이어진 길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할 정도로 끊임없이 걷고 또 걸었다. 이런 황량한 황무지 한 가운데서 좌판?을 깔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게 되었다.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의례 만나게 되는 원주민들의 모습이었지만 무언가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한 좌판을 지나치려는데 동행하던 진쟈가 그 좌판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안다고 했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요약하자면, 그녀는 젊은 시절 이 곳 주변을 떠돌며 사는 유목민 베두인 남자를 알게 되었고, 베두인의 삶을 좇아 그를 따라 이 땅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사막에 그 뿌리를 두고 물과 초원을 찾아 평생을 떠도는 유목생활을 하는 그들의 삶을 동경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들을 책으로 담아, 이렇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엇이 그렇게 그녀을 이끌게 된 건지, 삶의 방식에 대한 깨달음이나 신념이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정오가 지나고, 간식을 꺼내 먹으며 바위 그늘에서 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을 걷고 오르다 보니 언덕을 가볍게 올라주는 당나귀에 자연스레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비용의 문제를 떠나서 당나귀는 보기에 왜소하고 뭔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면이 있다. 그렇게 탈 것으로의 당나귀를 거부하며(하찮은 동물이라 여기고 믿음을 주지 않았다는 편이 맞겠다.) 바위를 오르다 어느 중턱에선가 여전히 가뿐 호흡을 달래며 쉬고 있을 때, 친화력 좋은 진쟈가 장사꾼 유목민들과 또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여성의 경우, 남성과 다르게 좀 더 긴장하고 준비하는 면이 없지 않다. 게다가 동양 여성의 경우에는 서구 문화권에서 인식되는 특별함이 있다. 신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동양여성이 가지는 약점은 무시하시 어렵다. 수많은 경고들을 들으며 다녀야 했다. 종종 부당한, 혹은 특별한 대우들에 대해 감내해야 할 때도 많았다. 긴장도를 늦추지 않고, 특히 흔히 말하는 ’호갱님’이 되지 않고자 현지인들의 호객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진쟈를 만나면서, 거칠고 잦은 (뻔히 보이는 바가지 짙은) 호객에도 한결같이 웃음으로 가끔은 농으로 되받아치는 그녀의 여유에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항상 - ‘오~ 미안해~ 난 그거 필요 없어~ 담에 와서 살게~’. 매번 활짝 웃으며 이렇게 친구처럼 화답했다. 무리의 장사치가 나를 부를 때, 긴장, 혹은 짜증 섞인 얼굴로 ‘No!!’를 외치며 빛의 속도로 그들을 경계하며 지나치려 애썼던 나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서너 시간 그녀와 함께 다니며, 여행이란 것에도 무언가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동안 여행지의 사람들을 대했던 나의 경직됨에 화끈거림을 느꼈다.
뜨거운 황무지 벌판에서도 진쟈는 당나귀를 끌며 관광객 대상으로 장사하는 베두인 청년들과 여유를 보여주었다. 어느새 나도 그들과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첫 대화는 그들의 호객에서 시작하였지만, 어느 새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여동생, 그들의 가족의 삶, 베두인의 생활들에 대해 생각을 나누며 한참을 함께 걷고 있었다. 그들은 일을 하는 것인지, 즐기는 것인지 모호할 정도로 쾌활했다. 덕분에 햇볕 아래 땀범벅인 바위산 트레킹 코스가 가볍게 중턱을 넘어가고 있었다. 씩씩하게 걷고 있었지만 바위가 조금 가파르게 변하니 갑자기 베두인 청년들이 그들의 생계수단인 당나귀에 다시 타라고 했다. 덧붙이기를 ‘친구에겐 장사하지 않아, 그냥 타면 돼~’. 나의 헤비한(!) 무게가 당나귀에게 너무나 가혹할 것이라 거절했더니 걱정 말라고 친절히 에스코트하며 태워주었다. 생전 처음 타보는 당나귀의 몸짓이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았고, 불쌍한 동물들에게 약간의 동정심이 일었지만 ‘친구’의 호의를 물리치지 않기로 한 우리는 흔쾌히 즐기기로 했다.
산기슭의 한 귀퉁이에 최소한의 살림을 위한 소박한 집터, 곳곳의 절경들을 함께 보았다. 나중에 베두인의 삶을 찾아보니 아랍인의 특성에 유목민의 특성이 더해져 손님에게 극진히 환대하는 문화라고 했다. 그들 중의 아주 일부를 만난 것이라 일반화하긴 어려울 테지만, 이런 황무지에서 진짜 이곳에서 진짜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기에 <소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악착같이 물질을 모아가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 특히 물건과 공간에 집착이 좀 심한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삶을 영위하는 유목민들의 삶은 대조적이라는 말이 힘들 정도로 충격에 가까운 면이 있었다. 이들의 삶은 사실 이제는 정말 희귀할 뿐이고, 이들 스스로도 그들의 문화를 이어가는 것이 소수에 불과하단다. 그들 조차도 그들의 삶의 방식을 놓고 갈등하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소박하게 주어진 삶을 지켜나가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한참을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장사를 하러, 우리는 남은 트래킹 코스를 완주하기 위해, 아쉬운 작별을 했다.
한 두 시간 더 열심히 오르니, 페트라의 가장 장관, 하루 코스의 "마지막 보물"에 도착했다.
높은 고도만큼이나 주위를 조망하는 파노라마도 굉장했지만 그 옛날, 이 높은 곳까지 올라 기둥을 조각했을 노동과 그와 비례하여 그 노동을 수행한 사람들이 가졌던 미적 가치에 대한 숭상이 고고하게 전해졌다. "마지막 보물"의 맞은편엔 동굴처럼 그늘을 만들어 땀을 식힐만한 휴식처가 있었다. 카페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그 자리를 맴돌고 맴돌며 햇빛이 사그라들 오후가 되어서야 발걸음을 돌려 하산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