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속 화려한 도시이야기 - 페트라
2010.08. 01. 07시. 아카바에서 와디 무사로
중동 여행 중 13일차의 기록.
일찍 눈을 떠 아침 먹을거리를 사러 슈퍼마켓에 들렀더니, 동양인을 신기하게 보는 주인이 이것저것 묻는다. 일요일이라 시외버스가 제시간에 갈지, 아닐지 알 수 없다는 동네 아저씨의 조언을 듣고 걱정스러운 터였다. 못보던 희귀인종이 어물쩡 거리고 있으니, 동네 사람들끼리 신기해하며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수퍼 아저씨의 소개로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현지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예상 택시비의 1/4가격으로 흥정한다. 의심의 관문이 필요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렇게 여행을 다니다 보면, 믿어도 될 것 같은 상황과 그렇지 못한 불안감이 본능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그렇게 만난 요르단 커플과 몇 시간의 카풀을 하기로 했고, 바로 떠나야 한다며 허겁지겁 호텔 체크아웃을 마친 뒤 그들과 합류했다. 이름을 기록해놓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처음 만난 요르디안들은 새로 뽑은 현대자동차를 매우 자랑했고, 뭐 덕분에 한국과 요르단의 이모저모를 비교하며 심심치 않을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 오가는 수많은 트럭, 승용차들의 30%정도가 한국차였기에 당연히 대부분의 주제는 한국의 평균 월급, 물가, 자동차 가격, 자동차의 종류 등이었다. 여행 중간에 과일도 나눠먹으며, 경치 좋은 곳에서 잠시 쉬며 기념촬영까지 도와주었다. 땅넓은 요르단의 황무지 벌판,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한국 기업들이 큰 역할을 하며 진출해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여행을 계획하지 않았다면, 요르단이란 나라가 어디 붙어있는지 조차 관심도, 조금의 지식도 없었을 거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황무지를 개척하며 무역을, 산업을,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역시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살아온 어리던 젊은 날들을 깨닫게 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원에 대해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고 있고, 그들의 (다소 보수적이라 느껴지는) 문화에 대해서도 그 전통의 힘과 율법이 그들을 지켜오고 있다는 것에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도로를 가로지르며 지나쳐 보긴 했지만, 동경하던 와디럼의 붉은 사막은 내가 처음으로 눈에 담아본 첫 황무지의 파노라마가 되었다. 차마 그 황무지로 달려들어갈 생각을 그때는 미처 하지 못했다. 흔한 관광지를 찾는, 흔한 여행자의 태도와 마음가짐 이상은 없었기 떄문일 것이다.
친절한 요르디안들은 와디무사의 호스텔 앞마당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들은 수도, 암만까지 가는 길이었다. 암만에 들러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정을 담아 전화번호까지 전해 준다. 이슬람인들은 율법에 의해 손님을 극진히 예우해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역시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슬람의 율법이나 태도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던 터에 흘려들을 수밖에 없었다.
무턱대고 와디 무사의 제법 유명한 호스텔에 짐을 내렸다. 다행히 다인실의 도미토리에 빈 침대가 있었다. 2박을 예약하고, 식사도 신청해놓고 나니 긴장감이 풀려 완전히 쓰러져버렸다. 다들 이미 일찍 투어를 나갔고 빈 숙소에 나홀로 남았다. 한 방에 침대가 10개이상 빼곡이 들어차있다. 창문 너머로는 멋진 바위산의 전경이 멀리서 보인다. 한여름의 중동, 사막지대 한가운데지만 고도가 높은 탓인지 공기가 텁텁하진 않다. 죽은 듯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한 일본인이 옆자리에 짐을 풀고는,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며칠만에 만난 동양인에 반가워 동행으로 따라나서려는 마음 보다 무거운 다리가 더 강력히 반응했다. 도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남은 오후 일정은 첫 대면한 페트라의 웅장한 모습을 창밖의 원경으로만 감상하기로 했다.
도대체 저 황무지 바위산에 뭐가 있길래 이 먼길까지 사람들을, 나를, 오게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