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카이로의 이모저모
#1. 카이로 :
2010. 07. 29. 드디어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입성하다.
인천공항에서 이집트로 날아온 지, 1주일은 된 것 같은데, 이제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들어간다. 아침 일찍 카이로 이동 계획이 있는 여행자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은행원이라는 두 명의 아가씨들은 짧은 휴가를 얻어 카이로에 먼저 들어왔던 터라, 그녀들에게 의지하는 마음도 있었다. 성격 좋은 두 아가씨들은 버스로 가는 내내 버스 여행 이후 택시잡기, 시장에서의 쇼핑 공략법 등, 이집트 여행의 각종 팁을 전수해주었다.
(후르가다에서 카이로로 올라오는 장거리 버스 : 나름 간식도 주고, 깔끔)
여행자들이라면 '이집트의 택시'엔 할 말이 무척 많을 거다. 동행했던 친구들도 카이로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집트 택시기사와 (바가지스러운) 박시시!(팁 문화)의 행태에, 누가 질세라 열변을 토했으니. 첫 카이로의 그 택시 탑승에 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흥정을 충분히 할 것. 요금을 반복해 얘기할 것. 꼬임에 넘어가지 않을 것. 내릴 때, 잔돈을 계산해 지불하고, 확인할 것. 등등 다짐에 다짐을 반복했다.
곧 우리가 잡아 탄 택시는 미터기가 있긴 했으나 영~ 믿을 수 없는 과거의 유물처럼 역시 고풍스러웠다. 역시 우리의 택시기사는 목소리 큰 전형적인 이집션. 그래도 이미 카이로의 여행객으로 며칠 선배 격이었던 일행은, 쉽사리 그들에게 넘어가지 않고 잘 받아치는 모양새가 재밌었다. 자신의 이름이 '모하메드' 라니, 기사에게 동행하던 아가씨가 농을 보탠다. 아마 이집트식 농담에 물이 꽤 들었던지.
"내 친구도 모하메드야" (그녀 말에 의하면, 이집트에서 만난 사람 중 30%가 모하메드 인 것 같단다.)
대충 던진 농지거리에 응수하는 기사도 한 수 위.
"아~ 그래?, 그럼 우리도 친구지!"
헐.
그렇게 쉽게, <프렌즈>가 되었다.
"프렌즈니까 택시비도 좀 깎아줘"
"아~~~ 물론, 물론~"
결국, 받아야 할 금액을 다 받은 건지, 우리를 위해 기분 좋게 깎아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결과는 해피.
숙소에 다다르니, 꼬마 숙녀가 아르바이트로 '엘리베이터 걸'을 하고 있다. 버스에서 받은 음료수를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더니, 머물던 기간 내내, 우리는 그녀에게 VIP가 되었다. 특히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이쁜 소녀. 오고 갈 때마다 환하게 웃는 것이 여행객들에겐 최상의 서비스였던 걸, 그녀도 알까.
칸 엘 칼릴리 시장 Khan el Kalili의 이집션들
동행하던 친구들은 다음 날 출국을 앞두고 있어, 기념품을 구입하기 위해 카이로 칸 엘 칼릴리 시장 Khan el Kalili에 함께 들르기로 했다. 이집트의 명소답게 꽤 번잡한, 마치 서울의 남대문 시장과 같은 규모와 떠들썩함이 비슷했다. 여기도 역시 호락호락 관광객을 쉽게 보내주는 법이 없는 호객행위로 유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카프 한 장을 사려다 몇 분째 얘기 중이다. 넌 어디서 왔니. (한국말 인사 몇 가지 시전). 결혼했어?. 등등. 노닥거리다 호객에도 굴하지 않고 흥정만 하다 나왔지만 이들의 호객에 뒤끝이 없다. 보통 흥정을 오래 하다, 구입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리는 손님들의 뒤통수에 꽤 비난의 눈초리를 쏘아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환한 표정으로 잘가라는 인사를 보태주니.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랄까.
이 시장엔 '조르디'라는 souvenir shop도 유명했다. 대강 로고만 바꿔 찍어놓은 열쇠고리나, 머그컵 같은 것으로 꽉 차 있는 것에 비해, 이들은 '이집트'만의 특화된 상품들을 팔고 있어 입소문이 나 있었다. 예를 들면, 상형문자를 활용한 액세서리, 미라 형태의 필통, 파피루스, 이집트 벽화 디자인의 지갑 등등. 태어나서 처음 보는 형태의 상품들이 즐비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났다.
이곳 조르디 역시 한국 여행객들을 많이 다뤄본 솜씨다. 능숙한 한국말 인사와 농담이 닳고 닳은 느낌이었으니, 이것 저것 상품을 고르고, 반지를 맞추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이들은 결코 손님을 심심하게 두지 않는다. 신상 및 호구조사 실시는 물론이고, 본인은 결혼을했지만 한국에 가지 말고 세컨 와이프를 하라는 둥, 말도 되지 않는 농담으로/ 그러나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껏, 손님을 상대하는 요령이 있다. 실크로드를 다녔던 그들의 장사 문화와 상술을 대대손손 이어받고 있었던 걸까.
여러 재미난 것들이 많았지만, 필통, 그리고 알파벳을 상징하는 상형문자 도안자, 내 이름을 새긴 은반지와 앙크/생명의 열쇠라 불리는 표식이 있는 열쇠고리와 반지를 구입했다. 이 열쇠 같은 문양은 룩소르에서 투어를 할 때 정말 많이 눈에 띄었던 상형문자인데 신들이 손에 쥐고 있기도 하고, 죽은 자를 심판하는 열쇠이자, 이집트인에게 "힘"이나 "건강", 생명을 의미한다고 했다.
만담과 같은 쇼핑시간을 마치고, 케밥으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재빠른 손놀림과 조화로운 맛으로 저녁식사도 성공! 동행하던 친구들과도 이제 작별, 서로의 축복을 빌며. 안녕~
# 2010. 07.30. 카이로에서의 자유로운 하루
온전히 카이로의 하루를 홀로 즐겨보기로 했다. 택시로 다니는 것도 재밌지만 지하철이 꽤 발달한 카이로는 홀로 여행객들에 적절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M이라는 큰 사인으로 전철역을 표기하고 있었다. 카이로의 지하철은 대체 어떨지 온갖 궁금증을 더해, 탐험을 시작했다. 무척 더운 날들이었는데, 지하철에 '그래도' 선풍기가 있었고. 다행히 역사와 거리 표기는 아랍어와 영어가 병기되어 있었다.
차량에 따라 "ladies" 전용칸이 있어 신기하기도 했다. 어느 구간에서, 갑자기 꼬마 소년이 여성전용칸으로 뛰어들었는데, 과연 이 소년이 어떻게, 얼마나 버티고 갈 수 있을까 지켜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억세뵈는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윽박질러 소년이 다음 정거장에서 쫓겨났고, 역사에서는 제복 입은 자에게 잡혀 혼이 났다. 빽빽한 일반 차량에 비해, 여성 칸은 자리가 넉넉하여, 그 소년에겐 꽤 유혹이었나 보다. 이렇게 여성 전용 칸이 있다는 것은, 여성을 보호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고, 여성 전용이 아닌 경우의 위험?이나 문제 상황? 이 예상될 수밖에 없는데?! 더 조심해야 하는건가? 나의 고민과 다르게 전철에서 관찰했던 이집트 여성들은 서구화가 제법 진행 중인듯 히잡을 두르지 않은 행색의 '신여성'도 눈에 띄었다. 굳건히 그들의 문화를 지키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컸다. 쉽사리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일 듯.
이슬람 도시에선 흔히 보이는, 아잔 소리에 따라 철저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예배의식마저 남성들의 전유물이다. 여성들도 모스크에 방문하긴 하지만 예배를 주도하는 건 남성 위주다. 이를 깨치는 시도도 있다고는 했지만, 그들의 율법이 생각보다 꽤 단단하고 강한 사슬로 엮여져 있음이 안타까웠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지만, 카이로에서 지내는 내내, 시내 곳곳 '종교에 의해 속박받지 않고 살아온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감사하고도 당당히 누리며 도시를 휘젓고 다녔다.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카이로의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은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유산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겉모습의 단정함에 비해, 내부의 유물들은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방치되어' 있다. 널브러져 있는 돌조각이 그렇게 안쓰러운 적이 처음일 정도. 대학시절 석조하던 선배들의 작업장만큼이나 산만했다. 시간만 허용된다면, 대신 정리를 해주고 오고 싶을 정도였으니. 이들이 꽤나 그들의 문화에 자부심이 강하고, 관리를 하고 있으리라 예상했건만,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메트로폴리탄 같은 곳에 유물을 뺏긴 것에 대해, 할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관리상태를 보니 불쌍할 지경이다. 이후에 리모델링을 한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아랍의 봄>(2010. 12월 이후) 이후, 반정부 시위나 폭동, 정치적 어려움 등으로 더욱 어려워졌을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그 <아랍의 봄> 바로 직전,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직접 본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일까.
그들은 그렇게 밝고, 즐거웠는데.
ps. 아라비아 숫자
시내를 다니다 보니, 말로만 들었던 '아라비아 숫자'와 마주칠 때가 많았다. 이 아라비아 스타일로 표기된 시계를 보니, 재밌었다. 물론 차량의 번호나 버스표 등에도 이런 아라비아 숫자가 표기되긴 했지만, 우리가 쓰는 서구식/유럽식 아라비아 숫자가 병기되는 경우가 있었고 실제로 '읽어야' 하는 일이 많지 않았는데, 시내를 활보하다 보니 종종 이 숫자를 만나게 되고, 본격적으로 중동의 문화에 들어온 것이 실감 났다. 우리가 흔히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고 쓰는 일반적인 012345와 같은 숫자가 아닌, 전통적, 고유의 표기방식을 사수하고 있었다. 이 숫자들도 사실은 인도-힌두의 것이 흘러와 변형된 것이기도 하고, 동양에서는 한자로 병기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차이만 있을 뿐, 당연한 일인데, 이런 문화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숫자 쓰기가 만국 공통어라 생각했던 인식의 오류를 깨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큰 깨달음을 주긴 했지만, 어쨌건 이 아라비아 숫자를 어렵지만 익혀야 하는데, 꽤 헷갈려서 앞으로의 여행에서 자주 확인할 필요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나마 이들이 10진법을 쓰는 것만도 감사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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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걱정과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본 2010년의 카이로, 이집트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남아있고, 오랜 전통이 묵어있는 활기찬, 멋진 도시임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