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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가 May 04. 2021

#22. 사하라 3

사막 여행의 참맛

2012. 01. 낙타와 함께, 샌듄으로 들어가다.


드디어 한 명씩, 줄에 묶여 조신하게 앉아있는 낙타들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동물의 등에 올라 체험해보는 잠깐의 경험은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낙타와 여행을 해야 한다니, 아니 낙타에게 나를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무척 두근거렸다. 보기에도 낙타는 불뚝 솟은 봉과 봉 사이에 앉을자리가 만들어져 편안하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살아있는 동물의 등에 타 오른다는 건 어찌 되었건, 마냥 안락한 좌석은 아니었다. 그나마 말에 오를 땐, 특화된 안장이라는 도구가 있어서 몸을 잡아주고, 당나귀의 경우는 몸체가 작고 높이도 낮은 편이어서 움직임에 대한 반응 조절(?)이 쉬운 편이라 할 수 있었는데, 낙타는 달랐다. 낙타는 오히려 솟은 등뼈덕에 등판이 넓지 않으니 골반을 지지해주기 위해 담요를 여러 겹 깔아 자리를 만들어야만 했고, 무척 딱딱한 편이어서 받쳐줄 쿠션이 없다면 덜컹거리는 움직임에 엉덩이가 피멍이 들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다행히 낙타는 생각보다 꽤 순한 동물이라, 가끔 길고 척척한 혀를 날름거리며 질금거리는 입모양이 우습기도 했지만 별 사고 없이 우리를 실어나르는 막중한 임무를 다했다.


낙타에 오른 일행은 드디어 행군을 시작했다. 우리가 묵을 사막 한 가운데 어느 스팟으로 한 시간여 정도 이동이라고 했다.


오후 4시, 해가 조금씩 기울어가며,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붉은 흙과, 바람, 하늘과 태양밖에 없는 진짜 사막 위에 선명하고 긴 무리의 그림자는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멋진 색면의 대비였다.


일몰이 시작되기 직전, 태양이 사막을 건너는 우리를 고스란히 비추었다.

오렌지 빛 땅이 가진 색면 뿐 아니라 바람이 만드는 모래조각은 말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아름다운 질감을 보여준다. 바람이 우연히 만들어낸 모래 주름의 일정한 간격과 변화, 그리고 율동미는 감동적이다. 모래 언덕을 넘고 넘어도 반복되는 모래산의 에지 있는 곡선, 그리고 그 표면에 잔잔히 흐르는 주름의 미학은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영역이기에, 더욱 경건하고, 위엄이 있었다. 해가 넘어갈수록 그 굴곡이 더욱 진해지고 강렬해지며 감동의 순간들이 찾아왔으나, 모래바람은 더욱 거칠어졌다. 바람이 미세한 모래 알갱이를 온몸에 접착시켜 내보인 피부 표면마다 무섭게 달라붙는다. 생물체의 수분을 온통 빼앗는 모래는 떼어내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조금 더 오랜 시간 이 곳에 그대로 서 있다면, 점점 더 모든 표면에 모래가 달라붙어, 흙이 되고, 그대로 생명의 조건을 다 빼앗겨 말라버린 채 나도 주홍빛 모래 알갱이가 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일 정도였다.


가이드 베르베르 인은 낙타를 타지도 않은 채, 걸어서 우리를 인솔했다. 사막에 사는 유목민 베르베르 인들은 나침반도 없이, 감각적으로 방향을 틀어 우리의 야간 캠핑 장소로 이끌었다. 드디어 커다란 텐트 몇 동이 세워진 모래 언덕 아래에 다다랐다. 어느새 빛이 조금씩 사그라들어 주변은 온통 어둠이 내려앉아, 보이는 것은 까만 하늘과 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밤이 되었다.


캠프에 이미 마련된 큰 천막은 3동으로 우리 팀을 3그룹으로 나누어 천막에 짐을 풀었다. 한-중-일 아시안 그룹이 1팀으로 오랜만에 합숙하는 엠티에 온 기분이다. 밤이 오니, 기온은 더 떨어지고, 천막엔 담요가 여러 겹 깔려있었지만, 여전히 쌀쌀한 기운을 내치긴 어려웠다.  저녁으로 준비해 준 닭고기, 야채와 같이 찐 요리로 나누어 먹고, 메인 천막에서 여흥을 시작했다. 가이드인 베르베르 인들이 몸소 보여주는 연주와 유머러스한 농담을 서로 주고받으며 민트 티를 마시는 밤의 행사였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운전과 가이드, 낙타 인솔, 저녁식사 요리, 악기 연주와 노래까지, 아무래도 극한 직업 중 하나인 듯, 다양한 장기들을 선보였다. 전통 악기처럼 보이는 타악기로 내용을 알 수 없는 그들의 노래를 불러주고, 흥에 오른 우리 팀 일본인 겐은 그에 대한 답가로 노래와 기이한 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웠다. 그의 요상한 춤에 모두 깔깔거리며, 가이드 베르베르인의 '오빠야', '대박'과 같은 한국어 농담에 맞장구도 쳐 주며, 아득히 깜깜한 사하라의 어느 밤을 지내고 있었다.


세상천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서 꽤나 시끌벅적 요란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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