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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가 Feb 27. 2016

#1. Luxor, 고대 문명을 찾아서

나일 강의 상류- 룩소르로 들어가다 : 중동 여행의  첫날

중동 여행의 시작 : 2010.07.24. 중동 여행  첫날을 기념하며


 떠나기 전, 중동 여행 계획을 얘기할 때마다 다들 모종의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터키 여행 때문이었는지 내게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선입견이 희석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말하는 각오라고 할만한 것도 뭐 대수롭지 않았다.  밟아보지 않은 땅에 대한 두려움, 겪어보지 않은 사회에 대한 공포와 같은, '떠나고 싶으나 떠날 수 없는' 이유라 할 만한 것이 별로 없기도 했다. 오히려 사람들이 말하는 '두려움'의 대상보다, 나에게는 흥미를 잃어가고 매일이 비슷비슷 흘러가는 단조로운 내 일상이, 영원히 반복될지도 모를 행위가, 그리고 굳어지는 뇌가, 가장 겁나고,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었을 거다.


Luxor :

나의 타깃, 첫 도시로 계획했던 곳은 이집트의 남부에 위치한, 룩소르였다. 역사 속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대 문명이 번성했던 도시.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조사를 하지 못했고, 겨우 알고 있는 정보라는 것이 이문열의 소설 람세스와 만화 람세스에서 얻은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람세스의 도시라는 판타지만으로도 목적지가 될 이유는 충분했다. 나일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이동하는 코스는 룩소르에서 출발하여 수도 카이로로 들어가게 되어, 수도에서 지방을 오가는 여행길을 단축할 수도 있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룩소르'라는 너무 멋진 어감 때문이기도 했다. ‘빛'을 의미하는 어근 lux- 그 빛이라는 어근을 이름으로 갖고 있는 luxor-참으로 멋진 지명이 아닌가. 지명만으로 호기심에 들뜨는, 참으로 즉흥적이고도 단순한 인간이라니.


Lucky, the first day :


중동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카타르의 도하를 경유했다. 밤늦게 떠나는 비행 편은 오랜만이었는데, 그간 업무로 찌들어 몸과 마음이 피곤했었고, 기내에 오르자마자 쓰러질 생각이었다. 그러나 운 좋게도 간혹, 아주 드물게 발생한다는 항공사의 예약초과 혹은 실수로 나를 포함해 몇 명이 ‘좌석 승급’이라는 멋진 선물을 받게 됐다. (카타르 항공 만세!) 난데없는 행운에 흥분된 상태로 비즈니스석을 즐기게 되는 바람에 10시간이 넘는 인천-도하행 구간은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잘 차려진 정찬과 여성용 화장품 세트, 트레이닝 복 등을 선물 받고 편안히 누워서 각종 영화들을 보며 언제 또 누릴지 모를 호사를 맘껏 즐겼다. 게다가 옆자리에서 같은 행운을 누리게 된 영국 아가씨는 나보다 세 배쯤은 더 들떠있었다. 거제도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한다는 이 아가씨는 비즈니스 석의 온갖 서비스를 200% 누리며 파티 같은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렇게 당당히 서비스를 즐기는 그녀의 적극적인 마인드 덕에 나 역시 그녀와 샴페인 잔을 부딪히며 동급의 행복감을 맛봤다.

 

가끔 살다 보니 이런 알듯 모를듯한 행운(공짜 티켓이라던지, 여행, 경품 등등)을 많이 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철없을 때는 이런 것에 그저 마냥 신나고 행복했지만 지나고 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설명하기 힘든 찝찝한 기분이 맴도는 것을 물리치기가 힘들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 give와 take가 공존하는 절대 불변의 인생의 법칙을 깨달아가고 있어서일까. 하지만, 이후의 일들은 차치하고, 이런저런 들뜬 기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덕택에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스란히 깨어있던 상태로, 중앙아시아를 건너 룩소르로 들어갔다.

 

룩소르 공항의 외벽,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외벽보다 너무나 '쿨'한 디자인!



hot, hot, luxor :

룩소르는, 더웠다. 정말, 뜨거웠다. 핫, 이라는 한 단어조차 내뱉기도 힘들 정도로 처음 경험해보는 더위였다. 40도에 가까운 적도 근처의 강한 열기는 경험하지 않았다면 함부로 말할 것이 못된다. 경유지로 내린 도하에서도 사막의 열기를 살짝 맛볼 수 있었지만. 룩소르 공항의 누런 땅덩이에서 몰아주는 뿌옇고 더운 열기에 첫날부터 기가 죽었다.


어쨌든 더위를 뚫고 도시로 들어가야 할 터. 공항에서 과한 친절을 보이며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몇몇 이집트 인들을  제치고? 출국 수속을  끝내자마자 (무사히) 나왔다. 둘러보니, 모두가 그룹 여행자들이고, 현지인인듯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홀로 여행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대부분의 그룹들은 이집트 비자를 받기 위해 창구로 줄을 선다. '중동 여행'이라는 드문 이벤트를 준비하며 나름의 부지런을 떨었던 나는, 출국일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서울의 이집트 대사관까지 가서 멀티플 비자를 받아온 터에 의기양양, 홀로 여유롭게 출국장을 나섰다.



주한 이집트 대사관에서 받은 이집트 비자와 입국도장


bakusici 박시시 :

첫 도시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헛짓하기 쉽다. 대개 어버버 한 상태로 공항-시내-숙소로 들어오는 경로에서 놓치게 되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또, 이집트 사람들의 '박시 시'’ 문화는 악명 높았다. (bakusici - 일종의 서비스 요금, 쉽게 말하면 팁을 의미한다. ) 나 역시도 꽤 노력은 했건만, 멍한 기운에 피곤이 겹쳐선지 짐꾼에게 1달러나? 박시시로 강탈을 당하고도  긴장을 하지 못했다. 숙소로의 이동도 아슬아슬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50p라는 ‘적절한’ 박시시 (서비스 요금)를 내고 내렸다. 첫 도시의 어리숙한 여행자가 치른 배움 값 치고는 크게 손해는 보지 않은 건가.


떠나기 전 2-3군데의 숙소 정보를 메모해두고, 현지에서 숙소를 선택하기로 했다. 오전에 이 도시에 도착하면 시간이 여유로우니, 슬슬 다니며 골라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메모해 두었던 대부분의  영문주소는 택시기사가 읽어내지 못했고,  오로지 그가 알아본 한 주소- (한인 숙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주소지에 근접한 장소에 내리긴 했으나, 아랍어엔 까막눈인 여행자로서 또다시 난감함에 봉착했다. 먼지 휘날리는 골목에서 꼬부랑 아랍어 주소 간판을 두리번거리는 동양인이라니. 나를 신기해하던 현지인들이 여럿 달라붙어 겨우 숙소를 찾았다. 이제까지 살아오며, 꽤나 독립적으로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집도 못 찾으니 난감한 노릇. 그래도 적도 근처의 이 땡볕 오후에 긴 시간을 길에서 허비하지 않고, 운 좋게 아주 작은 간판을 내건 한인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편한 인상의 주인장과 인사로 체크인을 대신한 후 무작정 침대에 누웠다. 숙소 분위기는 가정집처럼 편안했고, 짐을 내려두고 나니, 비로소 한시름 놓아진다. 람세스의 도시, 룩소르라니. 공간이동이라는 거친 일정을 마친 대견함에 잠시 감동하다가 중얼거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마치 고대의 시간 속으로도 빠져든 타임머신을 경험한 순간 같았다.

 

나일강, 여행자들과의 만남

 너덧시간 자고 일어나 보니, 어느새 시끌벅적한 게스트 하우스. 새로 온 손님들, 주인장 커플 내외, 등등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중, 한 아가씨의 제안에 따라 보트 투어를 나가기로 급 모의를 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한국인들만 묵는  게스트하우스가 처음이라 (잠들기 전엔 타임슬립 같았건만) 마치 이집트는 고사하고 대성리 엠티에 온 것 같은 이런 분위기에 다소 적응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무엇보다 이집트는 처음이고, 해지는 나일 강 투어도 꽤 멋질 것 같아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콜택시를 불러 모두 끼워 타고, 주인장이자, 우리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된 k 씨를 따랐다.


이집트 전통 배인 펠루카는 돛을 달고 바람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데, 바람이 없어 대신 모터보트에 올랐다. 해 질 녘의 나일강은, 수천 년 흘러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고, 소설, 신화, 역사 속에서만 상상하던 그 세월과 가라앉아 묻혀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강을 따라 반짝이며 흘러가는 모습에 가슴이 벅찼다. 이집트, 정말 황량한 땅의 모습을 상상하며, 온통 사막일 거라는 환상을 품고 왔는데, 이렇게 큰 물줄기가 나를 반기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역사가 시작되었던 바로 그 강물은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느낌이었다.  몇 천년의 세월이 담겨있을, 세상 어느 곳보다 무겁고도 짙은 강물 같은 석양의 나일 Nile이었다.


 15분쯤 강을 거슬러 바나나 섬이라는 곳에 잠시 정박했다. 섬에는 강변을 배경으로 작은 카페가 차려져 있었고,  차이를 한잔씩 하며, 새로운 곳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끼리 이집트와, 여행과, 사랑과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며 밤을 맞았다. 바나나 섬에서 나일강의 멋스러움을 한껏 즐긴 우리는, 흥이 올라 룩소르에 살고 있는 아일랜드 부부가 운영한다는 펍으로 이동했다. 고향을 떠나 이 먼 곳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펍의 사장 커플이나,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K 씨, 스타일리시한 체육선생님 A, 학회의 나머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의사 친구들, 등등 세계 각처에서 제각기 떠나온 사람들이 이 작은 펍에서 빌리 조엘을 합창하고 함께 잔을 부딪히며, 모두의 여행길을 응원하고 행복을 소망했다.




황무지를 찾아, 거친 모래바람을 맞으러 야심 차게 떠나왔는데,

이렇듯 풍요로운 물줄기와 사람들이 나를 맞았다.


두 주먹 불끈 쥐고 가열하게 각오하고 떠난 여행길인데, 지구 반대편 즈음으로 온 느낌이 아니라, 홍대 어느 지하 구석의 클럽으로 다시 돌아온 느낌을 받다니, 조금은 억울한 느낌도 들었지만, 앞으로의 여행길을 축복하는 듯한 일종의 세리머니를 함께한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룩소르의 밤하늘 아래에서 정말 오랜만에 목청 높여 서로를 환대하는 환영식을 가졌다. 모두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심을 다해 노래하고 웃어주었다. 밝게 빛나던 룩소르의 첫날밤의 기억은 그렇게 황홀하게 흥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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