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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가 Feb 17. 2016

사막을 그리다

<시린 사막, 2016> 

intro


  내가 상상하던 ‘사막’은,  모래산이 펼쳐져 있고 낙타와 그를 끌고 가는 사람의 이미지가 대비되어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막의 이미지, 딱 그것이었다. 사막/desert 란 용어는 마치 서구인들이 만들어 낸 오리엔탈리즘의 환상같은, 가상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책과 그림, 영화 등에서 단편적으로 취할 수밖에 없는 '사막의 이미지'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처럼, 단순하고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정보의 전형일뿐이었다. 우연히 내가 첫 사막을 만났을때 겪었던 충격때문이었을까. 내가 가졌던 환상 속의 실체의 형상을 또렷이 도려 내보고 싶은 이상한 궁금증이 조금씩, 계속해서 차올랐다. 기묘한 땅. 길을 찾을 수 없을 듯한 광활한 모래밭이지만 오아시스를 찾아내는 그들만의 길이 존재하며, 생명이 살 수 없을 만큼 건조하고 척박한 땅이지만, 문명이 펼쳐졌다는 신비로움도 가득한 공간 - 내가 만난 첫 사막은 그랬다. 그렇게 내가 만난 '미지의 모호함'은 이상한 에너지로 가득 차올랐다. 어쩌면 이를 해소하고픈 욕망에서 길을 떠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미 사라진 문명,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황무지, 사라진 곳에서 소멸된 왕국을 상상하고 직접 확인하려는, 약간은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그 이상한 공간을 하나씩 증명하며, 풀이가 복잡한 수학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괴상한 성취감을 맛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이집트의 바하리야, 그리고 람세스의 땅,
      요르단의 페트라, 

      시리아의 팔미라, 
      모로코의 사하라, 
      
우유니의 새하얀 소금사막.

      아타카마의 거친 모래 사막,



  사실, 처음부터 굳이 ‘세계의 모든 황무지를 정복하겠어!’라는 목표를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이라도 ‘어떠한 대상’에 깊이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그 깊이감에 홀린다는 기분을 알까. 블랙홀처럼 무언가를 빼앗기듯 몸과 마음이 휩쓸리는 일. 그 기억이 틈틈이 올라와 견딜 수 없어 또 빠져드는. 그저 저절로 그렇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단편으로 흘려보낸 기억들과 자라나는 생각의 타래는 거의 반자동적으로 저들끼리 엮이고 있었다. 황무지가 지평선까지 이어진 벌판에는 공허와 실재의 접점만이, 그리고 그 안에서 도리어 채워지는 공기가 가득했다. 그 와중에 샌듄에서 모래바람을 무릅쓰고 셔터를 눌러 카메라를 망가뜨린 것은 사소한 사고에 불과했고, 영혼까지 빼앗길  뻔했던 오렌지 빛 사하라의 태양. 아프리카의 어느 산맥 한가운데, 몸서리치게 찬 겨울 바람도 겪었다. 그렇게 막상 몇 번의 경험이 쌓이면 더 이상의 궁금증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도 내가 가졌던 또 하나의 오해였다. 정보를 갖게 되면 그 데이터의 양에 곱절의 양으로 다양한 층위의 의미가 펼쳐지면서 점점 더 커지고 증폭되었다. 


  결국, 이 모든 경험들은 그 내게는 거칠고 삐딱한 마음을 앞세워  떠났던 시린 사막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거친 세상 속, 미미하나마 '살아남아 있다는 존재감'을 강렬히 확인하려는 욕구의 출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거칠고 황량한 땅 위에서 수 만년 버텨가는 모래들을 기억하며, 덧붙여진 이야기를 조금씩 더 곱씹어 풀어보고자 한다.

우유니, 비를 기다리는 소금사막 위에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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