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역사 이전의 시간으로 들어가다.
# 중동 여행 2일 차의 기록 2010.07.25
지난밤. 새벽까지 신나게 즐긴 멤버들은 기상이 늦어지고 마음만 바쁜 나는 일어나서 게스트하우스의 아침식사를 알아서 차려먹었다. 정리하고 나니 다들 슬금슬금 일어나 일정을 시작했다. 후르가다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고. 새벽에 룩소르로 들어온 사람들도 있고. Y 씨와 풋풋한 21살 대학생 남학생들 2명과 룩소르 동안 투어를 하고 오후에 아스완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룩소르, 옛 지명으로는 테베.라고 불리는 이집트의 고대도시로 나일강 상류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 작은 도시 곳곳에 고대 이집트 왕조들의 여러 가지 신전과 무덤이 살아있다. 동안-서안으로 나누는 기준은 역시 나일강이다. 나일 강동-서를 기준으로 east bank / west bank로 구분하여 부른다. 주로 서안에는 왕가의 계곡과 같은 왕족들의 거대한 무덤자리 혹은 왕족들을 기리는 '죽은 자를 위한' 건축물들이 널리 자리 잡고 있고. 동안에는 이집트 왕조를 지켜내었던 - '산 자를 위한' 건축이 자리 잡고 있다.
볼 것은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게다가 룩소르. 이곳은 체감기온 40-50도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충고대로, 우리는 한 곳만을 선택하기로 했다. 신전 중에 가장 볼 것이 많고, 다양하며, 더군다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있는 덴데라 신전이었다. 보존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지붕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이 더위에 그늘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니까.
덴데라 신전 Dendara temple은 룩소르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얼음물을 들이키며 들어간 곳- 신전의 입구는 유적지 답지 않게 한적하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오후 시간에 움직인 탓인지, 관람객도 거의 없다. 이집트라는 곳에 와서 관람하게 된 첫 번째 유적인 셈이라 사뭇 비장하게 들어섰다. 일명 클레오파트라 신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가드인지 안내원인지 모를 사람이 클레오파트라 부조를 안내하면서 역시 당당하게 박시시를 요구한다. 경찰이라는 사람이 숨어있는 유적 설명해주면서 또 박시시. 신전을 지키는 유적 담당 경찰들이 장총을 들고 있길래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도 좋은가 물었더니(굳이?), 펜이 있으면 달라고 한다. 박시시 대신인가? 볼펜을 갖고 싶다고? 우리나라 문구류가 이곳에서 인기라더니, 어느 쪽이든 괜찮을 것 같아 선물인 셈 치고 흔쾌히 지불했다. 뭘 기념한 사진인지, 박시시인가 현지인과의 만남인가.
대개 현지인들은 작은 봉고버스를 이용한다. (나중에 카이로에서 기자 피라미드를 오고 갈때 몇번 타보긴 했지만.) 로컬 교통비는 몇백 원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하다. 봉고차의 문은 항상 열려있는 상태며, 차에는 행선지나 기타 정보가 정해져 있지 않은, 말 그대로 현지인을 위한 교통수단이다. 오픈카 상태로 시내를 활보하는 작은 탈 것들을 보고 처음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쉽게 타고 내리고, 적정 인원 외에 필요시엔 더 많은 인원이 매달려 탈 수도 있는 효율성이랄까. 이런저런 사연을 생각해보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점점 다른 생활방식에 대한 관대함이 싹튼다.
그러나, 오후의 투어를 견디며 더위를 제대로 실감하게 되었다. 소나기가 한판 내리 부어주길 기대했으나, 이 황무지와 같은 땅에서 그럴 일은 없겠지. 그 날의 강렬한 태양은 내가 겪어본 최고의 뜨거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역시 어떤 경험이든 땀을 흘려야 기억에 명료하게 각인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