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존재 이유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싹을 틔우고 꽃이 피게 했다고

고마워 하는 일에 대하여

딱히 너를 위하는 마음은 없었다고 고백하려고 해

무책임한 변명 같지만

폭우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되어서

나를 원망하는 일에 대하여

딱히 너를 해하려는 마음은 없었다고 말하고 싶어

언젠가는 잊히고 말겠지만 슬픈 일이야

나는 단지 나일 뿐인데

누군가는 나로 인해 웃음 짓고

누군가는 나로 인해 눈물 지을 수밖에 없다니

그럼에도 흐를 수 있어 감사해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너라는 세상을 만나는 찰나의 지금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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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내가 스치는 무수한 너의 얼굴에

반짝이는 미소를 맺히게 하는 일들이

조금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면 나도 더 자주 웃을 테니까

우연이라는 이름의 필연으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진다. 그 과정에서 울고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 또 너와 나인 것 같다. 나의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무수한 찰나의 감정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세상 그 무엇도 사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삶을 사랑하는 일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내가 세상에 흐르는 이유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그것이 유일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