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우리가 자신을 모르는 이유
복잡한 문제 앞에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 질문을 가득 던져 놓고 잠을 청한다. 그러면 잠들기 직전과 눈뜬 직후 몽롱한 상태에서 진짜 정답이 수면 위로 떠올라 무엇을 해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언어의 형태를 빌려 ‘이걸 언제 어떻게 해야겠다’라는 마음속 문장으로 떠올리는 단계를 생략하고, 눈을 뜨자마자 나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밤새 나의 의식과 무의식이 합작해서 떠올려 낸 정답이다.
얼마 전 직장인 커뮤니티와 블로그를 통해 이슈가 된 한 채용 사기 사건의 주인공이 되자마자, 넘치는 공분과 조언, 노사 관련 정보가 쏟아져 들어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 약점과 정보를 캐내려는 익명의 가짜 위로와 질문들 또한 이어져, 그야말로 앞이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잠들기 직전과 눈 뜬 직후 정수리가 뜨끈할 정도로 생각 회로를 풀로 돌렸다. 오죽하면 꿈속에서도 묘수를 찾아 헤맸을까.
한 번은 이런 꿈을 꾸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있던 상가 건물 천장이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얼른 엄마 손을 잡고 뛰쳐나가자, 건물이 완전히 폭삭 무너지는 게 아닌가! 무서운 꿈이었지만 찾아보니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되는 꿈이란다.
꿈속에서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몸을 움직여 다음 해야 할 일을 처리했다.
머리가 뜨끈하던 첫날은 주변을 수소문하여 로펌 소개를 받았고, 두 번째 날은 소송비 마련을 위해 작년 전시 때 출품한 작품에 관심을 표하셨던 지인 컬렉터분들께 연락을 돌렸다. 영업은 체질에 맞지 않지만, 앞뒤로 따라붙던 잡생각을 쳐내고 나니 이 길이 가장 빨랐다. 그다음엔 로펌 계약 미팅을, 다음 날은 언론 제보를 순차적으로 착착 진행했다.
정보와 생각이 다시 차고 넘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렸다. 마치 월척이 미끼를 물 때까지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말이다.
절대 악수를 두어서는 안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당신의 삶에도 찾아온다면, 스스로에게 잠시잠깐의 틈을 허용하도록 하자. 내 의식 속에 물처럼 빽빽이 들어찬 불안에 떠밀려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두르지 않으려면, 말 그대로 잠깐이라도 숨 쉴 구멍을 찾아야 한다.
내가 찾은 방법은 잠들기 전후의 느슨한 몰입과, 달콤한 독주와, 과거의 나에게 던지는 질문 같은 것들이다.
마냥 독한 술보다는 독하면서도 달콤하고 기분 좋은 향을 지닌 리큐어에 플레인 탄산수만 더해 가볍게 마시고 나면, 잠들기 전까지 생각의 속도를 잠시 늦출 수 있다. 과부하를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 나의 생각 중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카톡 창을 열어 검색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양한 사람들과 그 주제로 대화했던 과거의 내가 등장한다. 키워드가 없다면, 3개월 전의 나, 6개월 전의 나, 1년 전의 나를 만나러 되돌아가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대화량이 가장 많은 방에 들어가 해당 날짜를 찍어 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사건을 바라보던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 무슨 질문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는 어느 힘든 날에는, 지금껏 내가 남겨 온 기록을 탐색하다가 문득 현명한 질문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문현답이 아닌, 현문현답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쥐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당신도, 당신만 아는 그 정답에 닿는 방법을 찾아 주변에 기꺼이 공유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모두 저마다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보 너머에 있는 본질을 알아볼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