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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Sep 11. 2024

소송과 죽음과 이별

1장 - 우리가 자신을 모르는 이유


 커다란 상실감이 연이어 덮쳐오던 3개월. 

 숨 쉴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연거푸 파도를 정면으로 들이 맞은 나는 어떻게 지금 살아 있는 것일까? 



내가 지금 가장 슬픈 게 뭔지 알아?
더 이상은 우리 고양이를 함께 추억할 동반자를 만들 수 없다는 거.
오빠가 마지막인 거야.


 남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던 그 사람이 갑자기 이별을 고했던 화창한 6월 어느 날. 

바로 지난달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 고양이를 돌연사로 보내고, 일도 무엇도 확정된 것 하나 없이 첫 심문 기일 일정이 잡히기만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또다시 들이닥친 이 거대한 파도는, 도무지 어떻게 맞서야 할지 조금도 계산이 되지 않았다. 

 그저, 왜 지금일까. 왜 지금이어야 할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너무나 선명히 이해되는 이 모든 상황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꼈다.

 동그란 안경 너머 비친 나를 닮은 눈을 마주 보며 몇 번을 회유하고 붙잡아 보았지만, 사실 소용이 없을 거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냥 조금 더, 마지막으로 그를 가만히 바라볼 시간을 벌고 싶었을 뿐이다.

 지나온 모든 인연들과는 달리, 그토록 '이 사람이다' 확신했던 서로인데. 이제는 무엇으로, 어떤 사연으로, 어떤 신호로 누군가를 알아보아야 할까. 이 글을 겨우겨우 쓸 수 있게 되기까지도 만 한 달이 걸렸다.

 '곧 나올 책은 꼭 사서 읽어 보겠다'라며 마지막 인사를 하던 그에게, 그 책은 이제 엎어져서 세상에 나오지 않을 거라고 전할 방법도 없다.


 나이 때문인지 소송 때문인지, 유독 고생하며 열두 번도 더 면접을 본 끝에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직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요즘은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는 근황도, 오직 그 사람만 뺀 모두에게 전할 수 있는 말이다.

 조금씩, 진짜 나를 위하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약속을 잡고, 집 밖으로 나가고 있다고. 막내가 떠난 후 영 심심했는지 말수가 늘어난 첫째 고양이와 조금 더 친해졌다고. 오랫동안 끊어졌던 좋은 인연이 바로 어제 만난 것처럼 이어져 지금 우리 회사에 필요한 협력 업체 계약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다음 주면 드디어 첫 심문회라고.

 하고 싶은 말이, 보여 주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나는 얼마나 더 죽지도 않은 사람을 애도해야 하는 것일까. 얼마만큼 그날 죽은 나를 애도해야 하는 것일까.


 요즘처럼 그 어떤 포부도, 기대도 없이 살아 본 기간이 있었나 싶다. 그럼에도 살아온 구력이 있어서인지, 어떻게든 일은 차질 없이 굴러간다. 유난 떨지 않고, 그저 나와 타인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며, 진심으로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만큼 무엇이든 몸을 움직여 이뤄 가며, 그저 하루하루 살아낼 뿐이다.

 '헤어졌다 다시 만난다'라는 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우리'라 불리던 우리는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직은 조금 더, 그때의 우리를 애도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 고양이를 애도했던 기간보다는 조금 더, 우리를 심연 속으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던 당신을 슬퍼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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