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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Sep 13. 2024

좀 자세히 말해 봐

1장 - 우리가 자신을 모르는 이유


 “확실해? 좀 자세히 말해 봐!”

 우리는 이런 말로 어떤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한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 내가 직접 겪지 못한 그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막상 사진과 진술을 통틀어 사실의 조각들을 잔뜩 모아도,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그 자리에 있었던 당사자조차 그 본질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일은 우리 삶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앞서 일어난 황당한 연봉 후려치기 사건에 대한 제보를 진행하는 동안, 언론 및 노사 문제를 처리하는 관계 기관, 로펌, 그리고 사건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인, 가족들에게 그날의 일을 시간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했지만, 사건의 쟁점 및 중요도를 파악하는 기준이 서로 달라서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바가 모두 달랐다. 각자가 파악한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반응이나 처리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어느 곳에서는 최초 채용공고와 입사 확정 시의 업무 범위가 달라졌는가를 쟁점으로 삼았고, 어느 곳에서는 회사의 네임밸류가 사건의 경중을 따지는 척도가 되었다. 지인 중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과, 그 관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사람, 두 갈래로 반응이 나뉘었다. 지인과 가족을 통틀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 즉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 사건을 되려 행운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루라도 그곳에서 너의 삶을 낭비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거듭 가슴을 쓸어내렸다.

 즐거운 모임 자리를 주최할 때 곁에 있었던 사람들과,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했던 동료 중 조금이라도 손들 거들어 준 사람은 열에 하나 정도였지만, 그 손길 하나하나의 영향력이 커 내게는 한 사람당 100명의 도움을 받을 것이나 다름없었다. 혹여 조금의 불이익이라도 생길까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옛 동료들 또한 이해가 간다. 나도 평소 주변을 살뜰히 챙기는 타입은 아니니 말이다.

 아무리 자세히 말해도, 사건의 본질은 똑같은 모양으로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 사건 한 가운데 있는 나와의 연결고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도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법적인 판결이야 어떤 케이스이건 간에 큰 편차 없는 결론이 나겠지만, 이 사건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 것은 나와 내가 속한 세계 안에서 내 생각만큼, 또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존재하고 있었던 타인의 실제 모습이다. 

 매미인 줄 알았던 어떤 사람은 애초에 떠나고, 탈태한 껍질만 나무 위에 덩그러니 붙어있던 것을 이제 알았다. 반면, 통 안 보여서 아직 번데기 속에 있나 싶었던 어떤 사람은 이미 나비가 되어 폭풍이 될지도 모르는 날갯짓으로 무거운 내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좀 자세히 말해 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세히 말하는 것에 너무 열중하기보다는 상대가 나를 자세히 볼 줄 아는 사람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자세히 말하는 데 필요한 열정과 에너지가 나도 모르게 새어 나가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동시에, 내가 자세한 정보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다른 말로 그런 정보를 상대에게 요구해도 되는지에 관하여도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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