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실패의 기록 (2)
지난 회에서 이어지는, 나의 과거 직장 고찰기
어떻게 된 일일까? 아침에 눈을 뜨면, 불현듯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회사를 가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이지?
회사 대신 스타트업을, 그러니까 내 업을 스스로 일으켜보고자 매일 아침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급여가 없는 나날이기라 매일 밖에서 사먹는 점심값이 살짝 부담이 된다.
직장생활 열심히 하다가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어떻게 된 일인가? 모든게 낯설어진 어느 날 밤,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기나긴 나의 직장생활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작년 3월에 뉴스뫄뫄를 그만두기로 했다. 상암에 있는 Y뫄뫄 언론사에 계신 선배님께 이 사실을 알리러 갔다가 다른 일을 제안받았다. 방송일이 싫어서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여전히 글을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이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에,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모 방송국에서 일해보고 싶어 퇴사하자마자 바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재외동포 관련해 취재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다. 분명히 PD로 일을 하고 있는데, 예전 직장에서보다 할 수 있는 일도, 권한도 너무 작았다. 나는 권한과 책임이 있어야 정신 바짝차리고 일을 신나게 하는 사람인데, 권한도 책임도 없는 자리에서 하는 일들이 신이 나지 않았다.
큰 회사라 회사 내에 카페도 있고, 삐까번쩍한 스튜디오도 있었지만, 방송 제작 과정에서 나는 정말 한 일부일 뿐이었다. 맡고 있던 프로젝트까지만 하고 회사를 나왔다.
대책은 없었지만 하고 싶은 일은 많았다. 글을 쓰던 촬영을 하던 좀 마음껏 내 맘대로 만들어보리라!
고 생각했는데 통장에 전직장 퇴직금이 남아있어서 (...응?) 일단 정리하고 새출발하자는 못된 습관이 또 발동해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스위스와 영국, 물가 비싼 곳으로 짧고 굵게 떠났다. 한 보름정도 있다가 가져간 돈을 다 쓰고 돌아왔다. 눈썰매도 타고 자연사박물관도 가고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다. 내심 여행을 떠나서 뭔가 인생이 바뀔만한 일이 생겨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또 새로운 일로 연결되는… (좀 뻔뻔했군)
'드라마 스페셜' 같은 에피소드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게 2월쯤. 이제 계획한 일을 하면 되는데, 막상 집에서 쉬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퇴사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쉬엄쉬엄 하다가 갑툭튀 장인이 되어 있는... 어디 인터넷 기사에 실릴 법한 에피소드도 벌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이상하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놀러나다니기에는 잔고가 부족했고, 잔고가 부족하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일을 시작해야하는데 무슨 일을 해야할지, 무슨 일을 싶은지조차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준비를 안하고 막무가내 퇴사를 하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경력이 끊어지기 전에 얼른 취직하라고,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얘기했다. 그저 또다시 비가오나 눈이오나 9시까지 출근해서, 퇴근 시간 따위 없이 해야하는 일들을 꾸역꾸역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그건 좀 암담했다. 그것밖에 없는가? 뛰쳐나온 전장으로 다시 들어가는 그 길밖에 없는가? 다른 길은 정말 없을까?
이제까지 참 운이 좋아서 그럴듯한 회사에 잘도 취직했구나 싶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하기까지 늘 꽤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에 온갖 실패와 뻘짓을 반복하곤 했다. 그러고 정말 마음을 내려놓고, 재정비했을 즈음 다른 일자리가 생기곤 했다.
밤마다 이불킥을 해대다가 차분하게 생각해보았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걸 어떻게 하고 싶은지 차분히 정리할 즈음에 스타트업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투박하게 써서 제안서를 보냈고, 운좋게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되었다. 기업 주관으로 스타트업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선발된 친구들과 경쟁하여 지원금을 따내는 프로젝트다.
나의 목표는 분명했다. 기존에 일자리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접 만들고 싶다. 간절히!! 나는 더더더 일하고 싶으니까. 그 대신 나에게 어느 정도 업무에 권한과 책임이 따르는 일을 열심히 하고 싶었다. 그 정도의 그림을 가지고, 내 일은 내가 만든다!는 마음으로 스타트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게 4월부터니까 어언 한달 반이 흘렀네.
스타트업 교육을 받으면서, 그전에 몰랐던 분야에 발을 들이니 이전까지 내 세상에 없던 것들을 보고 듣게 되었다. 한달 만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지! 일단 생각하는 게 바뀌었다. 많은 것들을 ‘문제’로 인식하고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언어가 바뀌었다. 내 ‘역량’을 생각하고, ‘솔루션’을 ‘도출’하려고 하고, BM의 약자도 몰랐던 내가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고 고민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견했다고 팀원과 유레카를 외치며 하늘을 나는 양 들떴다가도, 침대에 누워 잘못 판단한 이유 100가지를 꼽으며 수면 장애에 시달린다. 가끔 실패에 관해 생각한다. 뭔가 잘못된 것일까 몇 번 되돌아보기도 했다.
이게 요 며칠의 일들이다. 한달동안 공들인 아이템이 MVP로 산산조각나고. 엎어지고, 팀이 깨지고. 아이템이 바뀌는 와중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살짝 좌절감이 들었다.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왜 여기있는 거지? 왜 스타트업을 해보겠다고 했지?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바닥을 쳤고, 그 바닥에 잠시 머물다가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망했다. 그런데 내가 망한다고 누가 관심이나 있으랴? 내가 이렇게 하는 뻘짓을 누가 신경이나 쓰랴? 나하나쯤 망하고 실패한다고 해도 아무도 관심없을 걸. 망하지 않으려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하는데. 그보다는 망하는 게 나은게 아닌가. 그럼 뭐라도 한거니까. 이왕이면 제대로 망해보는 게 좋겠다.
스타트업을 시작했을 때, 뫄뫄 디렉터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대로 실패하는 게 중요합니다. 나중에 해보면 알거에요. 제대로 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그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뭔소린가 싶었는데, 이제 비로소 알겠다.
내가 5년 전에 처음 창업이란 걸 해보겠다고 일을 벌렸을 때, 나는 과연 망했었나? 나는 그냥 접었다. 그땐 방법도 몰랐고, 비전도 없었고, 그냥 단순히 내가 하고 싶다는 아이디어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진행하다가 취직해버렸으니, 창업을 했다고, 시작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상태인 거지.
그러니까 완전히 망하려면 제대로 시작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 거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제대로 시작을 하는 것까지도 보통 만만한 일이 아닌 거지. 그래서 정말 제대로 실패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뭐라도 배우든지 하지.
“나 하나쯤 망해도 아무도 모를거야”라고 혼자 되뇌인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 말 하나 손에 꼭 쥐니까 겁도 안나...는 것 같다 (하하하...^^ 정말이야)
그래. 누가 알겠냐. 하지만 나는 알아야 하니까 기록을 하기로 했다.
또 혹시 알까. 나처럼 제멋대로 쌓은 커리어에 혼란을 겪고 있거나, 새로운 일을 위태위태 시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나의 사소한 인사이트가 도움이 될지도. 비슷한 동료를 만날지도. 하여 매일매일의 실패기를 차곡차곡 정리해나가야지. 이렇게 각오하고 실패를 포기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 조까! 아 몰라! 이런들 저런들 뫄뫄가 겁난다고 제가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우리 제대로 실패합시다. 제대로.
# 내가 나를 잘 알지
# 말부터 거창하게 하는 편
# 약속 안지킬까봐 큰소리 치는 편
# 겁나서 큰소리 친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