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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작 Apr 09. 2024

[E] 아버지의 스무 살 어느 날의 일기

약관의 나이를 맞은 아버지는 갓을 쓰지 못하고 여전히 방황했다

갓을 씌워줄 아버지도, 갓을 만들어줄 어머니도 없었기 때문이다

5월의 어느날, 아버지는 동네 어르신께 불려간다

안면만 있을 뿐 연은 없던 분의 부름이었기에 아버지는 얼떨떨했다고 한다

어르신은 아버지를 앉혀두고 아버지의 아버지, 즉 나의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다


내 고향은 지리산 깊은 산골,

오지라서 일제의 칼도 빗겨간 곳이었는데 도망자들에게는 오히려 안식처였으니

1948년 여수와 순천에서 일어난 난리에 도망자들은 우리 고향까지 쫒겨왔다

그들을 세상은 빨치산이라 불렀다

빨치산은 지리산으로 들어가면서 길목이던 우리 동네에서 음식과 사람을 가져간다

할아버지도 그때 빨치산과 같이 산에 들어갔다

당시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동네 남자들은 짐꾼으로 많이 끌려갔다고 했다

지리산에서 나고 자란 우리 할아버지는 빨치산이라고 하기에는 사상이 부실했으리라

산길을 알고 힘을 쓰는 남자라 딸려갔을 게다


어느날 할아버지는 새벽에 음식을 구하러 마을에 내려왔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고 돌아가셨다.

그 새벽, 그는 창문 너머로 달빛이 닿은 아내와 어린 아들, 딸의 얼굴도 보고 갔을까?

어린 딸을 업고 지아비를 찾아나선 할머니도 산 어귀 어딘가에서 총을 맞고 돌아가셨다.

등에 업혀있던 세 살 고모도 그 자리에서 죽은 채 발견됐는데 누구는 총에 맞았다고 하고 누구는 죽은 어미 옆에서 젖을 물고 굶어죽었다고 했다. 진실은 세 살 아이만 알뿐이다


동네 어르신이 아버지에게 이 일들을 말해주면 "너의 아버지를 쏜 사람이 00마을 Y니라"라고 말해줬다

Y는 당시 갓 임관한 순경이었고 군대를 지원해 매복조로 참여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몇 날 며칠 술에 빠져 지냈다

그러다 또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평상에 누웠는데 하늬바람이 잠을 깨우더란다

서늘하고 건조한 그 서풍에 정신이 살아난 아버지는 바람따라 서쪽마을 00에 닿았다

Y의 집으로 가는 길에 마치 서부 총잡이의 결투처럼 신작로에서 Y를 만났다

단걸음에 달려가 아저씨의 멱살을 잡고 왜 우리 아버지를 죽였냐고 따져물었단다

당시 경찰에서 은퇴했던 그 아저씨 Y는 "그땐 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힘없이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죽이냐고 땅이 꺼져라 소리치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대학교 1학년 때 하숙방에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 들었다

당신은 스무살 이후 그 동네가 싫어 친척따라 서울로 왔다고 한다

서울에서 몇 년간 배달, 공장, 장사 등등의 잡부를 하다 다시 시골로 내려갔다고 한다

패잔병의 귀향이었고 고향과 기억에 발목잡힌 청년의 필연적 선택이었다

그 얘기를 서울로 학교 온 아들에게 처음으로 얘기했다

당신의 스무살 시절을 스무살을 맞은 아들에게.

그날의 아버지에게서도 소주의 시큼한 냄새가 났다

길고양이들이 서럽게 울던 밤이었다


아버지는 아직까지 그 시골에 살고 계신다

장성한 자식들이 서울부터 고향의 이웃 도시까지 여러 곳에 터를 잡았지만

아버지는 그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의 피가 베인 그 산을 오늘도 베고 누워 잔다

피 비린내를 씻으려는지

불면을 일으키는 기억에서 해방되려는지

아니, 그 세월이면 이제 그냥 습관인지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매일같이 소주를 품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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