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이모에게 보내는 글
<경숙이가 경자에게>
언니 본 지 반년이 지났네
반년밖에 이겨내지 못했네
언니야
나 더 버티기 힘들다
명부에 있는 내가 고이 안 오니 하느님이 나를 더 힘들게 하나봐
아프지만 이겨내려고 했어
언니 보고 나서 힘내려고 했어
봄이면 노오란 꽃이 피는 언니네 집에 가고 싶었지
세상 사람들은 봄꽃은 개나리다, 벚꽃이다 하지만
내겐 산수유꽃이 으뜸이야
향기도 안 나고 손톱만한 꽃이 뭐가 이쁘냐고 하지만
산수유꽃을 보면 언니가 떠오르는데 왜 안 이뻐
손톱만한 꽃이 한 나무에만 수백 송이이고
한 집에만 수천 송이가 있는 그 동네,
뒷산마루에서 내려보면 동네 전체에 은하수처럼 꽃 흐르는 그 풍경
그걸 아는데 어찌 개나리가, 벚꽃이 나를 홀려
난 산수유만 보면 언니가 보이고 언니 젖가슴 냄새가 맡아지는데
그런데 이제는
눈도 안 보이고 코도 흉하다
언니 보고 나서 며칠 조금 좋아졌다가
다시 병원에 갔어
그때부터였어
자꾸 헛것이 보이더라
정신 차리면 내가 간병인을 무참히 혼내고 있는 거야
어느 날은 간병인을 도둑으로 몰았다고 해
언니, 내가 아프기 전에 병원에서 일했잖아
그래서 간병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잖아
근데 내가 미쳐서 그런 험한 말을 해댔어
이제 난 갈 때가 됐어
언제 가더라도 아쉽지 않은 나이가 됐는데도
쉰이나 먹은 아들은 여전히 품안의 자식이라 쉬이 갈 수가 없어
내가 아들내외와 손주들까지 같이 살잖아
우리 며느리가 보통 잘해?
내 자식들보다 더 내게 잘하잖아
뇌경색이 오고서는 아무것도 못해
누워만 있으니 밥도 내 힘으로 못 삼켜
그러니 며느리가 미음을 떠먹여줬어
그렇게 겨울을 났어
언니네에 산수유꽃이 폈을 때
내 몸 꽃은 완전히 졌어
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게 됐어
씹지도 못하고 싸지도 못해
기저귀까지는 참을만 했어
그런데 봄부터 변도 안 나와
관장을 해야 하는데 간병인도 못해
며느리가 내 사타구니를 들쳐서 해줬어
정신 못차리는 날이 많지만
며느리가 나를 다독이고 밑을 씻을 땐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고 확신이 들었어
이제 정말 가야하나봐
내가 애들에게 짐이 되고 있어
언니가 보고싶다
천리 밖에 있는 언니에게 가고싶다
언니를 생각하면 일리만 걸으면 닿을 거 같은데
나는 일보도 걷지 못하니 다시 언니는 천리로 멀어진다
이렇게 언니를 못 보고 나는 가네
아이들이 울고 있어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어
언니에게도 내 소식이 갔을까?
나 아픈 것도 언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어
언니가 얼마나 슬플 거야
그런데 내가 죽었다는 걸 알면 언니는 어쩌겠어
언니는 어쩌겠어...... 너무 미안하다 언니야
언니의 얼굴보다 울음소리가 먼저 도착했어
언니 곡소리를 10년 전 아부지 돌아가실 때 들었는데
그새 나를 위한 곡소리로 다시 들을 줄은 몰랐네
언니야 보고 싶다
거기서 울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와
왜 거기서 울고 있어......
언니야 그렇게 슬퍼?
<경자가 경숙이에게>
코로나 염병이 이제 다 지나갔나보다
미세먼지 하나 없이 하늘이 깨끗하다
어제는 한여름 구름처럼 크고 하얀 뭉게구름이 지리산에 걸쳐 한참 있더라
아침에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마당에서 앵두를 땄다
앵두는 갓 담은 열무김치랑 네게 올려보내려고 했다
닭은 잘 크고 있다. 여름이면 너랑 맛나게 먹겠다
5월 28일이었다
부엌에 들어와 아침을 준비하는데 전화가 울렸어
조카더라. 몇 년만에 우리 조카 목소리를 듣는지...
그런데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서더라
그래, 너의 부고를 들었다
5월 28일 아침 6시에 너는 떠났다
너 5월 28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언니가 결혼한 날이야
반백년 전 그날에 너는 보라색 정장을 입고 큰 꽃을 들고서 이 곳에 왔지
결혼식에서 부모님에게 인사할 때
나는 계모 옆에 앉은 아부지를 보고서는 아무 동요도 없었지만
그 뒤에 앉은 너를 보고서는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휘감겼었지
네 부고를 듣고도 나는 의외로 차분했어
어서 서울 가봐야겠다는 생각만 들더라고
아들차를 타고 올라오는 길에도 나는 울지 않았어
병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때에도 다리가 풀리지 않았어
날도 좋으니 인공관절이 말썽부릴 일은 없겠다 싶었어
큰병원이라 장례식장도 크더라
한참을 돌아돌아 향 냄새가 나는 곳에 들어섰더니
망자 안내 게시판에 네 사진이 있다
노안에 백내장에 안개낀 눈이지만 네가 딱 보였다
너는 왜 거기 있니?
너는 왜 거기서도 그렇게 예쁘게 웃고 있니?
언니는 더 있다가 와
다리가 아프다지만 언니는 정신도 또렷하고 건강하잖아
좋은 곳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잘 살고 있잖아
언니야
부탁이야
더 있다가 와
천국이 좋다지만 애들 있는 그곳이 천국이다
우리 애들까지 봐주면서 천천히 와라 언니야
너를 보내고 고향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었다
달을 지나 해가 떨어졌다
슬프게도 반이 사라진 그믐달이 우리 차를 길고 오래 따라왔다
천국이 있다면 저 달이 천국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마을 밤에 뜨는 달은 유독 밝고 예쁘다
너는 그런 예쁜 곳에서 살면서 나를 내려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