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단상, 이민자의 삶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화가 났다.
호주 공립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지난 2주 급여가 제대로 지급이 안되었고, 그 과정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팀 매니저와 공립병원 관련 부서들의 반응이 납득이 안되었다. 나의 시간, 에너지를 쏟아부어 이 과정을 확인해야 했고, 그 누구도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하고 제대로 이슈를 다뤄주지 않았다. 내 호주 동료들에게 결국 연락해서 이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했을 때, 이 과정은 사실 심플하며, 내 매니저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쓴 이후에 결국 급여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게 상황을 고쳐놓았지만, 나의 매니저 반응에 나는 화가 났다.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했고, 그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발뺌을 했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매니저에게 화가 났다. 지난 2년 반 동안 영혼을 갈아 넣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돌봤는데, 결국 나는 이 큰 기관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허무했고 (appreciated, valued 되지 않는다는 느낌), 그리고 왜 내 동료들에게는 비슷한 이슈가 있을 때 제대로 대처해 주고, 잘 해결해 줬으면서 나에게는 '나 몰라라. 내 책임 아니야'라고 나왔을까. 그리고 왜 자기가 매번 하던 일인데 '자기는 모른다'라고 '거짓말'을 했을까.
'인종 차별'인가.라는 해석까지 하게 되었다.
화가 나서 '호주 공립병원 그만둬야겠다' 순간 생각했지만, 감정이 복받쳤을 때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기로 나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우선 그 결정은 보류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이 지나친 과민 반응일까, 아니면 당연한 반응일까 혼란스러웠고 (나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평가 없이 받아주는 것이 힘들었다. 내가 맨날 다른 사람들에게 그래야 한다고 말을 하면서, 막상 나 자신은 내 감정이 '맞는 걸까'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로부터의 '허락'이 필요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SOS를 쳐서 이 상황 설명하고, 내 감정을 나누었더니 '네가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내 감정을 인정해 주었다.
내 감정이 인정이 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으니, '화'나는 나를 자책하거나, '화'라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급여 사건 해결'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다 해놓고, 이제는 기다리면 되는데, 이 감정에 계속 사로잡혀 있었다. 스트레스 레벨이 점점 올라가는 것을 발견했다.
"엇, 왜 이러지"
"화나는 건 이해가 가는데, 왜 이렇게 계속 이 감정에 사로잡혀 있지, 스트레스는 더 높아지고"
내 감정 자체는 이해가 가고, 받아들여지지만, 그 강도와 지속 시간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렇게 어제 하루를 마무리하고, 화나고 갑정이 압도된 상태에서도 다행히 무사히 해야 할 일들을 다 하고, 잠도 잘 잤다.
오늘 아침 일어났는데, 스트레스 수치가 높았고, 화가 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고,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일 시작하기 전 운동을 갔다. 사실 운동도 가기 싫었다. ‘화’라는
감정에 사로 잡히니 모든 만사가 귀찮아졌다고 할까나. 그래도 하루가 나에게 주어졌고, 하루를 살아야 하니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몸을 움직여서 강렬한 ‘화‘ 에너지를 좀 덜어내는 것이 나을 듯했다.
그렇게 마지못해 체육관을 갔고,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 하늘과 바다를 보며 빠르게 걷기 시작했고, 항상 그렇듯 그 시간을 내 감정과 생각들을 바라봐주고, 펼쳐내고, 돌봐주는 Mindfulness/self-care 시간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바다와 하늘을 보는 동안 온갖 '도움 되는 심리방법'들을 사용했다.
*화나는 내 감정을 들여다도 봐주고,
*이해된다 말도 해주고,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며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재평가도 해보고 -’ 매니저가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수도 있어. 사정이 있었겠지. 그리고 다음번에 똑같은 실수 할지 안 할지는 두고 봐야지 ‘.
그래도 내 화나는 마음과 거기에 압도된 내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휴. 오늘 기분 정말 안 좋네. 이 기분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야 할 것 같은데 '망했다', '큰일 났다'" 이런 '재앙 해석'이 시작이 되었다. ‘화‘라는 감정으로 시작해서, ’화‘라는 감정에 압도당한 나와 계속 이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나에 대한 '불안'과 '우울'로 넘어가고 있었다.
약간은 자포자기로 체육관에 와서 운동을 시작했으니 그냥 하던 거나 계속하자 하고, 가능한 음악에 집중하고,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하늘과 바다 보는 것에 집중하며 운동을 하는데,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미라야, 너 당장 5분 뒤에 죽을 수도 있다. 인생 한 치 앞을 모르는 거잖아. 얼마 전에 네가 목격한 교통사고 생각해 봐. 너 지금 체육관 나가서 일하러 가다가 죽을 수도 있어. 아니 5분 뒤에 갑자기 빌딩이 무너져 내려서 죽을 수도 있어"
끔찍한 생각처럼 들리겠지만, 이 생각은 나를 갑자기 화, 불안, 우울에서 자유롭게 해 주었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바다가 내가 보는 마지막 바다일 수 있다. 지금 이 예쁜 하늘이 내 생애 마지막으로 보는 하늘일 수 있다."
그랬더니 나를 압도하고 덮쳤던 화남이라는 감정에서 한걸음 물러설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자유로워졌고,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 예쁜 바다와 하늘, 내 몸의 움직임 느낌, 내 호흡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원래 하늘과 바다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는데 (참고로 나는 종교는 없다), 난데없이 엉뚱하게 이런 순수한 감사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진짜 너무 감사해요. 호주에 와서 정말 엄청난 인종차별들을 겪었고 (호주는 겉으로는 웃고 친절한데 속으로는 인종차별이 심한 문화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백인들이 꽉 잡고 있는 이 심리치료 세계에서 외국인으로, 영어 제2외국어로 쓰는 사람으로 자리 잡겠다고 할 때 더 배척감과 억울한 일들이 많았었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다 견디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요.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그동안 항상 함께해 주시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뭐지 이건??"
어쨌든 마음이 편해졌다는 증거니까 '다행이다' 생각하고 나 혼자 하는 운동 시간을 끝내고, 트레이너와 개인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내 트레이너가 나를 더 강하게 밀어붙여 운동의 강도를 높였다. 지금까지 했던 것 중 최고 무게로 스쿼트를 했는데, 마지막 카운트에는 올라오기 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포기하려던 찰나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하는 스쿼트가 내 인생의 마지막 카운트하는 스쿼트일 수 있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그러자 나의 슈퍼파워가 나왔다. 그 무거운 무게, 난생 안 해보던 최고치 무게의 스쿼트 마지막 카운트를 성공적으로 했다.
오늘 나를 압도적인 화, 불안, 우울에서 구출해 준건 난데없는 '인생의 예측 불가능성, 특히 '죽음'에 대한 성찰'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자. 정말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러니,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압도했던 불편한 감정에서 한걸음 걸어 나올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감사함'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신기한 하루구나.
나의 매일의 마음 경험은 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