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요트 여행, 나에게 친절해지는 법
20대의 나는 자신에게 한없이 불친절했다. 내 것을 빼앗겼는데 빼앗긴 줄도 모르거나, 스치듯 지나가는 남의 요구에도 내 것을 냅다 양보해버리는 몹쓸 습관이 있었다. 사소한 불편을 아주 잘 참아내는 성향에다가, 순식간에 상황을 스캔해서 상대방의 몸짓이나 표정이나 말의 뉘앙스에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잡아내는 데 능했다. '뭘 좋아해?'에 '아무거나'라고 답하고,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에 '너는 어때?'라는 질문으로 되돌려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게 어른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느라 도무지 내 편이 되어줄 줄을 몰랐다.
그러다 아주 사소한 계기로 더 이상 스스로를 뒷전으로 몰아넣는 걸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태국 여행 중에 생긴 그 일에 나는 '그라놀라 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 그때부터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그라놀라는 나 스스로에게 불친절해지려는 순간마다 내 편이 되어줄 것을 상기시켜주는 상징 같은 것이 되었다.
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멀쩡한 방학을 놔두고 굳이 학기 중에 수업을 째고 태국 요트 여행을 가자는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가 게시판에 올라왔는데, 순식간에 12명이 모여들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요트를 직접 몰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는 그리스인 마이클이 주축이 되어 이탈리아, 인도, 중국, 미국, 이스라엘, 홍콩, 노르웨이, 레바논, 한국에서 온 이들이 모여 푸껫으로 향했다.
나는 잔뜩 신이 났다. 6인용 요트를 두 대 빌려 나눠 탔는데, 내가 탄 요트는 '프린세스 안나'라는 고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요트를 타기는커녕 가까이에서 본 적도 없던 나는 영화나 잡지에서 본 것처럼 마린룩 원피스에 선글라스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우아하게 갑판 위에서 칵테일을 홀짝 거리는 것을 상상했지만(나는 실제로 원피스를 챙겼다), 현실은 그리 우아하지 못했다.
요트를 운전할 수 있는 스키퍼 한 명과, 요트라고는 처음 타봐서 그저 들뜨기만 하고 그다지 쓸모는 없는 5명이 스키퍼의 지시에 따라 허둥대며 갑판 위를 기어 다녔다. 걸핏하면 넘어졌고, 서로 박치기를 했으며, 머리는 늘 산발이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방향을 바꾸면 서브 돛을 풀고 좌우로 휙휙 돌아가는 붐(Boom, 돛의 아랫부분을 지지하는 대)에 얻어맞지 않으려고 몸을 낮추며 손바닥이 아리도록 밧줄을 풀고 감았다.
화장실은 매우 좁았다. 중앙에 서서 손을 뻗으면 네 벽면에 모두 손이 닿았는데, 그나마 팔을 쭉 펼 수도 없었다. 아침마다 우리는 변기에 엉덩방아를 찧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 성냥갑 같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샤워를 했다. 배에 미리 실어온 물로 6명이 씻고 요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조금 꼬질꼬질했다.
선실은 총 3개여서 2명씩 한 방을 썼는데, 방은 딱 침대 사이즈만 했다. 문을 열자마자 침대에 무릎이 닿았고, 천장이 너무 낮아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마를 박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했다. 계단 아래에 위치한 선실은 좁고 멀미가 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갑판 위에 바글바글 모여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놀았다. 책을 좀 읽을라치면 시도 때도 없이 물이 튀어 종이가 너덜너덜 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낄낄 거리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꾸벅꾸벅 졸거나,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놀았다. 우아하고 평온하진 않았지만 더 바랄 것 없이 좋았다.
요트를 타고 바람을 받으며 하루 종일 끝도 없는 바다를 달렸다. 바람이 좋으면 시동을 끄고 돛으로만 달리는데 속력이 엄청났다. 우리의 스키퍼인 마이클은 종종 바람이 까다롭지 않은 순간을 골라 우리들에게 번갈아가며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서로 해보고 싶어서 줄을 서서 기다릴 때가 많았는데, 그때도 나는 쉬이 내 차례를 양보했다. 어떨 때는 잠시 멈춰서 바다 한복판에서 다이빙 쇼를 하기도 하고, 엉덩이를 내밀고 코만 박은 채 스노클링을 했다. 라군을 발견한 날이면 딩기 보트를 띄워 라군에 들어가 수영을 하기도 했다. 성인 6명이 엉덩이를 걸치면 가득 차는 작은 딩기 하나에 다닥다닥 붙여 앉아 파도를 넘어가다 보면 도대체 바다는 얼마나 크고 깊은 건가 가늠이 되지 않아 어지러웠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영화를 찍었다는 섬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밤이 되면 야광 플랑크톤이 있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움직일 때마다 온몸을 휘감는 불빛을 보며 황홀한 기분에 빠져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흔들거리는 가스스토브 앞에 서서 묘기를 하듯 저녁을 준비하고, 바비큐 통에서 고기와 소시지도 구워 먹었다. 맥주를 마시다 다 떨어지면 보드카를 마셨다. 어디서부터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깜깜한 밤에 빽빽하게 들어찬 별을 바라보며 갑판에 다 같이 벌러덩 누웠다. 병 채로 돌려마신 보드카 때문에 낭만이 넘쳐흘러 아침이면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할 철학적인 질문들을 서로에게 쏟아가며 밤을 새웠다. 낮이 되면 가까운 육지로 가서 물과 음식과 술을 채우고 다시 요트에 올라탔다.
그 모든 아름다운 기억 사이에 강렬하게 박혀있는 것은 바로 그라놀라 사건이다.
여행 3일째가 되던 날 배를 정박해 두고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밤새 파도가 심해 잠을 잘 이루지 못한 날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요트 생활에 피곤이 쌓여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싶은 날이었다. 나는 과일과 그라놀라를 넣은 요거트를 시켰는데, 주문할 때 점원에게 그라놀라를 빼고 플레인 요거트만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사람들의 음식이 모두 나온 후에도 요거트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약간 조급해졌다. 모두가 식사를 마쳐갈 때 즈음 드디어 나온 요거트에는 그라놀라가 아주 잔뜩 골고루 섞여있었다. 피곤에 입안이 까끌거려 도무지 손이 가지 않았지만 나는 조용히 수저를 들었다. 옆에 있던 이탈리아인 친구 안티모가 놀라며 물었다.
‘너 그라놀라 빼 달라고 하지 않았어?’
‘응. 근데 다시 주문하면 오래 걸리고, 다들 기다려야 하니까 그냥 먹을게. 싫어하지만 못 먹는 건 아니니까’
‘내가 다시 달라고 얘기해줄게’
‘아냐, 괜찮아. 그냥 먹어도 돼 별거 아냐’
‘아니야, 그라놀라는 정말 중요한 거야! 너는 네가 먹고 싶은 아침식사를 할 권리가 있어!’
안티모는 기어이 점원을 불러 주문을 수정해주었고, 웨이터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요거트를 다시 가져다주었다. 이야기꽃을 피우던 친구들은 내가 요거트를 다 먹고 난 이후에도 한참을 더 낄낄거리다 출발했다.
요트에 오르기 직전에 안티모는 '잊지마. 그라놀라는 중요해.'라고 다시금 나에게 확인을 시켜주었다. 얘는 참 별 것 아닌 것에 친절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친절했다. 그게 나랑 가장 다른 점이었고, 그가 빛나 보이는 이유라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요트에 앉아 그 후로도 한참 동안 그라놀라를 생각했다. 왜 그라놀라가 싫다고 말을 못 했을까. 그라놀라는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다시 주문하기를 주저했던 그때의 마음은 그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굳이 폐 끼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에 가까웠다.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것을 쉽게 양보하고, 늘 내 필요와 욕구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 그 과정에서 내가 뭘 원하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이 안쓰러웠다.
살면서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내 편을 드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다. 왜 주문을 이따위로 받는 거죠!?라고 매번 날카롭게 싸움을 걸어야 한다는 것도, 모두가 기다리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것을 주장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의 욕구와 필요와 선호를 너무 손쉽게 내던지지는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의 욕구는 인정하지만 양보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과 나의 욕구를 아예 무시해버리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를 알아차리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선 들여다보는 것, 딱 그만큼만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자랐으면 좋겠다. 나는 내 편이 되어주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