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잌 Nov 06. 2019

실없는 웃음이 모여

몽골, 그저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

회사 들어간 첫 해였다. 몇 년 만에 처음 신입사원을 받은 부서여서 사원은 나 하나였고 내 바로 위로는 말년 차 대리님이 한 분, 그 위로 주르륵 과장님, 차장님, 부장님이 계셨다. 


팀장님은 내가 입사하기 바로 몇 달 전 외부에서 새로 오신 분이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오셨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팀장님도 그때 본부 분위기 파악이 제대로 안되셨던 듯하다. 혹은 그 핑계 삼아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를 누리고 싶으셨던 건지도 모른다. 


본부장님은 20년이 넘도록 휴가를 쓴 날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이셨다. 본부장님 밑에서 일하는 그 누구도 감히 3박 4일을 넘는 휴가를 써 본 적이 없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팀장님은 2주 휴가를 선언하셨고, 그 뒤를 이어 신입사원인 내가 냉큼 2주 휴가를 냈다. 나는 눈치도 없고 생각도 없었으며, 골 때리게 멍한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도 명분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은 휴가 계획을 메일로 적어서 보냈다. 유네스코에서 하는 국제 자원봉사 프로그램 참석 차 몽골에 갈 계획인데, 프로그램 기간 2주를 채우고 새벽 비행기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출근을 하겠다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네스코가 아니라 외계인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일이라도 2주 휴가는 어림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었는데, 참 당돌하게 들이밀었다. 어쨌든 나의 휴가는 승인이 났다. '아주 좋은 취지인 것 같으니 다녀와서 후기를 공유하라'는 말과 함께. 순진무구의 탈을 쓰고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행동에 거리낌도 없던 신입사원에게 차마 안된다는 말을 못한 본부장님의 속은 어땠을까 지금 상상해보면 웃음이 난다.


몽골 자원봉사는 어느 주말 하릴없이 웹서핑을 하다 불현듯 '국제 자원봉사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찾아본 것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다양한 국가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프로그램들 가운데 시기도 내용도 딱 맞는 것이 바로 몽골에서 어린이들을 돌봐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휴가 전날, 웃는 표정 뒤에 어금니를 악물고 있을 것이 뻔한 선배들에게 해맑게 인사를 드리고 몽골로 향했다.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이 여름 동안 지낼 캠프가 있는 곳은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몇 시간을 더 가야 했다. 드넓은 초원에 아이들의 숙소, 교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오두막만 몇 채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큰 방에 자원봉사자 열댓 명이 각자 가져온 침낭을 깔고 잤는데 초여름이었지만 밤이 되면 기온이 훅 떨어져 꽤 추웠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두툼한 담요를 깔고 침낭 위로도 담요를 덮었지만 추워서 다들 눈만 내놓고 침낭에 파묻혀 잤다.


심령사진 아님 주의. 자원봉사자 숙소


가스는 LPG통을 두고 사용했고, 전기는 넉넉하지 않아 해가 떨어지면 양초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고 요리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냉장고가 없어 식재료를 보관할 수가 없었기에 현지인 도우미 한 분이 일주일에 두 번씩 필요한 것들을 실어다 주었다. 


근처 개울에서 물을 길어 큰 통에 채워 넣고 세수를 하거나 요리에 사용했고, 머리를 감고 싶을 때에는 개울가에 세숫대야를 들고 가서 씻었다(물론, 더러워진 물은 흘려보내지 않고 따로 모아서 처리했다). 자원봉사자들끼리 서로 머리에 물을 부어주는데 머리가 깨질 듯이 차가워서 방금 내 머리를 누가 세숫대야로 후려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이후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머리감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과 함께 할 놀이를 구상하고, 풀밭을 뛰어다니고, 숨바꼭질, 과자 따먹기, 풍선 터뜨리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하며 놀았다(이때에는 20대여서 체력이 괜찮았다). 허구한 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실없이 웃어댔다. 아이들보다 우리가 더 신난 건 아니었을까 싶은 날도 많았다. 또 어느 날은 아이들 화장실을 짓기 위해 땅을 파고, 뒷산에 올라가서 땔감용 나뭇가지를 꺾어오고, 못질을 했다. 


점심식사 후 아이들 낮잠 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는데, 조금 친해지고부터는 숙소에 누워있다가도 밖에서 아이들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나가서 뛰고 뒹굴고 노래 부르고를 무한 반복했다. 


밤이 되면 숙소 앞 너른 풀밭에 다 같이 손을 잡고 둥글게 서서 자장가를 불렀다. 매일 부르니 2주 뒤에는 우리도 몽골어 자장가를 얼추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어두워서 서로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데 아이들은 용케도 자기가 좋아하는 자원봉사자를 찾아 옆에 서서 손을 꼭 잡는다.  


자장가와 자그맣고 따뜻한 손, 쏟아지는 별과 촛불과 따뜻한 차로 마무리하는 하루. 


냉장고도 수도도 가스도 전기도 제대로 없었지만 떡진 머리의 자원봉사자들은 매일이 즐거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불편했던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준 것보다 받은 게 많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상투적이지만 정말 딱 그랬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베풀었는지가 모호해져 버린 날들. 


2주 차 금요일이 되던 날 그새 정이 많이 들어버린 아이들과 헤어지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각자 집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주말은 자원봉사자들끼리 짧은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화장실이 어디냐는 나의 질문에 현지 도우미는 씩 웃으며, 

"Toilet is everywhere!"  

라고 답해주었다. 그나마 듬성듬성 덤불이라도 있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Toilet is everywhere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에서 침낭을 깔고 잤는데, 천장 중앙이 뚫려있는 구조라 그곳으로부터 온갖 생명체들이 낙하를 했다. 불빛 하나 없이 캄캄한 밤, 자려고 누웠는데 '툭, 투둑'하고 뭔가 떨어지더니 곧이어 '샤샤샤샥'하며 많은 다리를 재빠르게 움직여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침낭 안으로 깊숙이 집어넣었지만 자꾸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결국 게르를 뛰쳐나왔다. 그렇게 하나 둘 밖으로 나와 버려 결국 게르 안은 텅 비었다.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서울에서 20년이 넘게 살면서 본 별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수의 별이 그날 밤 한꺼번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살면서 본 적이 없다. 올려다보느라 목이 부러질 듯 아팠지만 추위에 담요를 둘둘 말아, 서있는 김밥 형태를 한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하염없이 별이 촘촘히 박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별빛 말고는 아무 빛도 비치지 않고, 모두가 말을 잃어 한없이 조용한 그곳에서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한 명의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아마도 계속해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을 누군가가 곧이어 슬며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별만큼 많았던 실없는 웃음과, 함께 했던 시간만큼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아마도 그렇게 쌓인 마음으로 맺어진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가 아마도 함께하는 시간이 아닐까. 바쁜 일상에 쫓겨 가족들과 마주앉아 웃을 시간을 내는 것도 힘들 때가 많았다. 미안한 마음에 그걸 보상하려고 돈을 들여 좋은 선물을 사고, 비싼 것을 먹으러 갔다. 그것도 좋지만 그저 같이 실없이 웃고, 손을 잡고, 따뜻한 음식을 나눠먹는 시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안고 몽골을 떠났다.   


월요일 새벽, 약속대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사무실로 향했다. 패기 넘치게 출근을 했지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거지꼴을 하고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사수가 제발 그렇게 흰자만 보이는 눈으로 쳐다보지 말고 제발 퇴근을 하라고 부탁해서(?)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왔다. 마무리까지 아름다운 휴가였다.

이전 07화 미움이 쌓여 독이 될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