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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잌 Nov 11. 2019

미움이 쌓여 독이 될 때

스리랑카, 다른 사람의 불행이 아닌 나의 행복에 집중할 것

어쩌다 보니 생뚱맞은 조합으로 스리랑카 여행을 가게 되었다. 몇 명이 계획했던 여행인데, 각자가 몇 명씩 더 초대하다 보니 결국 열댓 명 가까이가 모였다. 그게 예상치 못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는데...


추가된 인원 중에는 내 친구(R)와 얼마 전 헤어진 남자(A)와, 같은 학교이긴 했지만 그전까지 말도 한번 나눠본 적 없던 여자(B)가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스리랑카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A와 B가 같이 앉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 둘은 이 여행 전에는 서로 잘 몰랐던 사이였으나, 우연히 버스에서 옆에 앉게 되어 여행 내내 점점 친해지게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R은 나에게 마치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을 본 것 같은 표정과 격앙된 말투로 나에게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들었어? A가 한 마디 할 때마다 B가 완전 하이톤으로 웃던 거? 오는 길 내내 시끄러워서 돌아버릴 것 같지 않았어? 아니 버스에 자기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 둘이 같이 앉았는지도 몰랐고, 귀에 거슬리는 것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으므로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몰랐다. 


B는 그저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남자들이 하는 시시껄렁한 말에도 깔깔거리며 웃어주었지만, 나를 포함한 다른 여자애들에게도 생글생글 웃는 눈을 하고는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나는 B에게 무례하게 굴 생각은 없었지만 안 그래도 폭발 직전인 R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므로 가급적이면 B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Sigiriya Rock


1500년도 더 된 바위 위의 왕궁터, 시기리야로 향했다. 가만 서 있어도 발바닥까지 땀이 줄줄 흐르는 더운 날씨에 높이가 200M가 넘는 바위를 좁은 계단으로 걸어 올랐다. 그것도 모자라 절벽 중턱부터는 말벌 때문에 안전 상 긴팔의 두꺼운 점프슈트를 입어야 했다. 내 앞을 거쳐간 수많은 관광객들의 땀으로 흥건히 젖은 옷 안에서 사우나를 하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런 곳에 왕궁이 지어진 놀라운 역사적 배경과 절벽에 그려진 아름다운 벽화, 눈 아래에 펼쳐진 풍경이 그 모든 것을 잊게 해 주었다.


Sigiriya Rock, 사자바위


드디어 도착한 바위 위 왕궁터에서는 때마침 불어온 시원한 바람 덕분에 마냥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R의 눈에는 이 모든 놀라운 광경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B의 옷차림이 문제였다. 점프슈트를 벗어던지고 나자 민트색의 나시를 입고 있는 B의 가는 팔과 도드라진 쇄골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Whale watching 투어를 예약한 날은 유난히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파도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덩달아 오장육부가 꾸물럭 거리는 불쾌한 기분을 참으며 왕복 8시간이 넘도록 배를 탔지만, 고래는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했다. 몇몇은 얼굴이 하얘지다 못해 연달아 위액을 쏟아내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 배만 타면 멀미를 하는 나는 다행히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했다. R은 멀미도 하지 않았는데 배 위의 누구보다도 괴로워 보였다.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B는 눈을 질끈 감고 축 늘어져 있었는데, 그녀에게 어깨를 빌려준 것이 바로 A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해변에 누워 낮맥을 하며 쉬는 동안에도 나는 울상을 짓고 있는 R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틈만 나면 나에게 B가 얼마나 거슬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A가 얼마나 비열한 인간인지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그렇게 R이 괴로워하고 있는 동안 A와 B는 시종일관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눈에는 그 둘이 특히 더 친해 보이지도 않았고, 연인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R에겐 그게 보이지 않았겠지. 시간이 한참 지나 모두 각자의 삶을 잘 살고 있는 지금, R은 스리랑카 여행에서 무엇을 기억할까? 


그 여행에서 내가 R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던 건 나 역시 그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가끔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이 가득 차올라서, 오직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만으로 행동할 때가 있다. 나는 오로지 나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행동하면 되는데, 나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위해서 움직이고 만다. 미움이 가득 쌓여서 자신을 갉아먹는 지경이 되었을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나의 20대는 (심지어 30대도) 종종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서 이걸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빼내야 할지 몰라 허우적거렸다. 이건 물에 빠져 코와 입으로 물이 한가득 들어와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기도 하고, 온몸의 장기가 제멋대로 꿀렁거리는 불쾌한 기분이기도 하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너 때문에 내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반드시 알려줘야겠고, 네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견딜 수 없이 속이 쓰렸다. 하지만 아무리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내가 옳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절대 자기가 틀렸단 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내 기분이 상했다는 걸 안다고 한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이 돌아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 너를 괴롭게 만들려면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몇 배는 더 괴로워야 한다는 것을 소중한 내 인생을 낭비하면서 배웠다. 지금도 가끔 미운 사람 때문에 속이 쓰릴 때가 있지만, 그 사람의 감정과 인생은 내가 손댈 것이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



얼마 전, 일로 만난 사람과 갈등이 생겼다. 같이 잘 지내놓고는 마지막에 서로 요청사항이 달랐는데, '같이 합의점을 찾아보자'라고 제안한 나에게 상대방은 '됐고, 제가 말한 대로 해주세요'라고 말하며 미팅을 하다 말고 박차고 나가버렸다. 나에겐 그 사람이 요청한 내용을 다 들어줘야 할 의무는 없는 상황이었고, '합의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그렇게 가신다고 해도 제가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계속해서 자기가 원하는 내용만을 문자로 전달할 뿐이었다.


그 일은 내가 그 당시에 해결해야 했던 수많은 문제들 중 일부일 뿐이었고, 내가 조금 손해를 보고 말면 될 사안이었다. 나 역시 원하는 것을 계속 주장할 수 있었지만 그러려면 꽤 긴 싸움이 될 것 같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겪게 될 감정 소모에 비해 얻는 것은 크지 않아 보였다. 나는 그냥 순순히 양보하기로 했다. 상황을 모두 알고 있던 지인은 나의 결정에 대해 '안돼! 그럼 네가 지는 것 같잖아'라며 날더러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말라고 부추겼다. 아니, 그럼 원하는 걸 해주되 좀 늦게 해 주거나 아니면 욕이나 잔뜩 하라고 했다. 구구절절이 쏘아붙이는 대신 난 그저 말없이 요청사항을 들어주었고, 그렇게 그 사람과 그에 대한 미움을 내 인생에서 깨끗이 지우는 걸로 만족했다.


물론, 괘씸한 마음에 몇 날 며칠 마음이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즐거워질 것인지 혹은 괴로워질 것인지에 따라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서는 안될 것 같았다. 오직 나에게 가장 좋은 행동은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판단을 하자. 그 행동이 내가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덩달아서 기쁘게 만든다고 해서 그게 싫어서 나도 괴로워지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종종 멍청한 짓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저 그 사람이 즐거워할 모습을 보기 싫다는 그 이유만으로 미련하게 군다.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4일간의 스리랑카 여행이 그저 꿈처럼 사라져 버렸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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