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를 파도에 맞서게 세워주면서
횡요가 심하게 달려들 경우, 선수를 파곡에 좌우 45도 정도 되도록 침로 조정을 해주어 파곡에 선체가 눕지 않도록 해준다.
뒤바람 뒤 파도를 주던 기상이 황송할 정도로 환한 날씨로 되어서, 엊저녁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아주 좋았던 기상이었는데, 슬금슬금 다시 일기 시작한 바람이 어느새 한 번씩 물거품을 선수에 퍼부어 주면서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간헐적으로 다가서서 둔중한 워터 해머링으로 한 번씩 선수루를 가격해 주고 빠지는 파도를 확인하며 이번 항차에 한 번쯤은 만나게 되리라 각오하고 있던 야단법석을 떨게 될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기에 은근한 각오를 다진다.
브리지로 올라갔다.
어둠 속에서 당직 중이던 일항사가 반가이 맞이하며 새벽 다섯 시부터 날씨가 나빠졌다는 보고를 한다. 기압도 시간당 2 hpa씩 떨어지며 바람도 순간적으론 50 knots를 웃도는 맹위도 보인단다.
갑자기 배가 횡요를 한다. 이미 수동 조타로 바꾸어서, 침로 유지를 잘 하고 있는데, 흔들린다는 것은 너울의 방향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확연하게 바뀌어 간다는 뜻이다.
어찌 된 일인가 살피려고 갑판상 조명등인 Flooding Light를 켜서 배 옆으로 오는 너울과 파도를 관찰해 본다.
지금껏 선미 쪽인 일곱 시 방향에서 오던 높지 않았던 너울이, 어느새 아홉 시 방향으로 바뀌었고, 그 너울을 맞이한 왼편 갑판에는 바닷물이 올라와서 갑판 상 구조물에 으름장을 놓듯이 허옇게 부딪히며 파도로 부서져 내리고 있다.
배는 힘껏 옆으로 누웠던 몸을 이번에는 다시 반대편으로 기울인다. 아래층 선내의 어떤 방에서 무엇인가 넘어지며 굴러 떨어졌는지, 쨍그렁 깨지는 소리와 우당탕 구르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도저히 이대로 갈 수는 없다고 판단하며 즉시 타를 왼쪽으로 돌리도록 조타 명령을 내린다.
지금껏 270도로 가던 침로의 숫자가 줄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냥 갔으면 또 한 번 옆으로 눕게 만들만한 커다란 파곡(波谷)도 슬그머니 덮어주듯 쓸어주며 지나쳐 준다.
그동안 완전히 날이 새었다. 쌍안경을 들어 선수 쪽 파도가 들고 난 갑판을 살펴본다.
5번 창 좌현 선 측에 설비된 왼쪽 파이로트 용 사다리의 발판이 그대로 떨어져 버렸고, 아무래도 정비의 손길이 모자라서 녹이 많이 발생하던, 그 발판 아래쪽 남겨진 철판이 시꺼멓게 녹이 쓴 모습을 들어내 보이고 있다.
또 선수루 왼쪽 뒤에 있던 6인승 용 Life-raft는 출항 시 황천에 대비하여 창고에 넣어주어 무사한 상황이나, 그대로 남겨 두었던 Life-Raft 승선용 사다리는 묶은 줄을 끊어 내었는지 풀린 채 멋대로 갑판에 내팽개쳐져 선체 운동에 내맡기고 있다.
그대로 놓아 둘 경우 다시 파도가 올라오면 이번엔 유실될 우려가 염려되어, 보침 상황이 안전함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갑판장과 갑판원 한 명을 선수 쪽으로 내 보내어 흩어진 물품들을 얼른 수납 처리하도록 작업지시를 내린다.
저기압의 접근을 알리는 상황이 이 정도인데, 유니막 너머의 우리가 지나가야 할 곳에서 꾸물거리며 접근하고 있는 폭풍 속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는 건, 계속 파도 밭을 뒹굴며 달려야 한다는 고달픈 일이다.
그러니 피해서 빨리 간다고 하다가 마주치는 일 때문에, 빠르다는 지금 속력이 오히려 걱정스럽고, 한편으론 우선은 달리고 봐야 하는 배의 입장에서, 현재 형편으로 빠른 셈인 10노트 정도로 달려주는 상황이 반갑기도 한 것이다.
받아 든 기상 팩스에 나타난 저기압은 사이좋게 셋으로 나뉜 채 마치 손을 잡고 강강술래라도 하려는지 서로의 위치를 경쟁하듯이 북동 북쪽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동하는 속력은 그곳까지 오던 때와는 달리 좀 떨어지고 있어, 마치 우리를 그 부근에서 기다리려는 모습으로 비친다. 혹시 그곳을 빨리 지나가려고 시도하다가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을 고달프게 한다.
항로 추천 회사에 본선의 상항을 알려주며 좋은 도움말의 추천을 요청하는 전문을 보내면서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결정을 하였다.
빨리 달리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이 황천이 지나갈 때까지 -선수를 파도 쪽으로 맞출 수 있도록- 키를 쓸 수 있는 최소의 속력으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 즉 -Heave to-를 우선 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무섭게 흔들어 주며 20도가 넘는 횡요를 하던 선체가, 이제는 똑바로 세워지며 한 번씩 밀려오든 파곡은 선수로 적당히 쪼개며 밀어붙이니 3 knots의 속력으로 유지되지만 이 바닥에서의 흔들림은 잘 융화해주며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