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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덕에 나는 빌어먹을 시인이 된다

by 딴짓

좌표를 잊어버렸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한 걸음 내딛을 수도 없는 밤

찾아 나서야 하는 막막함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

시계는 더 어두운 새벽으로



나란 존재는

내게 찰싹 달라붙어

내가 여기 있다고

나를 돕겠다고 속삭이지만

간신히 눈을 떴을 때

내 가슴 위에 들러붙어 숨을 조이는 불안은

나를 도울 수 있는가



너는 어디 있나

네 숨결은 어디에 있나

발랄하고 차가운 자동응답만이

전화할 줄 알았다는 듯이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러므로 영원히 받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조롱한다



소파에 검은 돌처럼 웅크린 형상

양쪽 어깨가 무른 듯 아파오지만

어깨를 만 채 가만히 누워

있는 수밖에

기다리는 기다리는 수밖에



잘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어

부랑아처럼 내 집에

몸을 말고 누운 채

너의 발자국 소리를 상상하는 동안

나는 시인이 된다

빌어먹을 시인이 된다





<친애하는 아들놈에게> 연재날인데

써 둔 글이 없더라고요.

어쩌나... 하던 터에

며칠 전 아들이 새벽까지 전화도 받지 않고 (또) 늦게 온 날이 떠올랐어요.

그때...

아들을 기다리며 잠에 취해 뭔가를 녹음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확인해 보니 만취자에 가까운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잠에 취해 말은 한없이 늘어져 있었고 심하게 뭉개져 있었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고 추측할 수 있는 말만 대강 받아 적고

무안함에 파일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자의식 과잉으로 심각하게 취해있던 그 밤,

그럼에도 그때의 쓰린 감정이 떠올라 별로였어요.


먼 미래에는 깔깔깔 웃게 되려나요?

이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려나요?

멋쩍어하게 되려나요?


그러기를.

나중에 이 시를 다시 보며 깔깔깔 웃게 되기를.

별 것도 아닌 걸로 참 유별났었지 그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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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