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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읽씹

by 딴짓

한참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하천길로 내려가는 인도 입구에 섰다. 좋아하는 퍼플 컬러의 리넨 원피스를 입고, 왼팔에는 파 한 단을 끼고, 오른쪽 어깨에는 장을 보느라 한가득 찬 에코백을 힘겹게 멘 상태였다. 핫도그를 꼬나물었다.


'겁나 이쁘네.'

핫도그를 한 입 깨물고는 돌연 바뀐 하늘빛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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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동안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걱정과 분노는 연이어, 때로는 동시에 휘몰아쳤다.

아들은 꼬박 24시간이 지난 후에야 전화를 받았다.

"학굔데?"

수차례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내며 밤을 새우고, 다시 아침이 되고, 다시 저녁이 되었는데,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아들의 뻔뻔한 낯짝에 치가 떨렸다.


안도감과 함께 나는 분노에 휩싸였다.

나는 실종신고 문자 내용을 복사해서 아들 이름을 넣어 작성하고 아들에게 전송했다.

이미 실종 접수가 되어, 곧 이 메시지가 우리 시 전체에 뿌려질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고, 아들도 곧 알아차릴 거지만, 잠시라도 아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 식으로 맞대응도 막대응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내 안에서 말리는 손길을 걷어차 버렸다.


엄마가 걱정으로 피가 말릴 걸 뻔히 알면서도 마치 코웃음을 치듯 메시지와 전화에 대응하지 않은, 그렇게 당한 세월이 지긋지긋해졌다.


'야 이 새끼야, 너도 읽씹 당해봐.'


아들에게 연거푸 메시지와 전화가 왔다. 나는 대꾸하지 않은 채, 에코백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작은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형이 집에 와서 자고 있다고 했다.

나는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OO이한테는 할머니뿐이잖아. 다른 말은 하지 말고, 내일쯤 전화해서 우리 OO이가 최고다, 자랑스럽다, 할머니가 기대 많이 하고 있다, 사랑한다, 이런 얘기 좀 해주세요."

"그래야지. 암, 그래야지."

긴 하소연 끝에 나는 친정엄마께 그런 부탁을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오래간만에 전화해서 내 자식 걱정만 잔뜩 늘어놓을 뿐 정작 칠순이 넘어서도 여전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엄마의 안부는 제대로 여쭙지 못한 게 생각났다. 또한 우리 부모님은 우리 남매가 자랄 때 단 한 번도 거친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외할머니는 말이 아주 거친 분이셨다. 결혼한 딸들에게도 이 년 저 년 하셔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어떻게 그걸 닮지 않았지? 이 의문이 이제야 든다니?


현관 앞에 아들의 신발이 있다. 자고 있는지 방 불은 꺼진 채로.


무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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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