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48분. 놈이 태연하게 밥을 먹고 있다. 어느새 한가득이던 볶음밥 그릇의 바닥이 보인다.
목적지까지 도착 시간은 8시 50분. 그로부터 1분이 지나면 그에게서 건조한 메시지가 올 것이다.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전에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 놈의 상황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올해 백 번도 더 반복한 일. ‘죄송합니다. 선생님.’
나는 놈의 보호자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저주한다. 고봉밥을 내준 것, 생새우 껍질을 벗기고 살만 잘게 다져 볶아 푸짐하게 얹어준 것. 하! 지랄이다.
방학 날이라 어차피 1교시 후 끝날 테니 그만 (쳐)먹고 빨리 가라고 말하지만, 놈은 “밥 먹을 때 재촉하지 마”라고 한마디만 할 뿐이다. 8시 53분, 올블랙 무신사 스타일에 보스턴백까지 걸친 녀석이 경쾌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선다. 나는 그제야 짧은 한숨을 토해낸다. 마지막 날까지도 담임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일상적이다.
오늘은 OO고등학교 방학식. 다음 학년 진급을 위한 최저 등교 일을 딱 3일 남겨놓고 녀석은 고2 종업식을 맞았다. 하루씩 날이 줄어들 때마다 어찌나 스릴이 넘치던지 마치 데스 게임을 하듯 심장이 쫄깃했다. 가슴 안쪽이 뭔가가 확확 타오르는 듯 뜨끈했다. 그렇게 1년.
고등학생의 자퇴율이 2퍼센트를 넘는다고 한다. 자퇴가 흔한 시대지만, 나는 아들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오면 그것대로 헤쳐나가겠지만, 엄마는 가능한 네가 고등학교를 마치기를 바란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니, 검정고시는 쉽대? 아들도 학업이 싫은 거지 친구가 싫은 건 아니니 고등학교는 마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문제는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
작년 3월, 나는 조심스레 희망을 품었다. 새 학년이니까 혹시 아들이 조금 마음을 먹는다던가?
4월, 나는 좌절했다. 학기 초 반짝 등교하던 아들은 또다시 신생아처럼 오후까지 자기 시작했다.
5월, 나는 계속 좌절했다.
6월, 나는 여름방학을 절박하게 기다렸다.
9월, 나는 다시 조심스레 소망했다.
10월, 나는 겨울방학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방학은 자그마치 해를 넘겨 2026년 1월 첫 주.
11월, 방학은 여전히 까마득했고, 녀석은 최저 등교 일을 가파르게 깎아 먹고 있었다.
12월, 나는 불안하게 손가락을 세기 시작했다. 최저 등교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들은 고2의 마지막 등교를 했다.
“떡이라도 돌릴까 봐.”
나는 세상 평화롭고 여유로운 여자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출근 중인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담임 선생님과 근태 문제 때문에 거의 매일 메시지를 주고받았잖아. 선생님은 또 뭔 죄야.”
“졸업할 때 학교에다가 졸업장 하나 더 달라고 해. 자기도 거의 학교 다닌 셈이잖아.” 남편이 웃으며 대꾸했다.
풉, 뿜을 뻔했다. 그런데 졸업이라니. 아직 1년이나 더 남았는데.
어쨌든 이렇게 또 한고비를, 1년을, 한 살을 넘겼다.
고등학교 졸업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게 뭐라고. 큰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제발’을 외치고 있다.
작년, 나는 24년의 직장 생활을 마친 후 어쩌다가 강사가 되었다. 극한 내향인으로서 결코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전개였지만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주로 고등학교에 인공지능과 관련한 특강을 가게 되었다.
아들과 같은 학년의 다른 학생들 앞에 설 때마다 집에서 자는 내 자식이 생각났다. 그때마다 ‘현타’라는 단어가 강렬하게 내 얼굴을 때렸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우울하고 지친 표정. 공허함. 정신적 늙음 비슷한 것.
“안녕하세요!”
여느 때처럼 두 톤 높여 명랑하게 인사를 하고 교실 문을 열었다. 문제집을 풀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던 학생들 몇몇이 고개를 들어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쿵.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 반도 힘들겠구나.
3교시 수업 종료종이 치자 나는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 나왔다. 3시간 동안 반응 0명. 지금까지 수업 중 압도적이었다. 과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정신 건강을 위해 빨리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한없이 무거워진 마음이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학년말, 아이들에게 특강 수업은 수능과 무관한 무가치한 시간에 가까웠다. 많은 아이가 자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화장을 하거나 간식을 먹었다. 문제집을 푸는 아이는 격려라도 해 주고 싶은 판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는 수업은 견디기 어려웠다.
수업은 때로는 나았고, 때로는 별로였다. 흔하진 않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뜨겁고 잘 따라와 주는 학교도 있었다. 강사 대기실까지 찾아와 수업이 너무 좋았다며, 꼭 다시 와달라고 한 학생들도 있었다.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아이들은 흐릿했다. 내 준 퀴즈가 풀리지 않으면 쉽사리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이런 걸 왜 하냐고, 언제까지 해야 하냐고, 답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들의 지치고 예민해진 모습이 안타까웠다.
입시 경쟁, 대학 외의 선택지 부재, 사회적 서열, 실제 감옥과 구조가 흡사한 학교 건물에서 하루 종일 있는 것, 가족관계, 교우관계, SNS. 그들이 우울할 이유는 많았다.
때로는 그냥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이들을 그냥 두면 어떨지 생각했다. 그래도 저 시절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거니 기대하고 응원하며 나는 또다시 내 아이를 떠올렸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남학생들을 볼 때면 더욱 그랬다. 아이고 학생들아, 아들들아.
그 아이들도 이번 주에는 모두 방학이다. 방학에는 학원에 다닐 것이고, 올해는 올해의 고단함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잘 살아내길 바란다. 막연하고 무책임하고 소심하게 읊조려본다. “고생 많았어.” “힘내.”
학생 여러분, 선생님들, 부모님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ps. 이 글의 제목은 조승리 작가의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에서 차용하였습니다.
To 구독자분들
그간 연재를 못 한 것에 대해 구독자분들께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 해를 무사히 넘겼다는 보고는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간 상상을 넘어서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차마 기록으로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언젠가 매운 맛 버전으로 야심 차게…… 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