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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Apr 26. 2024

새벽 3시에 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에게(마무리)

아들을 그렇게 부르지 마요  

지난 이야기: 

05화 새벽 3시에 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brunch.co.kr)

"저는 일산 살거든요. 가끔 밤에 나와서 일부러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녀봐요. 빈 놀이터가 없어요. 다 만석이죠. 아이들이 꽉꽉 차 있어요. 옥상문이 열린 곳에서는 다 자고 있고요.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은 괜찮은 아이들이에요. 안 보이는 데로 숨지 않았잖아요. 집에 들어갈 아이들이고요."



새벽 3시에 아들을 발견한 일을 지인에게 하소연하고 있던 나는 어느덧 눈물을 닦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청소년 상담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담담하게 이어간 그의 말은 내가 그날까지 가지고 있던 상식을 완전히 부수는 것이었다.  

-  지난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 






아이들은 밤이 됐다고 자지 않아요. 밤이라도 졸리지 않으면 안 잘 수 있는 거고, 친구를 만나러 갈 수도 있고요. 스마트폰으로 24시간 소통하는 아이들이에요. 신 인류라고 하잖아요. 완전 다른 세대죠. 이상한 한 두 명이 아니라 다 그래요.” 



그가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정. 통금. 이런 기준은 누가 세웠나요? 통금을 어기면 용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하셨죠? 그 약속은 누가 만든 건가요? 다 어른인 우리가 만든 거거든요. 그러니 청소년들은 어른의 말이라면 경계부터 하기 쉽고요. 거기다 상식을 운운하셨다니… 허허, 아이는 본능적으로 강하게 반박했을 거예요.”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고 눈만 깜박거렸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러니까, 그런 기준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통용되어 온 '일반적'인 것이고, 밤은 기본적으로 위험하고, 그래도 상식 선이라는 게 있는 거고…… 다시 ‘상식’이란 말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왔다.  



한국말은 한국말인데… 표현을 다 바꿔보세요.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녀라는 관점에서의 표현은 쓰지 않는 거죠. 상식, 통금, 엄마가, 자식이…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런 표현 모두요.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른이 말하는 일반적인 게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고 새벽 3시까지 오지 않는 자식을 그냥 두는 부모가 어디 있나요?” 
 

“그때도 청소년, 부모, 통금, 이런 표현을 쓰지 마시고 말해주세요.”


“핸드폰 잃어버리면 가만히 있지 않잖아. 찾을 때까지 찾잖아. 강아지 잃어버리면 찾잖아. 나한테 소중한 존재니까 찾으러 나간 거야... 어떠세요?”  


“아 그렇게요… 그런데 얘기했거든요. 왜 안 자고 기다리냐고, 그냥 자라고 하길래, 가족이란 서로가 신경 쓰이는 존재다,라고 말해줬거든요.” 


“글쎄요, 충분하지 않게 들리네요. 객관적인 표현으로는 맞는데, 그게 아들에게 깊게 와닿을지는 모르겠어요. ‘가족’이라는 일반적인 표현 말고, ‘너’를 기다리는 ‘나’로 구체화하면 어떨까요? 만일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 아들이 없어져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요? 살 수가 없잖아요. 너 없으면 나는 죽는다,는 느낌으로요. 너는 그럴 일 없겠지만 오토바이 사고로 죽는 아이들을 너무 많이 봤어. 그래서 걱정되는 게 내 마음이야… 여기에 통금, 상식, 약속이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는 거죠.” 



“집에서 진심으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요, 애들은 반드시 집으로 돌어갑니다.” 



아… 어휘를 완전히 바꿔야 하는 거군요… 어렵네요. 새벽 3시에 아들을 만났는데, 처음 본 아들 친구 이름을 물었다고 아들이 저한테 뭐라고 하더라고요. 참나… 아니 아들 친구 이름도 못 물어보나요?”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엄마’니까 아들 친구 이름을 묻는 것은 추궁처럼 들리거든요. 권력을 내세우는 것 같고요.”


“'아~ 그거. 사람이 처음 만나면 통성명을 하는 거야. 그래서 엄마도 OO이 엄마라고 밝힌 거고, 상대방도 이름을 말하는 거고, 그런 거야.’라고 환기해 주는 거예요. 나는 지금 엄마로서 네 관계를 추궁하는 게 아니다,는 걸 이야기해 주는 거지요.” 


“제 아들은 ‘아빠는 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말을 잘해요. 아들이 그렇게 말하면 저는 그래요. '그래 맞아, 아빠는 잘 몰라. 그래서 그러는데 좀 가르쳐 줄래?'라고요." 그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아, 그런데 앞으로도 또 너무 늦게 들어오면 어떻게 하죠? 3시는 상식적으로… 아니, 이 말은 빼고요. 아들은 술, 담배 안 하고 사고 치고 돌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 신경을 쓰냐고 해요. 저는 그때까지 잠을 못 자니까 죽겠어요.”


"아들이 오면 '아들 왔네' '늦었네' '피곤하겠다' '밥 먹었니?' '엄마가 많이 기다렸어' 이런 말을 먼저 해주세요. 그리고 이번에 아들이 누구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아셨잖아요. 그러니까 아들이 기다리지 말고 엄마는 먼저 자라고 하면 이렇게 말해주시면 어떨까요?" 


“그래, 엄마는 아들 믿어. 엄마도 노력할게.” 






상하 서열이나 관계의 언어를 모두 뺀다… 생각을 곱씹고 있는데 그가 환하게 웃으며 한 마디를 던졌다. 결정타였다.  


“아들을 부를 때는요, 마음속으로 ‘민준아’ 말고 ‘민준 씨’라고 한번 부른 후에 불러보세요.”  





그 다음 주,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새벽 2시가 훌쩍 넘어 귀가했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그 전주와는 정말 달랐다. 

아들은 늦는다고 먼저 톡을 보내왔고


나는 하회탈을 언급하며 웃음으로 승화(?)했다





아들에게 'ㅋㅋㅋㅋㅋㅋㅋㅋ'를 받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엄마, 만원, 지금 보내.' 이런 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더 쿨하고 의연한 엄마가 되었...... 

......을리가.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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