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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May 03. 2024

손흥민은 아무나 되나? (ft. 부모의 경제력)

유소년 축구단이란 

휘청휘청. 무기력해진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뭐라도 써야겠다. 끄적여야겠어… 



축구라면 반갑고 또 지긋지긋하다.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축친자, 즉 축구에 미친 자들이다. 큰 아들은 축구를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되지도 않는 축구를 하겠다며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네 학원의 선수반 테스트를 본 후 똑 떨어졌고, 이후 중학교 내내 심심할 때면 한 번씩 “그때 엄마가 제대로 안 시켜줘서”를 단골 멘트 삼아서 내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었다. 고등학생인 지금도 유일한 관심사이자 취미 활동인 축구 때문에(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종종 아무렇지 않게 새벽 귀가를 하여 나의 수명을 하루씩 단축시키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 아들은 그동안 주 1회씩 하는 취미 축구반을 재미있게 다녔다. 그렇게 몇 년을 다녔고 지난달 겁 없이 우리 시의 FC 유소년 축구단에 도전했다. 나는 작은 아들이 사춘기가 되었을 때 또 원망을 받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면 제대로 하라며 테스트를 받아 볼 것을 독려했다. 



현장에 가보니 열다섯 명이 와 있었다. 할 만하겠는데? 기본기 테스트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첫 테스트는 리프팅이었다. 무릎이나 발끝에 공을 튕기면서 공이 바닥에 닿지 않게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놀라웠다. 우리 아들의 공은 1초 만에 바닥에 떨어졌다. 다른 아이들은 이런 테스트가 익숙한 지 1분이 지나도 여전히 공을 튕기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들이 축구를 하며 당황하는 장면을 난생처음 목격했다. 동네에서 축구 잘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경직된 아들과는 다르게 개중에는 피지컬뿐만 아니라 경기력이나 태도까지도 좋은 아이들이 있었다. 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 박수를 치고 아이들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고 경기를 주도했다. 손흥민인 줄.  



‘뭐야, 왜 이렇게 못해? 3년 동안 축구학원에서 뭘 가르친 거야?’  



화가 치밀어 오르던 차, 돌연 ‘취미반’과 ‘선수반’의 차이가 깨달아졌다. 취미반은 말 그대로 아이들이 학원을 끊지 않고 재미있게 다니게 하면 될 터였다. 기본기 연습은 생략하고 바로 경기를 했으니 재미있었을 것이다. 일주일에 겨우 한 시간.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서 오늘 세 골을 넣었다며 신나 하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손흥민 아버지 손정웅은 손흥민이 초등학생일 때 수년간 리프팅 훈련만 시키고 경기에 참여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악기도 기본기 연습은 지겹다. 하지만 중요하다. 수학은 어떻고. 이런!



구단의 FC는 떨어졌지만 이대로 주저앉기는 아쉬웠다. 주변에 물어 **FC의 테스트를 보았다. 구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 고등부 진학까지도 잘 이끌어 낼 만큼 관리가 되는 곳이라고 했다. 구단이 있는 건 아닌데, 여전히 ‘FC’라는 타이틀이 붙고, 대한축구협회에 정식 선수 등록도 된다고 하는데 축알못인 나는 아직도 그 차이를 모르겠다. 



그렇게 지난달부터 **FC의 엘리트반을 다니고 있던 우리 아들은 지나가던 같은 FC의 선수반 코치의 눈에 띄어 선수반 테스트를 제안받았고, 테스트에 통과하여 지난주 선수반에 합류했다. 



“축하해. 열심히 해봐.” 나는 아들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때까진 몰랐다. 무지했다. 



월화목금토요일. 기본 월 50만 원에 대회에 참여할 때마다 협회에 4만 원, 간식비와 학부모 회비로 6만 원, 유니폼에 20만 원 정도. 갑자기 매달 60만 원 이상의 고정비가 추가되었다. 하계 동계 전지 훈련비, 원정 경기 시의 숙박비는 별도. 축구 연습이 주 5회, 각 두 시간씩인데 막상 시작해 보니 무 자르듯 시간이 끝나는 게 아니라서 세 시간은 잡아야 했다. 지난 2주간 안산과 수원 등에서 원정 경기가 있었고, 그러면 4시간 이상의 소요 시간을 잡아야 했다. 원정 경기 때는 셔틀이 제공되지 않았다. 치명적이었다. 나는 운전을 못한다. 예체능 하는 아이의 엄마가 운전을 못하는 것은… 무모한 정도가 아니라 죄였다. 




“구단의 FC는 평소 연습 경기 때에도 셔틀이 아예 없는 거 아시죠? 그리고 일정이 당일 아침에 나오는 일이 많아요. 곤지암으로 2시 반까지. 이런 식이요.” 


“우리 아이도 늦게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기본기가 부족하니까 타 지역으로 1년 반 동안 라이딩했었어요. 거기 기본기 잘 가르쳐주는 감독이 있어서. 개인 레슨도 하고. 성장판은 계속 검사하며 경과 보고 있고, 성장판 주사 맞기 시작한 지는 1년 되었고, 참 먹는 거! 인스턴트 먹이면 성장이 더 금방 멈추잖아요. 그래서 평소에 인스턴트 안 먹이고… 아 참, 공부할 시간 없어서 아침에 해야 해요. 자기주도 학습 훈련 3학년때부터 시켰는데, 아침 7시에 한 시간 정도 학습시키는 데 그렇게 해서 선행은 잘 못해도 그럭저럭 유지하며 가는 거죠. 축구 스케줄이 워낙 유동적이라 학원 보내기가 어려운 데 가서 30분밖에 못 앉아있더라도 학원 보내요. 그래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거, 공부에 집중하는 거 익히니까. 안 그럼 배우지 못하니까요.” 



와우. 와우. 와우. (웽. 웽. 웽.) 



어떤(?) 엄마가 글쎄 택시를 타고 라이딩을 하더라는 소문은 하루 만에 퍼졌고, 그렇게 천사 같은 이웃님은 내게 전화를 걸어 한 동네이니 내 아들의 라이딩을 도와주마,라고 했다. 그녀와의 커피 타임 동안 나는 계속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우리 시의 FC에 도전한 일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새삼 깨달아졌다. 이거 굉장히 익숙한 느낌인데? 그러니까…. 내가 엄마로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느낌, 존재 자체가 부족함이라는 느낌, 또다시 바닥으로 꺼지는 자존감. 어이 자존감! 어디까지 또 내려가시나…? 



그러니까 나는, 약간의 추가 학원비와 따듯한 응원의 말, 그리고 아이에게 셔틀 시간 리마인드만 해주면 될 줄 알았다. 가끔 주말 연습 경기 때 구경 가고. 뭐 그 정도? 그런데 2주간 끊임없이 울리는 카톡 단체방의 그때그때마다의 메시지와 현장 (택시) 라이드, 그리고 내 소중한 시간의 사라짐에 나는 피곤하고 예민해졌다. 학부모 별 간식과 현장 촬영 당번 이야기에 나는 또 한 번 내가 제대로 들어와 버렸음을 깨달았다. 혹시 애들을 10배 수로 뽑아놓고 비즈니스 하고 뭐 그런 데는 아닐까? 엔터테인먼트사들이 하듯이. 우리 애가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잖아? 생각이 쑤욱 올라왔다. 






“지난달 OO이(큰 아들) 미용학원 시작한다고 3개월치 결제한 것과 이번에 축구 시작해서 초기 비용도 다 5월 카드 값으로 청구되잖아. 장인어른 에세이집 제작 비용도 5월 초에 지불하기로 했다며? 5월은 가족의 달이라 가뜩이나 지출이 많은데 펑크 나면 어떡하려고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놨어?” 



남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심신이 피로하여 카드 값은 생각도 안 하고 있던 나는 왠지 좀 억울하기도 하고 기운이 빠졌다. 



“한다는 놈만 밀어준다.” 

남편이 큰 아이를 의식하며 혹은 겨냥하며 하던 말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생각했다. 축구 이거, 밀어줄 수 있는 건가? 이제 2주 차, 나는 벌써부터 이렇게 말이 많은데? 






나의 천사이자 구세주의 똑 부러지는 이야기를 듣고 휘적거리며 집에 들어오니 저녁밥 먹을 시간인데 고등학생이 겨우 일어나 세수를 하고 있다. 갑자기 속에서 천불이 나며 딕션이 쏟아졌다.



“야! 너 지금 엄마 테스트 하는 거야?” 

“테스트는 이미 충분히 했지 않니?” 

“학교는 갈 거라며. 친구들 만나야 한다며. 혼자는 심심하다며. 그럼 학교를 가야 할 것 아니야. 학교에서 자라고!” 

“담임은 무슨 죄냐? 서른 명을 동등하게 챙겨야 하는데 맨날 너 출결 챙겨야 하고.” 

“미용학원은 네가 다니겠다고 한 거잖아. 그러면 학원을 가야 될 거 아니야.” 

“... 부모가 호구냐!!!” 



“호구는 아니지.”

엄마가 웬일로 자기한테 용감하게 큰 소리를 내나 싶었던지 아들이 순수하게 인정을 했다. 



“에휴, 주여~~” 

할 말 다하고 그제야 덧붙이는 ‘주여’.  오 주여.  






저녁으로 김치볶음밥을 한 솥 지었다. 큰 아들은 놀러 나가고 혼자 식탁에 앉아 국그릇 가득 픈 김볶밥을 퍼 먹었다. 큰 아들에, 작은 아들에, 미용학원에, 축구학원에, 머리가 복잡해져 얼굴은 심각하겠지만 그 와중에 김치볶음밥은 맛있었다. 역시 스팸과 김치는 환상조합이다. 김치볶음밥을 먹다 입천장이 델 일은 드물 것 같지만 답답한 마음에 밥을 마구 퍼먹다 보니 벌써 한쪽 입천장이 부풀어 올랐다. 



거의 다 먹었는데 잠깐 나갔던 큰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루 종일 자느라 배가 고플 것이다. 내 몸이 냉큼 일어나더니 오목한 예쁜 그릇에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 김치볶음밥을 담고 참깨를 솔솔 뿌려 아드님 앞에 다소곳이 내밀고 있다. 



왜 이러는데? 지랄도 풍년이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휴우.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학교가 끝나는 오후 2시 반에 교문 앞에서 납치되어 바로 원정 경기장으로 끌려간 작은 아들은 밤 9시가 다 된 지금, 아직 귀가 전이다. 1시간 전에 왔는데 다시 학교로 들어가 중학교 형들과 축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진정한 축친자이다. 



사실 나는 자식 사랑이 넘치는 자가 아니다. 관심, 에너지, 능력, 삼박자가 다 떨어진다. 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은 유감을 넘어 애통한 일이다. 이미 충분히 정신없이 살고 있다. 축친자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벌써부터 조용히 소망해 본다. 한몇 달 하다가 아들이 큰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그만두기를…… 



아, 물론 응원할 것이다. 그렇긴 한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 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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