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딴짓 Jun 14. 2024

응급실에서 사라진 아들

우리 아들은 참 효자다. 나는 아직 내 주변을 통틀어 우리 아들 같은 효자를 본 적이 없다. 글 쓰는 엄마에게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소재를 주는 우리 아들. 브런치에 ‘아들 진짜 싫다’라는 연재를 계속하게 만드는 우리 아들. 이제 그만 써도 되는데.



아들이 집에서 쓰러졌다. 거실에 앉아있다 주방 옆의 자기 방 쪽으로 세네 걸음 걸어가다가 순식간에 얼굴이 경직되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맞은편 방에서 문을 열어놓고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던 나는 이 과정을 그대로 보았고 뛰어나와 아들의 머리를 받쳤다. 아들은 이내 정신을 차렸지만 동공이 멈춘 채 마네킨처럼 뒤로 쓰러지던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앞이 까매졌고 그 순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머리가 아프다 길래 타이레놀을 주고 밤낮이 바뀌니 컨디션이 엉망인 거라고 제발 일찍 자라고 아이를 타박했다. 빈혈약을 먹어야겠다 싶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전날 밤 아이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었다. 여느 날처럼 아들은 또 지각을 했고 여느 날처럼 나는 또 예민해졌다. 제발 학교를 가라며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 선약이 있었기에 마음이 바빴고 나의 외출 전에 아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봤으면 했다. 친구를 만나고 점심을 먹고 귀가했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 일이 생각났다. 불안한 마음에 단체 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아이가 쓰러질 때 동공이 움직였나요?”


간호사인 지인의 질문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이는 쓰러지면서 동공이 멈춰있었다.


“빈혈이면 그렇지 않아요. 동공이 멈춘 것은 뇌 쪽 문제일 수도 있으니 당장 조퇴하고 응급실로 가요, 언니.”


담임에게 연락을 하고 학교로 뛰어가면서 나는 나 자신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아이가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니 아플 때도 매정하게 학교를 보냈다. 병원에 갈 생각도 안 했다. 맨날 피곤하다, 어디가 아픈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게 일상이라 지긋지긋했다. 학교가 뭐라고. 그놈의 등교가 뭐라고. 못난 엄마. 못난 것. 못난 년. 너는 엄마도 아니야.  






의료분쟁이 한창인 대학병원의 전광판에는 ‘응급실 대기시간 350분'이라고 쓰여 있었다. ‘기다려주시면 순서대로 응대하겠습니다’라는 글귀만 덩그러니, 소아응급실의 접수 실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소아 응급실 중환자실’이라고 쓰여 있는 안쪽 공간에서는 아이들의 가냘프고 앙칼진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대기실에는 표정을 잃은 아이들과 가족들이 유령처럼 앉아 있었다.






두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전광판에는 아들의 이름조차 뜨지 않았다.

“에이씨, 갈 거야.”  

말릴 틈도 없이 아들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아들에게 '야' 소리 한번 해보지 못헀고, 없어져버린 아들과 그 공간에 덩그러니 남겨진 내 모습이 믿기지 않아 눈만 껌뻑였다. 참 가지가지 하는구나. 저렇게 참을성이 없구나.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아들의 모습이었다. 화가 났지만 감정에 취해있을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해?



다음 주부터는 의료진들의 총파업이 있다고 했다. 동네 병원도 문을 닫는다고 했다. 온 김에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했다. 나는 아들 없이 혼자 응급실에서 대기했다. 그런 내 모습이 웃기고 서글펐다. 중간에 간호사가 혈압을 재겠다고 왔을 때는 아이가 잠시 나갔다고 얼버무렸다. 여전히 전광판에는 아이 이름조차 뜨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여기서 버티긴 힘들었겠다. 미용학원에서 메시지가 왔다. 아이가 학원에 안 왔다고 했다. 병원에서 나갔다고 학원에 갔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피시방 갔나.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길래 상황을 이야기했다.

“애는 두고 너 먹을 거 챙겨.”

두 번째 친구에게 안부 문자가 와서 상황을 얘기했더니,

“저녁은? 시간 있을 때 얼른 뭐 좀 먹고 와.”

부스스 일어나 지하 편의점에서 빵 하나를 산 후, 혹시 그 사이에 이름이 불린 건 아닌지 조급한 마음에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대기실은 아까와 똑같은 정지 화면 같았다. 집에서 나올 때 책 하나 챙길 여력이 없었다. 아니, 응급실에 앉아 여유롭게 책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면 그게 뭐든지 간에 잘못될 것 같았다. 부정 탈 것 같았다. 쓰러진 아들을 그냥 학교에 보낸 생각 없는 에미. 나는 벌 받는 심정으로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게 도움이 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대기 다섯 시간째. 드디어 아들의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대기자 마지막 번호. 퇴근했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oo이 집에 있어?”
“응, 병원 갔다더니 자고 있네?”

“차 태워서 병원으로 와줘.”

가타부타 말하기도 피곤했다.



“뭐… 졸도한 건데 이렇게 봐서는 괜찮아 보이거든요.

다섯 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에 듣는 의사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응급실에 의사 한 명, 간호사 한 명. 그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다.  

“그럼 넘어지면서 동공이 멈춘 거는 어떻게 된 거죠?”

“졸도하는데 순간적으로 동공이 멈출 수도 있죠.”

“요새 계속 가슴이 계속 답답하고 어지럽다는데 그건요?”
“스트레스나 피곤하면 그럴 수 있겠죠?”

“MRI나 CT 촬영도 필요 없고요?”
“졸도랑 뇌랑은 무관해요. 뭐 피검사랑 엑스레이 한번 받아보시던가요 그럼.”

아무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온 것이긴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검사를 위해 팔에 링거를 꽂자 아들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흘러나왔다. 아들은 곧 자신의 손과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셀카로 찍었다. 인스타에 올리겠군. 좋냐.



“밥 언제 먹을 수 있어요? 배고픈데.”

“지금! 전혀 이상 없어요. 빈혈도 없고요.”

밥을 언제 먹을 수 있냐는 아들의 말에 의사가 검사 결과를 얘기해 줬다.






병원에서의 여덟 시간.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지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아들은 육회비빔밥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배달앱으로 야식집에 주문을 하고, 집에 와서 아들이 밥 먹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이야. 참 다행이야. 별일 없어서. 괜찮아서.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아들 연재는 이어나가게 될 것 같다.


연재 일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상이 들쑥날쑥이라 연재도 들쑥날쑥하네요.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