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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un 17. 2024

웬수와 살아내라

아들(들)과 살아가는 법

월요일은 파이팅 하기 힘든 요일이다. 하기 싫은 출근을 해야 하고, 하기 싫은 등교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파이팅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주말 내내 가족과 꼭 붙어 있으면서 삼시 세끼를 챙기고, 집안 대소사에 불려 다니고, 그러느라 도심의 교통 체증을 맘껏 체험하고 나면 모두가 각자의 자리고 떠나고 나 혼자 집에 남을 월요일 아침을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게 된다.



음악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극한 고요 속에서 오직 내 몸과 내 정신만이 그 공간을 차지한다. 조심스럽게 커피 한 모금을 음미할 때 복잡했던 마음, 조바심, 신경질, 화, 피곤 등은 마음속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또 한 모금에 이번 한 주에 대한 파이팅을 다진다. 이 순간의 평화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내 아이들의 마음을 돌봐달라고, 또한 내 아이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그러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이 몹시 분주한 월요일 아침, 9시 10분 전이지만 고등학생인 큰 아들은 여유만만, 앞머리 드라이에 세상 모든 에너지와 정신을 끌어 모으고 있다. 주말 내내 신나게 놀던 작은 아들은 꼭 월요일 아침이면 어디가 아프다고 찡찡거린다. 오늘은 눈이 아프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눈두덩이가 부어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담임에게 각각 지각을 알린다. 여느 날처럼 망가진 나의 월요일 아침에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작은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와중에 남편은 느긋하게 리크라이너 소파에 앉아 저 세상 평화를 즐기고 있다. 우리 집 강아지도 나에게 시선 고정 중. 더 더워지기 전에 빨리 산책 좀 가지? 눈으로 욕한다는 말은 누가 만든 걸까.



월요일 아침의 병원은 인산인해이다. 첫 번째 안과에서 의사가 오전 수술이 잡혀있어 오후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듣고 두 번째 안과로 이동한다. 지난 주말, 안과에서는 안구에 이상은 없다며 가볍게 안약만 처방해 줬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이는 눈 뼈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눈 주위가 눈에 띄게 부어 있다. 유소년 축구 선수인 아들은 지난주 합숙생활을 했다. 후보 선수로 내내 벤치를 지키다가 딱 한번 뛴 경기에서 상대방 덩치 큰 아이에게 팔꿈치로 눈 부위를 강타당했다. 의사는 안면 골절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을 가보라고 소견서를 작성해 주었다.



혹시 정말 골절이 있을 경우 더 이상 부딪히면 큰일이라 담임에게 결석을 알렸다. 아이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서는데 작렬하는 태양에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영혼도 아스팔트 사이로 이미 사라져 버린 것만 같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흐물흐물해져 버렸다. 나중에 캐치업 해야지, 하며 조금씩 쌓인 회사 일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오늘 아침부터 바짝 업무에 매달리려고 했지만 병원 두 군데를 오가면서 시간은 이미 정오를 넘어 버렸다. 좀 더 큰 병원에 안면 CT를 예약했고 그렇게 내일의 내 시간은 이미 아이들용으로 예약되었다.






이제 다시 책을 좀 읽어보겠다고 도서관에서 책을 왕창 빌렸다. 아이슬란드 여행에 관한 기록도 잊기 전에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브런치 스토리에 매일 연재를 해보겠다며 무리수도 뒀다. 하지만 지금 나는 언제나처럼 흐물흐물해졌다. 아들들은 더 이상 아기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어디가 아프고 어디가 어떻고 뭐 무슨 일이 있고……그렇게 매일을, 단 하루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어떻게 그렇게 끊임없이, 그럴 수가 있냐고. 지친다. 정말 지긋지긋해……  



엄마!

엄마?
엄마!!!!!!!!!!!



……응?



나 심심해.



그래, 아들. 심심하구나.



나 영화 보고 싶어.



영화? 무슨 영화?



인사이드아웃 2 재밌대.


…………



이 더위에, 엄마는 일이 왕창 밀려있고, 주머니도 가볍고, 그리고 또…………………



그래 가자.



우울해진 엄마가 또 동굴(글쓰기)로 들어간 동안 티비 삼매경이었던 아들은 그새 싫증이 났는지 내 곁에 바짝 붙었다. 그래, 일도 글도 독서도 뭐도 오늘은(오늘도?) 때려치지 뭐.






'엄마라는 비빌 수 있는 언덕에 비빌 수 있을 때 실컷 비비라고 냅둬요.'

브런치의 이웃 작가인 에벌띵님의 다정하고 쿨한 댓글이 떠올랐다.



그래.

그래.

그래.



그러라고 하지 뭐.


 

.

.

.



인사이드 아웃 재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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