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는 중 고등학교 때 하루 스무 시간씩 잤어요! 별명이 신생아였다니까요? 아하핫!!!”
2주에 한 번씩 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는 선생님의 호탕한 말투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웃을 수밖에.
“무기력해서 그래요. 생각하기 싫어서 그렇고요. 딱히 학교를 가야 할 이유도 없고, 딱히 즐거운 일도 없고, 깨어있어도 할 일도 없고, 그래서 자요.”
“그런데요, 자기가 스무 살이 되어 아르바이트해야 되면, 돈 벌어야 되면 시간 지켜서 해요. 제가 아르바이트한다고 했을 때 저희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그런데 얼마나 또 잘했게요?”
믿고 싶죠.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싶죠. 안 믿으면 또 어떡할 거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내면의 소리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
선생님은 여자잖아요.
쌤이잖아요.
우리 아들이 아니잖아요.
여기서 갑자기 성차별적인 발언이 왜 나와.
안 믿으면 어쩔 거냐고.
이제 끝이 오는 건가.
아들이 학교를 안 나간 지 3주 차. 낮에 자고, 저녁에 일어나 다음 날 학교에 제출할 병원 진료 확인서를 끊어오고, 친구들과 좀 놀다가 들어오면 새벽까지 거실의 안마의자에 앉아 릴렉싱 타임을 가지면서 폰을 들여다본다.
"어머니, OO이가 학교를 그만두던 안 그만두던 다 의미가 있을 거예요. 어머니께서 이렇게 의연하게 버텨주시니 너무 좋아요!!!”
아무렴요.
………………
정세랑 소설 ≪피프티 피플≫을 읽었다.
원만하게 나빠져서 다행이야.
구덩이가 발 밑에서 열리듯이
갑작스럽게, 격하게 나빠지지 않아서.
- p.107
그렇네. 다행이야. 원만해서. 이 정도면 아주 원만하지. 곡선이 있잖아. 구덩이는 아니잖아. 괜찮지 이 정도면. 그런데 계속 이렇게 브런치 스토리에 아들 이야기를 팔고 있어도 되는 걸까. 소리 소문 없이 아들의 이전 학교의 엄마들에게 내 글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조회수가 오르고 있는데 혹시 그 엄마들이 상당수인 건 아닐까. 내 아들 이야기를 보면서 상대적으로 안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뭐 어쩌겠어. 그러라고 시작한 거잖아. 내 글 보고 사람들이 공감받고 위안받길 바랐잖아. 그게 지인이면 안 되는 거고? 그건 아니지. 초심을 잃었고만.
“어머 어머니! 글로 승화하고 계세요? OO이가 어머니의 뮤즈네요 뮤즈! 아하하하~~~”
커헉.
그러게 말입니다.
제게 영감을 주는 존재네요. 제 글에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고요. 어찌나 고마운지.
뮤즈.
뮤즈…
뮤즈……………………
그렇게 오늘도 나는 이 글 한편을 스윽 밀어놓는다. 내가 쓴 건 아니에요.
아주 나중에 아들의 아들이 태어나면 이 연재를 엮어서 책으로 선물해 주면 어떨까. 너무 재미있는 폭탄일 것 같은데. 그때까지 어떻게 참지???
선생님의 어머님은 학창 시절 방황하는 딸을 보면서 '그래도 죽지 않았잖아' '살아 있잖아'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