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올려다보니 새벽 4시. 뛰어나와 아들 방문부터 열었다. 없다. 현관에 신발, 없다.
“어디니.”
“나 축구하려고.”
“네 신데.”
“애들이 시험기간이라고 이 시간밖에 안 된대.”
“……”
“몇 명?”
“여섯 명.”
“같은 학교?”
“응.”
의례적인 질문.
진실여부 무관.
“걔네들은 아침에 학교 안 간대?”
‘걔네들도’라고 비꼬듯 말이 나오려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급 턴 했다.
“가지.”
“밤새고?”
“응.”
……
“언제 올 건데?”
“여섯 시쯤?”
“그래. 안전하게 하고 와.”
“응.”
보통은 친구들의 학원이 끝나는 밤 10시 이후에 축구를 하러 간다. 그런데 시험기간이라 다른 애들은 밤에 공부를 하고 새벽 4시에 축구를 하러 간다는 것이다. 여섯 시쯤 들어와 잠깐 눈 부치고 그렇게 둔해진 몸과 뇌의 신경을 되살린 후 시험 보러 가겠지. 굳이, 축구 때문에.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놈들도 미친놈들이군. 그러나… 새벽 4시까지 공부 한 아들이 머리를 식히려고 축구를 하러 가겠다는데 어떤 엄마가 아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그 아이들이 건전한 것 일수도. 안쓰러운 것일 수도.
우리 아들은 자겠지. 학교 째고 저녁까지 자겠지. 그리고 새벽에 또 축구하러 가겠지.
축구.
아들의 유일한 활력소.
공부하는 친구들과의 연결점.
이 시간에 축구하러 간다는 네 말이 진실이라면
나중에 큰 추억되겠다.
잘 됐네.
에라 모르겠다. 다시 자러 들어갔다.
어슴푸레 잠이 들려는 차, 몇 달 전 일이 떠올랐다.
아들이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는다고 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낸 날.
그렇게 집 앞에 도착한 경찰차를 보고 눈물이 터진 날.
최악을 상상하며 주저앉은 날.
이제 나는 쿨쿨 자는 엄마구나.
어쩌겠어.
믿어야지.
7시.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아들 때문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그리고 엄마, 친구 들어와도 돼?”
“지금?”
“어, 밖에 있어. 씻고 같이 학교 가려고.”
“왜 밖에 서 있어. 들어오라고 해 얼른.”
이 녀석은 심지어 외박이네.
비빔국수가 먹고 싶다는 말에 국수를 삶고, 만두를 찌고, 동태 전을 데우고, 계란 프라이 네 개를 부쳤다.
오늘따라 축구가 잘 풀렸고, 친구까지 데리고 온 아들은 싱글벙글.
“식혜 줄까 식혜?”
“식혜 진짜 필요 없어?”
“시원한데 식혜?”
“천도복숭아 깎아 줄까?”
고요하다 못해 시무룩한 평소의 아침과 다른 활기에 내 마음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빨리 하자. 고등학교 때 지각은 절대 안 돼.”
된 놈이구만. 너무 예뻐하면 부담스러울 까봐 친구 녀석의 뒤통수에 미소를 지었다. 하숙을 쳐야 되나.
“어, 나 준비하고 있어. 3분 후에 나가.”
또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구야?”
“어, OO이. 얘 맨날 나한테 모닝콜해 주잖아.”
모닝콜해 주는 친구가 있어?
그렇게 우리 아들은 중간고사 이후 처음으로 지각을 안 했다. 시험기간은 지각 금지이기 때문에 담임이 신신당부 한 바 있다.
등교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는 친구가 있는 곳이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 수 있는 10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지는 곳이다. 그때 대부분의 아이들이 쪽잠을 자거나 공부를 한다고는 하지만.
새벽 4시 축구.
아들에게 한계는 없고, 엄마는 그저 안전하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오늘 아침, 나는 평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