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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ul 05. 2024

아들이 되어 보았습니다

내가 너라면

“옛날에는 새벽까지 야근하는 날이 흔했어.  

매일 밤 자정이 조금 넘으면 헐레벌떡 막차를 타러 뛰듯이 걷는 거야.

만삭이라 배가 땅겨서 뛰지도 못하고 손으로 배를 떠 받치고서는.

그 와중에 다급하게 노래를 불렀어.

 


사무실에서 중간중간 쉬어줘야 하는데 같은 자세로 하루 종일 앉아있으니까 가뜩이나 엄마 배는 조그만데 네가 얼마나 답답했겠어. 힘들다고 네가 몸에 힘을 꽉 줘서 배가 계속 뭉치니까 나중에는 돌처럼 딱딱해져서 배가 너무 아프고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런데 그 한 번을 일어나 쉬질 못하고 밤이 된 거야.



그래서 매일 자정에 전철역으로 뛰어가면서 노래를 불렀어.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엄마는 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던 때를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엄마는 조금 울기도 하고 내 눈치도 봤는데 솔직히 나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가 가엽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그 이야기가 듣기 싫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여웠다. 나는 태어나기 전에도 힘들었구나…




1. 어린 시절

내가 어렸을 적 엄마, 아빠는 많이 바빴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네서 세 살 때까지 살았다. 나는 할머니가 해 주는 음식이 좋았고, 할머니가 편했다. 엄마 아빠는 할머니네 집으로 나를 보러 왔다. 외할머니네 집에서 친할머니네 집으로, 이 어린이집에서 저 어린이집으로 자주 옮겨 다니며 나는 폐렴을 자주 앓았다고 한다.



내가 네 살 때 엄마는 나를 할머니네서 데리고 나왔다. 나는 매일 어린이집 친구들이 집에 가는 것을 보았다. 네 시, 다섯 시, 다섯 시 반… 그다음에는 엄마가 회사 다니는 애들끼리 한 방에 모여서 뽀로로를 봤다. 나는 항상 마지막이었다.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일곱 시 반이 되면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일곱 시 반이 지나도 엄마가 오지 않는 날은 어린이집 밖에서 선생님과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선생님께 매일 죄송하다고 했다.



집에 오면 엄마랑 둘이 저녁을 먹었다. 엄마가 화가 난 건지 슬픈 건지 몰라서 가만히 있으면 엄마는 빨리 밥 먹으라고, 속 터져 죽겠다고 화를 내면서 내 밥그릇에 반찬을 왕창 쑤셔 넣었다.



내가 여섯 살 때 동생이 태어났다. 어느 날 엄마가 동생을 낳는다고 병원에 갔고, 아빠랑 둘이 식탁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데 엄청 어색하고 집이 무척 조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엄마가 왔는데 엄마는 아기가 무서워죽겠다며 엉엉 울었다. 그때까지 나는 엄마랑 책을 읽다가 같이 잤는데 동생이 온 후 엄마는 아기가 깬다면서 옆 방에 가서 혼자 자고 있으라고 화를 냈다. 나는 혼자서 어떻게 자야 될지 몰라서 책을 봤다. 나중에 일어나 보면 이불이 덮여 있었다.



내가 봐도 나는 조용한 아이였다. 그런데 동생은 달랐다. 엄마 말로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기지도 않고 바로 걸음을 뗐다고 한다. 동생은 엄청 잘 걷고 뛰었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마트에서나 놀이터에서도 뒹굴면서 울고불고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내가 다섯 살 때까지 깨끗하게 가지고 논 장난감들을 동생은 금세 다 망가뜨렸다.



동생은 꼭 나와 놀려고 하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갖고 싶어 했다. 엄마는 우리가 싸우면 꼭 나만 혼을 냈다. 두 살 꼬맹이 녀석이 친하게 지내자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동생이 정말 싫다. 항상 그랬다.



내가 일곱 살 때 우리는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어린이집 친구들이 모두 나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새로 이사 온 동네의 유치원 애들은 자기들끼리만 친했다. 나는 매일 베란다에 서서 엄마한테 택시를 태워달라고, 그전 동네로 가서 친구들을 만나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너까지 힘들게 하냐며 화를 냈다.





2.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지우라는 친구와 나는 단짝이 되었고 우리는 1년 내내 손을 잡고 다녔다. 나는 항상 지우 옆에만 앉았다.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지우가 전학을 갔다. 신도시로 간다고 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립다. 지우 잘 지내고 있을까?



3학년때도, 5학년때도 나는 딱 한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모두 신도시로 전학을 갔다. 그리고 내가 6학년이 되던 2월, 우리 집은 또 이사를 갔다. 우리는 신도시로 가지 않았다. 엄마는 조금 더 큰 방으로 오니 좋지 않냐고 했지만 나는 싫었다. 나는 전학을 왔고, 코로나가 터져 1년 동안 온라인으로 수업을 한 후 졸업식 없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내게는 동네 친구도, 학교 친구도 없었다.



6학년 여름, 엄마는 내게 어떤 영상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농사를 하고 있었다. 엄청 좋은 대안 중학교라는 것이 있는데 까칠한 내 성격과 잘 맞을 것 같다며 엄마는 그 학교를 강추한다고 했다. 시골로 여행을 가고, 무엇보다도 학원이 금지인 것이 완전 마음에 들었다.



3. 중학교

막상 가보니 학교는 집에서 1시간 거리나 됐다. 다른 집은 엄마가 다 태워다 주는데 우리 엄마는 회사를 가야 하는 데다가 운전을 못 해서 나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중간에 마을버스로 갈아타는데 버스를 놓치면 15분을 기다려야 했다.



한 반에 20명이고 한 학년이 60명 밖에 되지 않는데 축구를 좋아하는 애들이 별로 없었다. 학교 근처에 사는 애들이 없어서 학교가 끝나면 각자의 동네로 뿔뿔이 흩어졌다. 학교에서는 연극이니 밴드니 매일 뭐가 많았는데 나는 죄다 별로였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학교에서는 PPT를 만들라고 하고 어린 왕자를 영어로 읽어 녹음해 오라고 했다. 공부 안 하는 학교인 줄 알았는데 뭐가 되게 많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고. 담임은 나와 잘해보고 싶다면서 매일 나를 상담실로 보냈다. 왕 짜증.



중학교 2학년. 엄마 아빠는 좋은 학교를 믿고 보냈는데 그동안 공부를 하나도 안 한 거냐며 미친 듯이 화를 냈다. 집을 나가고 싶다. 어차피 대학 안 갈 거라고 했더니 맘대로 하라며 네 인생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알아서 할 테니 제발 상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초등학교 때 축구 시켜달라고 했는데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아빠는 그냥 뭐 싫고. 동생이란 놈은 꼴도 보기 싫고. 학교는 답답해 죽겠다. 이 학교에서 나만 이상한 거야?



5학년 때 전학 간 우진이가 너무 보고 싶다. 우진이만 있으면 되는데. 엄마한테 우진이가 사는 동네로 전학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화를 냈다. 왜 말이 안 되는데.



중3. 동네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나왔다. 엄마 아빠는 다 같이 파도를 타자고 했다가, 네 선택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가 이랬다 저랬다 한다. 그러든가 말든가. 수업 시간이 진짜 싫다. 뭔 소린지 도대체 알아먹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 잘했는데. 나는 글러먹었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 되지 않나. 아니 대학은 뭔 대학. 뭔 꿈. 초등학교 때가 좋았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



전학 온 후 애들이랑 문제가 있다. 엄마는 너를 때리는 놈들은 친구도 아니라며 난리가 났지만 그럼 내 친구는 누군데? 나도, 그 새끼들도 싫다. 학교를 그만둬도 된다고, 다른 학교로 전학 가도 된다는 엄마 얘기가 짜증 나서 집을 나왔다. 엄마가 뭘 아는데. 이제 겨우 적응했는데, 엄마가 뭘 아는데.



4. 고등학교

고등학생이 되긴 되었다. 고1, 1학기가 거의 끝나간다. 학교는 가끔 가고, 그만두어도 상관없다고 생각은 하는데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 건 좋다. 미용실에서 미용 일 배워보라고 해서 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힘들다.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고등학교 졸업하면 우진이랑 동반 입대나 해야겠다. 그런데 뭐 해 먹고살지. 뭐, 모르겠다.



오늘 아침, 머리가 아파서 11시에 조퇴를 했다. 오후 2시, 전화가 왔다. 엄마다. 아들 아프대서 맛있는 거 사 왔는데 집에 없더라나. 뭐래, 피식. 떡갈비는 어머니 많이 드시라고 했더니 굳이 남겨 놓겠다고, 일찍 오라고. 일찍 안 갈건 데. 불금이니까. 이따 친구들과 찜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또 엄마 톡이다. 안 자고 기다린다나. 에효 가야지. 집에나 가야겠다.




이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아들 입장에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못 쓰겠더라고요. 용기가 안 났어요. 쓰기 전부터 너무 눈물이 나서...

때로는 너무 속이 타서 아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도 싫었어요.

글을 쓰고 나니 엄마로서 죄책감이 너무 올라와서, 이제 이런 글은 안 쓰려고 합니다.

한 번으로 족합니다. 그래도 쓰길 잘한 것 같아요. 한 번은요.

(실제 아들이 글을 썼다면 욕이 90 프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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