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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11시간전

나를 줍습니다

작은 아들 너마저

“에이씨, 맨날 혼나는 거 학교는 도대체 왜 가는 거야?”

쿵. 작은 아들의 말에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안돼. 너까지 그러면 안 된다고.



큰 아들이 지각과 결석을 반복한 지 2년째. 특히 올해의 기록은 작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 아이에게는 영향이 가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바랬다. 형은 형이고, 너는 너다. 큰 아이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작은 아이에게 그 상황을 표현할 말을 찾느라 얼마나 고심했던지. 인고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거라고 짐짓 진지하게도 말해보고, 형이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때로는 쿨한 엄마인 척도 해봤지만 초딩은 자신의 등교 때도, 이후 하교 후에도, 집에 놀러 온 자신의 친구 앞에서도 떡 하니 거실에 앉아 있는 고딩 형을 봐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딩은 초딩 동생과 동생의 친구들과 함께 오후 3시에 옹기종기 식탁에 앉아 천연덕스럽게 간식을 받아먹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 살던 백수 막내 삼촌을 우리 엄마는 얼마나 노려봤던가.



“엄마가 내 학교 생활을 알아? 애들이 나 왕따 시킨단 말이야. 같이 안 놀고. 선생님은 맨날 나만 혼내고!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씨이!!!”



일단 입을 꼬매고 아들이 하는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어야 했는데. 오구구만 해줬어야 했는데. 아들의 말을 듣다가 중간에 딱 한번, ‘그래도 선생님께 그 표현은 아니지’라고 했더니 아들은 돌연 분노의 대상을 엄마로 향했다. 분노는 눈물로 철철 흘러넘쳤고, 나를 째려보는 눈에서는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하아… 털린다 내 영혼.     






3주째 기침을 해 대는 큰 아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초반에 신경 좀 썼으면 금세 나았을 것을 새벽 두 세시까지 안 자고, 약은 하루에 겨우 한번 먹으니 내성이 생겨 듣질 않고, 이제는 밤마다 폐병환자처럼 기침을 해댔다. 기침 패드며 사탕을 챙겨주었으나 스스로 챙기지 않고 목이 답답하다고 새벽 3시까지 거실을 돌아다니니 온 식구가 잠을 뒤척여 아침마다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오늘은 평소 아들 혼자 보내던 집 앞 병원 말고 다른 곳으로 데려가보려고 맘을 먹었다. 아이에게 온라인으로 병원 접수 마감 시간을 확인해 보라고 한 후 함께 길을 나섰다.



병원 문이 닫혀있다.



“닫혔잖아?”

“찾아봤을 땐 여섯 시까지 한다고 그랬는데?”



그제야 찾아봤다.

“다섯 시 반까지 한다고 쓰여 있잖아.”

“이상하다? 언제 바뀌었지?”



아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휙 돌아서더니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혼자 걸어갔다.



“어디가! 근처에 병원 또 있어. 거기라도 가 봐야지!”

“아 귀찮아, 안가. 오늘 아파서 미용학원은 못 가겠네.”

“아 참, 엄마 나 이번 주 금요일부터 친구랑 헬스 다니기로 했어. 오늘 가서 같이 구경하고 왔어.

금요일에 신용카드 줘. 30만 원이다?”

“다닐 거면 잘 다니겠다고 각서 써. 야, 아빠한테는 네가 얘기해야지……”

나는 힘없이 의미 없는 문장을 덧붙였고, 아들은 콜록거리며 혼자 사라졌다.



아파트 안 정자에 오토카니 앉았다. 지금 들어가면 콜록거리면서 게임을 하고 있는 큰 아들과,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는 작은 아들을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분열 중이다. 분열. 나는 그 단어를 떠올렸다. 또 흩어지고 있구나.





고1이나 됐으면 자기 몸을 자기가 챙겨야지. 도대체 언제까지 수저 들고 다니면서 챙겨줘야 해? 지겹다 지겨워… 그런데 다른 엄마들 같으면 기침하는 아이를 3주나 방치하지는 않았을 텐데. 진작 다른 병원을 데리고 가거나 뭐라도 챙겨 먹였겠지. 다른 애들에게는 얼마나 또 민폐가 돼. 나는 왜 이렇게 엄마 역할이 버거울까. 남편에게는 또 뭐라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나. 운동도, 미용학원도 돈 내고 제대로 다닌 적이 없는 아이를 뭘 믿고 또 돈을 대주라는 얘길 꺼내야 하나. 아니 근데 뭔 헬스가 그렇게 비싸……



떠오르는 생각과 함께 나는 계속 분열되고 있었다.



폰을 꺼내 음악을 틀었다. 셀린디온의 ‘All By Myself.’ 나는 혼자 떠난 아이슬란드 여행길에서 이 노래를 자주 들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나는 용감하고 소울이 충만한 자였다. 씩씩한 발걸음은 한쪽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다른 쪽 발이 내밀어질 만큼 경쾌했다. 아이슬란드에서 돌아온 후 어느덧 한 달 반. 나는 또다시 시름시름 앓고 있다. 병명은 ‘일상’.



하늘은 어둡고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다. 나는 구부정한 등을 조금 더 구부정히 말았다. 허리에 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를 듣던 할아버지들처럼 스마트폰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텅 빈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그날들을 떠올렸다. 아이슬란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며 고속도로에서 혼자 서 있던 나, 두려움에 떨면서도 들판 한가운데로 들어서던 내 모습……



메시지 수신음이 들렸다. 브런치에서 공지 메시지가 떴다. 내가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가 되었다고 한다. 요즘 꾸준하게 글을 썼더니 칭찬해 주나 보다. 흔하게 받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메인 화면에 배지를 하나를 달아준다고 한다. 흠.



“당신은 글을 쓰고 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요.”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주섬주섬 일어났다. 굽은 어깨가 반듯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더 안으로 말리기 전에, 내가 더 작아지기 전에 반대 방향으로 조금 펴보았다.



오늘 저녁은 뭘 또 해 먹나.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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