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 이제 오픈한 동네의 스타벅스는 텅 비어 있다. 시럽을 뺀 얼그레이 바닐라 라떼를 한 모금 넘길 때, 그 온기에 잠시 가슴이 따뜻해진다.
4년 만에 노트북을 샀다. 이전의 노트북을 커버나 가방 없이 대강 들고 다니다가 수차례 바닥에 떨어뜨렸고 결국 아작이 났다. 뚜껑과 본체가 반 정도 붙어 있는 너덜너덜한 상태로 처참하게 유지되다가 방치되었고 잊혔다. 한 2년 전부터는 노트북 없이 집의 데스트톱만으로 버티면서 재택근무를 하고 글을 써왔다. 여자에게 폭력적인 공간이라 울부짖던 집이라는 공간에서 쌍콤하게 탈출하고 싶었지만 오늘에서야 겨우 내게 노트북이 주어진 것이다.
만족스러운 스크린 사이즈와 해상도, 부드러운 타이핑 감촉. 아찔한 속도감. 그렇게 나는 마치 작가라도 된 양,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부지런한 노마드족이 된 양 이 글의 첫 문장을 타이핑해 본다.
아들을. 죽일까.
"어머니, 한 학기 동안 출결 챙기시느라고 고생하셨어요. 방학 때만이라도 좀 편히 쉬세요."
출결에 대한 부모 동의 때문에 지난 학기 거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담임과 연락을 했다. 그러게요 선생님, 방학이라 너무 좋아요...
섣불렀다. 방심했다. 학기 중에는 새벽 두 시쯤 잠을 자던 아들은 방학이 되자 밤을 새기 시작했다. 밤새 스마트폰을 했다. 게임하기, 인스타그램 무한 스크롤하기, 축구 경기 보고 또 보기, 새벽 4시에 엄마에게 카톡 보내기. 아들은 올리브영과 무신사에서 구매해 달라며 링크를 보내왔다. 30평대 초반의 고만한 크기의 아파트. 아들은 친구들의 학원 시간이 끝나는 밤 10시 이후에 나가 두 시간 동안 심야 축구를 하고, 심야에 들어와, 40분간 샤워를 하고, 킹콩처럼 쿵쿵거리면서 거실을 오갔다. 주방 불을 환하게 켜고 새벽 세 시에, 네 시에, 여섯 시에 냉장고를 수십 번씩 열고 닫았다. 닭가슴살을, 라면을, 냉동 주먹밥을, 냉동 만두를 부스럭거리며 꺼내고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쳐) 먹고, 개수대에 쾅쾅 던져 놓고 이후 디저트를 찾아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화장실을 가는 무한 루프... 그 과정을 나는 누워서 고스란히 들었다. 아침 7시가 되면 일련의 과정이 잠잠해지고 아들의 취침 시간이 시작되었고 이후 아들은 다 저녁에 일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했다.
가뜩이나 잠귀가 예민한 나는 밤새 잠을 설치고 실시간으로 늙어갔다. 덥다고 거실 에어컨 앞에서 자는 작은 아들도 형 때문에 숙면을 못해 늦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아빠가 한 소리 해야 듣는 척이라도 할 텐데 그분은 신발장 앞에서도, 밤새 방 불을 켜 놓고도 숙면하시는 분이라, 아침이면 개운한 얼굴로 일어나 "그랬어?" 한 마디 할 뿐이었다.
그래, 밤새 스마트폰을 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겠지. 이제와 압수라도 해야 할까. 이제와 시간제한을 해야 할까. 자기 전의 스마트폰 활동이 얼마나 뇌를 교란시키는지 구백 번쯤 이야기한 것 같은데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까. 책 <도둑맞은 집중력> 이야기를 또 해야 할까. 키가 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리는 거라고, 이건 한 이천 번 강조한 것 같은데 다시 이야기해야 할까. 훈계, 경고, 부탁 다 해봤는데 다른 방법이 있을까. 스무 살 이후에나 군대에 갈 수/보낼 수 있다는 건 너무 경직된 사고 아닌가.
청소년기는 원래 그렇다니까, 뇌 구조가 그렇게 생겨먹어서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하니까 이해해주어야 할까. 그럼 좀 눈치껏 조용히 하면 안 되는 걸까. 가족이고, 공동체고, 같이 사는 공간이고, 배려와 상식의 문제고... 아, 세상의 중심이 본인인 십 대지 참. 특히나 가족은 배려의 대상이 아니지 참.
"두꺼비 집을 내려." 친정 엄마의 조언이었는데. "귀마개는 필수야." 선배 엄마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는데. 귀마개를 사고, 좀 덜 부스럭 거리는, 빨리 먹고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간식거리를 사 두고... 또 뭘 해야 하나.
아들과 분리된 주거공간을 절박하게 꿈꿔본다. 아파트가 아닌 2층 주택, 아니면 최소한 비스름한 구조라도. 다음 집은 반드시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해 본다. 다음이라. . . 그리고 독립! 아들은 언제 독립할지 알 수 없으니까 나라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요즘 이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 단기라도 어딘가로 나갈 수 있는 방법. 아들은 나를 참 부지런하게 만든다.
충분한 수면. 산책 혹은 명상. 그리고 달리기. 꾸준하게 글을 쓰는 이들의 규칙적인 생활.
...... 뭐라는 거야.
만성 수면 부족으로 머리는 둔기에 맞은 듯 웅웅 울리고 발은 달려 있어서 걸어지는 것일 뿐. 노안이 온 눈은 잠을 못 자서 이제 보이지도 않는다. 헬렌 켈러 님이 절로 떠오르고, 지금 이 글의 글자 사이즈도 14 정도로 확대해서 쓰고 있...
이럴 거면 집을 나가!,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이 얼마나 눈물겨운 모성애이며 극한의 통제력인가! 설마 아들을 진짜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 정도는 배운 사람이다. 다만 아주 가끔은 아들의 저녁밥에 곱게 간 수면제를 조금만, 그러니까 리틀빗ㅡ 만 넣으면 모두의 숙면과 건강을 위해 괜찮지 않을까,라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잠을 못 자 견디다 못한 어느 날, 그렇게 한 번씩은 괜찮지 않을까. 그러니까 오늘 밤 말이다.
아들 연재 글이 올라오지 않는 걸 보니 잘 지내고 있나 보다, 고 넘겨짚으시면 많이 섭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