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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Aug 18. 2024

죽이고 싶은 아이

친정 엄마의 허리 수술과 한 달 넘게 이어진 입원으로 가족 휴가 일정에 차질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때는 이미 예약을 끝낸 상태였다.


바다로 간다고 하자, 큰아들은 무심한 듯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여행 날짜를 잊지 말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여행 며칠 전, '신안'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아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엄마 미쳤어? 거기 염전 노예로 잡혀가는 데잖아?"

"거기 경찰들 다 한통속이야. 썩었다고!" 
"아들을 거기로 데려간다고? 잘못되면 어쩔 거야? 엄마 제정신이야?" 

믿기지 않았지만, 아들은 진심이었다. 

그래, 네가 유튜브를 너무 많이 봤지. 


거기 완전 휴양지야. 너도 예전에 가본 데고. 주변에 다 캠핑장과 리조트 있는 데로 가는 거야.


소용없었다. 



그럼 영화 '곤지암'에서 나온 곤지암에는 왜 맨날 스키 타러 갔는데? '범죄도시' 촬영지는? 우리는 거기서 살았는데? 큰 아빠가 사시는 A시는 아예 가면 안 되겠네? 별의별 범죄가 제일 많이 일어나는 데가 네가 좋아하는 강남이야, 알아? 멀리 갈 것도 없어. 우리 동네는 아닐 것 같아? 총기 난사가 일어나는 미국에는 왜 다녀왔니?  


... 소용없었다. 


"그래 아들, 네 기분, 그럴 수 있겠다. 미리 상의했으면 좋았을 걸, 에구. 이번에는 엄마가 이것저것 다 준비하고, 아빠도 글램핑장 좋은 데로 예약했대. 같이 가자. 그리고 다음에는 우리 아들 가고 싶은 데로 꼭 가자!" 

"엄마나 가."

"......"




"야, 고등학생이랑 4박 5일이 다 뭐니? 너네 부부 욕심이 과했어. 그 나이 애들이 바다 가서 얼마나 있으려고 한다고? 거기에서 목포까지 30분 거리니까 하루는 목포로 바람 쐬러 가. 시원한 카페에 앉아서 디저트 먹고, 아웃렛에서 티셔츠도 하나 사 줘. 정 안 되겠으면 목포에서 SRT 태워 보내!" 


선배 엄마의 지혜로움이여. 그렇게 아들을 살살 달래고, 자그마치 4박 5일간의 여름 캠핑, 물놀이, 갯벌 체험을 위한 각종 짐, 그러니까 수저부터 이불까지, 각종 먹거리부터 제빙기까지 짐을 싸고 싸고 또 싸느라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왔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일 새벽. 


"아들~ 일어나. 이제 가자." 
"나 안 가."

"......" 


그 순간, 청소년 도서 베스트셀러인 그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죽이고 싶은 아이>.


그러나 생각해 보면 아들은 안 간다고 자기 의사를 밝혔다. 다만 나는 믿고 싶지 않았고, 다만 나는 그 순간 내 안에 차오르는 살의를 억눌러야 했고. 


그날 아침, 시댁에 전화를 했다. 아들을 제외한 우리는 출발했고, 무방비 상태의 우리 집은 시부모님께 4박 5일간 노출되었다. 


"야! 냉장고며 김치 냉장고며 죄다 썩어서 내가 싹 다 버리고 치웠어. 음식물 쓰레기를 몇 번이나 갔다 버렸다니까? 냉장고 안이 환해졌다야."

끙...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밝다 못해 장군과 같은 기개로 우렁찼다. 집안일이라는 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언제나 버겁고, 나란 인간을 한없이 작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빠른 자포자기를 위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러나 다섯 번만 하자. 친정 엄마라면 당연하게 받았을 도움, 시어머니께 백번씩 인사하는 거 이제 그만하자. 


아직도 고딩과 뭘 하려고 하다니. 아직도, 아직도,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는 내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귀한(?) 소동이었다.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켜고 이 글을 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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