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새벽 3시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시간 자체에 악감정이 있을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출근길 지옥철 안의 아침 8시도, 분명 퇴근 시간이나 퇴근하지 못하는 저녁 6시도 아닌 것을. 아무도 그 고충을 알지 못하는 새벽 노동자마저 아니라면, 새벽 3시는 그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고등학생 아들은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아니 늘 그래왔으니까, 오늘도 천연덕스럽게 새벽 1시에, 2시에, 3시에 거실 불을 환하게 켜고, 주방과 욕실을 수차례 들락날락 거린다. 학원 다니는 친구들의 학원 수업이 끝나는 밤 10시에 나가 두 시간 심야 축구를 때리고, 자정이 지나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수시간을 폰을 들여다보고 게임을 하다가 야식을 먹고, 새벽 두 시에 아주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또 아주 오랫동안 정성스레 드라이를 한다. 이젠 그만 자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 왜인지 먹고 씻는 그 과정은 처음부터 반복되고, 쿵쾅거리는 소리는 고스란히 내 귀에 얹힌다. 심지어 내 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불을 켜고, 자고 있을 것이 뻔한(그러나 물론 잠들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뭘 요구하기도 한다.
내일 또 학교 안 가겠구나.
나는 또 자근자근 아스라 진다.
가뜩이나 불면증이 있고, 가뜩이나 잠에 예민한 나는, 그러나 에너지의 대부분을 잠을 통해 얻는 나는, 절박하게 잠을 청해 보지만 오늘 밤도 글렀다. 이렇게 내일의 나도 망했다.
이제 4시마저 훌쩍 지나가고 5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을 나는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다. 잠은 완전히 달아나 버렸고, 노여운 마음은 쉬이 식지 않아, 그저 좁고 너저분한 방안을 서성인다. 20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눈빛에는 노여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눈빛은 흐릿했고 아무도 그 힘없는 노여움을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 내 모습에는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 흐른다. 무고한 사람의 등에 수차례 칼을 꽂았다는 어느 범죄자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이미 깊숙이 찔렀는데도, 한번 찔렀으므로, 남자는 찌르고 찌르고 또 찔렀다. 정확하게는 열 번을. 나는 지금 등이 아프다.
나는 이제 나의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생각한다. 일련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싶었고, 얼추 끝이 보이고 있었다. 아들 이야기가 어느덧 내 삶에서 많이 빠져나갔더라며, 어느새 이야기의 주제가 아들이 아닌 나 자신으로 바뀌어 있더라며, 여러분이여 자신의 인생길을 걸어가자고 그렇게 자못 진취적인 목소리를 흉내내기도 했다. 그것은 어설펐지만 약간의 희망을 품고 있었으므로 내 마음은 조심스레 웅장해지기도 했다. 웬 개소리인가. 내 이야기의 섣부른 해피엔딩에 나는 지금 코웃음이 난다. 어디서부터 박박 지우고 다시 써야 할까. 나는 그냥 믿고 싶었을 게다. 그 희망은 진짜라고. 그 글은 사기다.
이 연재도 하고는 있지만 결핍을 소재로 글을 쓰는 짓을 그만하고 싶다. 지긋지긋하다. 언제까지 불안한 집필가로 남을 것인가.
어젯밤 들었던 강의의 제목은 공교롭게도 ‘오후 3시, 식물학자의 시선’이었다. 19년 차 식물연구원인 그녀는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어김없이 밖으로 나가 식물을 관찰한다. 어제 보았던 그 식물에게 다정한 시선을 건네며 안부를 살핀다. 누군가에게 3시는 편안하고 따듯하며 기대되는 시간이다.
이제 다섯 시 정각이다. 밖에는 오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다. 분주한 새벽 시간이 다가오고 있나 보다. 그리고 나는 생채기 가득한 이 글을 꺼내놓는다. 또 그랬답니다, 이러면서.
어떻게 하면 식물과 친해질 수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매일 집 근처의 같은 나무에게 가보라고 했다. 가만히 잎사귀며 가지도 만져보라고 했다. 그렇게 그 나무의 계절 변화도 경험해 보고, 곁에 가서 이야기를 나눠 보라고 했다. 그 나무는 내 나무니까. 나도 그렇게 3시를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볼 수 있으려나. 그러나 지금은 피곤함에 절어서 단 한 걸음도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