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딴짓 Aug 27. 2024

그 얘기 그만해

나에게 하는 말

아침에 카페를 가야지. 어젯밤, 그 생각만 품고 잠을 청했다.

잠결에 주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반. 아직도 안 자고 있군. 아들이었다.



현관 앞에서 옆집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어디 가세요?"

"아, 애들 아침에 먹일 빵 사러요. 아휴, 밥 하기 너무 귀찮아요." 나는 짐짓 보통 주부인 척 대꾸했다. 말을 하면서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는.

그 집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며 목례를 했다. "고등학교 가면 이 시간에 나와 밤 10시에나 와요. 할 거 별로 없어요. 과일만 챙겨주면 돼요." 여자가 소곤거렸다. 그녀는 내 아들이 중학생인 줄 알고 있는 듯했다. 실제 그 집 아들과 한 학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늦었다. 빨리 가자." 1층에 내려서자 여자가 아들의 소매를 가볍게 붙잡았다. 관계가 좋은 모자였다. 바지런하고 다정한 엄마와 순딩이 고2 아들. 가끔 그들과 마주치면 편안해 보였다. 그나저나 아침 7시에 학교에 가면서 얼굴에 미소가 깃든 고등학생은 뭘까. 아침 7시인데 뭐가 늦었다는 걸까.



편의점에서 산 빵을 식탁 위에 던져두고 노트북 가방을 들고 나왔다. 먹을 것을 챙겨주지 않으면 불편한 심정을 내보이는 남편과, 엄마를 밥 차리는 존재와 동일시하는 큰 아들. 원래는 김밥을 해야지 싶었지만 어젯밤 아들과의 한바탕 후 주방을 날려버리고 싶은 생각에 관두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가족을 위해 빵을 사놓고 카페에 가는 여자요,라고 스스로를 정당화라도 시키고 싶었던 건지. 그 책 제목이 뭐더라.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가족들에게 어느 날 참다못한 엄마가 "너네는 돼지야!"라고 쪽지를 남긴 후 사라지고, 쳐묵쳐묵 하던 나머지 가족들은 결국 돼지로 변하는... 아, <돼지책>이었네. 하루 한 끼도 차려주기 싫은 나로서는 이러한 비교가 유난스러울 수도 있지만, 뭐 갑자기 그 책이 떠오르는 걸 어쩌겠냐는 거지.  



앞서 걷는 남학생은 큰 아이가 나온 중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다. 빠르게 걷는 듯하더니 이내 뛴다. 아침 7시 반. 왜 뛰는 거니? 화장실이 급하니? 여친과의 모닝 데이트라도 있는 거니? 언제나처럼 생경한 아침 풍경이다.




행복이 어쩌고 오두방정을 떨던 나는 그 말을 한 지 만 24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또다시 다급하게 스타벅스에 몸을 숨겼다(스타벅스만 고집하는 이유는 신용카드가 50퍼센트 할인되기 때문). 전날밤, 아들은 새벽에 친구들과 게임을 해야 하니 데스크톱이 있는 안방을 내어 놓고 엄마는 거실에서 자라고 했다. 나는 참지 않았다. 아들이 2주간 제대로 학교에 간 적이 없는 것을 문제시 삼았다(진부한 전개...). 지각이나 결석을 할 거면 병원진료확인서를 제대로 제출해서 출석 인정을 받아야 하지 않냐고, 친구들과 놀 거라 학교는 다닐 거라고 말한 것은 다름 아닌 너였다고 또다시 강조했다(했던 말...). 최소 출석일이 간당간당한 상황이었다. 아들은 병원 갈 돈이 없다고 대꾸했다. 네가 옷, 화장품 등 모든 소비를 용돈 내에서 충당하겠다고 하면서 용돈 인상을 요구해서 용돈을 두 배나 올려주었고, 할머니께 따로 돈 받은 지도 일주일밖에 되지 않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돈은 이미 다 썼고, 어쨌거나 병원에 돈 쓸 생각은 없다는 게 아들의 말이었다. 학교 다니는 것도 이젠 상관없고, 자기는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소음을 주고받는 의미 없는 행위. 알면서도 나는 또다시 몸에 힘을 줬다. 미용학원을 들먹였다. 네가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 시작한 건데  지난 4개월간 제대로 가본 적이 있냐고 상기시켰다. 아들은 안 가는 것보다는 나은 거 아니냐고 응수하며 차갑게 노려봤다(그 와중에 맞는 말이긴 하고...). 자기한테는 그게 최선이라며 눈을 부라렸다. 최선? 나는 깔깔깔 웃어주고 싶었다(하지만 진짜 최선일 수도. 그리고 왜 최선을 다 해야 하는데?). 되는 대로 말대꾸하지 말라고 했더니 아들은 말대꾸하면 안 되냐며 어깨를 부풀렸다.   



언제나처럼 옆집 불구경하듯 거실에서 과일을 먹고 있던 남편은 오랫만에 아빠 역할을 하고 싶었던 건지 아들에게 앉아보라고 하더니 긴 시간 동안 일장연설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살아남기 어렵고, 네가 알아서 살아야 하고... 결국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협박을 훈계랍시고 하고 있는 모습에 나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만!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경멸하는 저런 전개가 결국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많이 달랐던가. 아니야?





내려놓던가. 품어주던가.

뜨거운 커피를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책을 네 권이나 가져왔다. 어차피 겨우 조금밖에 못 읽을 텐데. 독하고 매정했던 삶. 분노를 자양분 삼아 살아온 어른 이야기 <미오기전>, '최초'라는 자신의 기록을 매번 스스로 갈아치운 우리나라 최초의 여형사 <형사 박미옥> (<미오기전>은 김미옥 님이, <형사 박미옥>은 박미옥 님이 쓰셨다), 오늘도 끊임없이 탈출하고 진입하는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그리고 당신이라는 단 한 사람을 위한 간절한 메시지 <단 한 사람>. 이 중 무엇을 뺄 수 있단 말인가? 오늘도 나는 이렇게 스타벅스에, 그리고 책 속에 숨어든다.



그러나 집에 갈 시간이다.

가야지 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