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미친 새끼야!" 뒤돌아서 아들에게 꽥 소리를 질렀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바지런을 떨어보려고 했다. 알람을 6시에 맞춰놓고, 7시에 문을 여는 스벅에 가서 두 시간 동안 초 집중해서 글을 쓰고, 책을 보고, 회사 일을 마무리하고(두 시간 동안, yes), 다시 달려와서 출근하는 남편을 챙기고, 애들을 깨워서 밥을 먹이고, 심심해 죽겠다는 작은 아들을 수영장에 데려갔다 오고, 오후에 친정엄마가 입원하신 병원에 가서 저녁밥을 챙겨드린다, 가 나의 계획이었다.
6시에 일어났다. 다시 잤다. 다시 일어났다. 다시 잤다. 다시 일어나니 9시. 왕짜증. 남편의 아침식사를 대강 챙겨주고, 회사 일을 처리하고, 책을 들었지만 어수선한 내 방에서, 거실에서 티비 소리가 왕왕 울리는 이 공간에서 오늘따라 집중할 수가 없다. 엄마는, 주부는, 아줌마는 그러면 안 되는데, 그 어떤 상황에서도 텍스트를 눈에 담을 공간만 있다면, 펜을 들 수만 있다면 불꽃같은 집중력으로 그 순간의 나에게 빠져들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유튜브를 틀었다가 예능 프로그램인 유키즈온더블럭에 나온 출연진이 하는 말을 들으며 훌쩍였다. 그의 프로필을 한참동안 검색하고 그렇게 포털 사이트에 머물렀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코미디언 강유미의 개인 방송을 거쳐 BTS 정국이 라이브 방송 중 실제로 숙면에 든 예전 영상을 보고 있다. 그가 자는 장면을 멍충하게 바라보고 있다. 아니 아니 그래도 되는데, 그의 얼굴을 초근접으로 보는 것은 수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건데 오늘따라 그러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나도 멍충스러워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친! 정오다. 허겁지겁 옷을 입었다.
거실에서 17, 12세 형제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철 지난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무한 정주행 중이다. 큰 아들에게 물뿌리개를 주고 뒤돌아섰다. 꼬깃해진 티셔츠. "빨리 뿌려! 나가면서 주름 펴지게..."
"큭큭..." 두 아들의 짓궂은 웃음소리. 물총 놀이라도 하듯 등의 정중앙에민 물을 분사하고 있었다. "미친 새끼야!" 그 순간 빡 튀어나온 말에 아들의 얼굴이 서늘해졌다. "갑자기 욕이 왜 나와? 미친 새끼가 뭐야?"
노트북이 든 가방을 둘러매고 스타벅스로 뛰듯이 걸었다. 일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두 시간. 버스를 타고 김포로 가려면, 저녁 식사가 나오는 5시 전까지 가려면 서둘려야 한다. 친정 엄마는 4주째 병원 생활을 하면서 완전히 입맛을 잃었다. 병원 생활 3주 차, 알 수 없는 고열로 많은 검사 끝에 요로 감염으로 판정되었다. 이 전 병원에서 소변줄을 오랫동안 차고 있으면서 소변줄을 통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 가정에서 생긴 방광염 등과 달리 병원 균은 그 독성이 매우 강해서 치료도 강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 게다가 일반적인 바이러스가 아닌 그 무서운 슈퍼 바이러스라면... 그 이상은 상상하기도 싫다. 의사는 일단 일주일 가량 균을 키워서 어떤 균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균 배양 검사를 진행하고, 이후 일반 균이 아닐 경우 대학 병원으로 엄마를 이송한다고 했다. 안 돼요. 안 된다고요. 화가 났다. 아득해졌다.
그제 엄마를 보러 갔고, 어제 열이 떨어졌대서, 일반 균인가 보다, 괜찮은가 보다, 싶어 병원을 안 갔다. 그런데 오늘 통화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또다시 열이 오르고 있다고 했다. 유일한 딸, 나는 조급해졌다. 아침 시간을 그렇게 허송세월로 날려버린 나 자신에게 짜증을 부릴 대로 부렸다.
아들에게 싸지른 욕지거리는 내 모든 감정이 꽉꽉 뭉쳐서 던져진 것이었으리라. 바지런하지 못한 나 스스로에 대한, 홀로 병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엄마에 대한, 방학 내내 저러고 있는 두 아들에 대한 온갖 지저분한 감정들이 믹스가 되었다. 그래도 미친 새끼라니, 미친놈 정도면 또 몰라. 아들에게 톡을 보냈다. "욕 해서 미안. 엄마도 놀랐다 야. 할머니가 안 좋으셔서 엄마가 예민했나 봐. 일 좀 집중해서 하고 들어갈게."
흘깃. 이제 일할 시간은 1시간 반 남았다. 일분이 아까운데 또 다급하게 브런치 창을 켰다. 오늘도 우르르 쏟아냈다. 점심시간의 스타벅스는 동네 엄마들이 포진되어 있고 아구아구 말소리로 시장통이 따로 없다. 뒷자리 아주머니들의 대화 속에 '주식'과 '청약'이라는 단어가 새어 나온다. 어쩌면 나는 저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다. 나도 저 주제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신 이어폰을 끼고 그들의 말을 막아 버린다. 앗... 한쪽 이어폰이 먹통이다. 그렇게 나는 한쪽 귀로 셀린 디온의 파워풀한 목소리에 의지하여 의기소침해진 내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영혼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운다. 일어나라고! 동시에 한쪽으로는 현실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있다. 양쪽 귀의 싸움이 마치 나의 일상의 현실 모습인 것 같아서 쓴웃음이 나온다. 셀린 디온 님, 힘내세요. 그녀의 목에서 피가 나올 것 같다. 그녀가 온 힘으로 노래를 부르며 나를 붙든다.
젠장, 서둘러야 하는데 이렇게 또 아들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지 않으면 한 걸음이 안 되는 쫄보구나. 누가? 내가.
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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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그날의 모든 울분과 슬픔, 탄식, 먹은 음식을 탄천에서의 군무 에어로빅으로 날려 버리고 있는 150여 명의 전사들. 혹은 여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