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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Apr 19. 2024

새벽 3시에 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새벽 3시의 아파트 단지

새벽 3시가 다 된 시간.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박에 1층으로 내려왔다. 수많은 근심으로 마음은 이미 바닥에서 더 바닥을 치고 있었다.



4월이 되고 너무 늦는 아들의 귀가시간. 자정이 다 되어서 귀가하거나 심지어 자정이 넘기도 했다. 통금에 대해서 심각하게 이야기한 게 수 차례. 아들은 밤 아홉 시에 나갔다. 어디서 누구와 있다가 언제 오겠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청소년의 PC방 출입시간은 10시까지. 이후 학원에 다녀온 친구들과 만나 축구를 하고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었을 것이다. 그리곤?



스마트폰은 꺼진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나온 건 아니었다. 어디를 가야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기다려도 상황은 같겠지만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들이 집에 오면 연락하라고 남편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뛰어나왔다.






나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놀이터가 가까워지자 아들 또래들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숨이 멎는 듯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트럭 옆에 몸을 바짝 붙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어떻게?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트럭에서 나와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그쪽으로 접근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네 명이었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 이제 막 만남을 파하고 있는지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고, 그들 중 두 아이가 담배를 끄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럴 자신도 없었지만 한 마디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찰나, 아이들은 사라졌다. 아들은 없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가던 길을 다시 걸었다. 백 미터쯤 앞에 정자가 있고 몇몇이 바닥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 역시 또래들이었다. 평소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지나다니는 마트 앞의 정자.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엄마들과 아이들이 앉아있곤 하는 곳이었다.



두 번째 광경까지 지나치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갑자기 아파트 옆 하늘 공원에서 날카롭게 꺅꺅 웃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아이들이었다. 이 시간에? 신고를 해야 하나?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머릿속에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채 멍하니 앞을 보고 걸었다. 아직 아들을 찾지 못했다.



그다음 정자에서 아들을 발견했다. 편의점 앞이었다. 안도감과 함께 나는 두려운 마음에 사로잡혔다. 처음 보는 아이들이었다. 장성한 고등학생 남자 여섯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머릿속이 하얘졌다. 찻길을 가로질러 아이들에게 다가서는데 아들이 나를 발견하곤 경직된 표정으로 일어섰다.

“안녕 얘들아… 나 OO이 엄마야…”

“안녕하세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저희 비행 뭐 그런 거 안 해요.”        

한 아이가 불쑥 말을 뱉었다.

“스카(스터디 카페) 갔다가 축구하고 라면 먹고 이제 헤어지려고요.”  

“이름이 뭐니?”
“OO고등학교 XXX입니다. 저 이번에 중간고사 때 수학 백 점 맞았고, 1등급이에요.”

이름을 물었는데 등급까지 말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멈칫했다. 교과서도 가지고 다니지 않고 가끔 학교에 가는 우리 아들은 왜 스카를 갔을까.

“그랬구나. 그런데 아줌마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아. 지금 3시잖아.”  

“저는 OO고등학교 XXX입니다. 저 이번에 중간고사 때 국어 다 맞았고, 1등급이에요.”

분명 ‘그런 게 중요치 않다’라고 말했는데 두 번째 아이도 이름 뒤에 자신의 등급을 밝혔다. 그리고 다섯 번째 아이까지 같은 패턴으로 순식간에 신원을 밝혔다. 마치 이름과 등급이 한 세트라도 되는 것처럼.



“엄마 가. 나 십 분 후에 들어갈게.” 아들이 나를 밀어냈다. 그 앞에서 긴 말을 할 수 없었다.



얼른들 집에 들어가라고 얘기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1층 현관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맹랑한 녀석들이었다. 분명 나는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는데 내 말을 무시하듯 자신의 등급을 밝혔다. 모든 아이들이 하나같이. 뒤늦게 아이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과 안쓰러움이 올라왔다. 그 아이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공부가 면죄부가 되는 것을, 공부를 잘한다는 걸 알게 된 후 어른들의 표정이 환해지는 것을 아이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동시에 아이들은 자신을 설명할 것이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 또한 피식 웃고 말았다. 레터링이 거칠게 휘갈겨진 티셔츠에 크로스백 하나 덜렁 매고 있는 아들과 달리 수수한 얼굴에, 평범한 학생용 백팩을 멘, 공부 잘할 것 같은 아이들에 나도 안도했던 것이다. 그 순간 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문득 시선을 들어보니 쿠팡 차량 두 대에서 택배 기사분들이 짐을 내리고 있었다. 그들이 새벽 세 시의 아파트를 밝히고 있었다. ‘감사하네…’ 그 순간 내 눈에는 쿠팡맨들이 방범대원으로 보였다. 그리고 진심으로, 눈물 나게 고마웠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동네였다. 그렇게 알려져 있고 그렇게 보이는 동네였다. 그러나 새벽 세 시의 모습은 달랐다. 나는 불현듯 내가 오랫동안 살아온 아파트가 낯설어졌다. 내가 보았지만 믿기지 않았다. 한 시도, 두 시도 아닌 세 시에 아이들은 왜, 거기에.  





아들과 함께 집에 들어왔다. 남편과 셋이 마주 앉은 식탁의 분위기는 깊은 새벽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네 시가 되고 있었다. 피로로 눈이 꺼질 것만 같았다.



"말없이 나가고, 전화기는 꺼져있고.” 해야 할 말이었지만 말을 쥐어짰다. 마음도 말도 무기력해져 버렸다.

“말하면? 말하면 엄마가 들어줄 거야? 아니잖아?” 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은 없었다.

“3시잖아.” 더 이상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집에 왔잖아? 술 담배 안 하잖아? 뭐가 문제야? 왜 기다려? 그냥 주무셔.”



통금, 부모, 자식, 미성년, 상식… 이미 했던 이야기를 우리 부부는 또다시 건조하게 반복했다.

“그래서 어른이 다 이상한 거야.” 아들은 우리의 일장연설에 한 마디로 되받아 쳤다.

“엄마랑 못 살겠다. 내일 집 나갈게.”

대화는 평행선 이상이었다.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각자의 말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진저리를 치며 결론 없이 방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왜, 왜.




다음날은 주일. 예배 후 교회에서 점심을 먹으며 친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시던 남자분이 가만히 말씀하셨다.



"저는 일산 살거든요. 가끔 밤에 나와서 일부러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녀봐요. 빈 놀이터가 없어요. 다 만석이죠. 아이들이 꽉꽉 차 있어요. 옥상문이 열린 곳에서는 다 자고 있고요.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은 괜찮은 아이들이에요. 안 보이는 데로 숨지 않았잖아요. 집에 들어갈 아이들이고요."



지인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던 나는 어느덧 눈물을 닦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청소년 상담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담담하게 이어간 그의 말은 내가 그날까지 가지고 있던 상식을 완전히 부수는 것이었다.  


중요한 내용이라 두 편으로 나눴습니다.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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