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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Apr 12. 2024

일진이 나쁜 날에도 글을 써라

씩씩거리며 글을 쓴다

아침을 행복하게 시작하고 싶다. 이른 아침의 창밖을 가만가만히 응시하고, 찰랑거리는 물처럼 혹은 은은한 물안개처럼 조용히 부유하고 있는 내 마음을 모닝커피 타임까지 이어가고 싶다.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비로소 마음의 고요함을 조용히 일깨우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똑똑똑. 똑똑똑!... 꽝꽝꽝!!!



큰 아이의 방문을 두드린다. 초등학생인 작은 아들은 이미 등교한 뒤. 제발, 월요일부터 학교를 늦지 말아 줘. 째지 말아 줘. 제발 제발 제발.



월요일이라서 더 가기 싫을 것이다. 직장인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의 시작부터 큰 아이의 꼭 잠긴 방문을 보며 인내심이 바닥난다. 오늘은 유달리 참기가 어렵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숨이 거칠어지고, 마음은 사나워진다. 늦었습니다, 지각합니다, 병원 다녀 가겠습니다, 오늘은 못 갈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담임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러한 마음을 참지 않는다.



식탁 위의 커피는 이미 다 식었다. 고상하게 한 모금씩 음미해야 할 커피를 신경질적으로 들이마신다. 4월. 봄 햇살은 따사롭고 참여 중인 글방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글의 주제가 올라와 있다. 대강 해치워야지. 갈겨버리고 던져놔야지. 주제 문장을 흘겨본다.



'일진이 나쁜 날에도 글을 쓰라.'  



뭐야? 이런 주제라면 눈 감고 아무 날이나 골라도 쓸 수 있다. 기분 나쁨은 수시로 올라온다. 그래서 씁쓸하다.



일진이 나쁜 날일수록 더더욱 글을 써야 한다. 발밑의 땅이 꺼지고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을 때에도.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외향인은 아니지만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일을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것도 좋아한다. 내 상태가 괜찮은 날, 그러니까 나는 아들 일로 머리를 싸매지 않는 날이면 아주 평온하다. '발밑의 땅이 꺼지고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을 때에도.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잃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를 빤히 보는 내 모습을 생각해 본다. 힘들수록, 내가 더 감정에 휩싸여 있을수록 빤히 쳐다보자. 직면하자. 나의 본연의 모습을 생각하자.






스트레스가 머릿 끝까지 관통하는 순간이면 흑백영화의 여주인공처럼 담배를 꼬나물고 싶어 진다. 샤넬의 왕나비 선글라스를 끼고 침통한 표정으로 멋지게 담배를 피우는 나를 상상한다. 절대로 쭈그려 앉아서 몰래 피면 안 된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무조건 가오(간지)다. 몸에 알코올 분해 기능이 없어서 술을 마시면 일주일이 지나도  알코올이 그대로 있다고 한다. 간지 나게 술을 홀짝이지 못한다.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나빠서, 아무 일이 없어서 자주 먹었던 빵도 이젠 많이 먹지 못한다. 운전을 못 하니 음악을 꽝꽝 틀어놓고 최고 속도로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도 없다. 그저 씩씩거리면서 글을 쓸 뿐이다 ㅡ 젠장.



5월에 아이슬란드 갈 때 담배 한 갑을 사가야겠다. 아이슬란드의 디스토피아적 어두운 풍경을 바라보며 한 대 꼬나물어야겠다. 아주 천천히 음미해야지. 또 아이슬란드에서 해 볼 만한 게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기분이 좀 풀렸다. 그래, 아이슬란드 갈 생각을 하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저 난린데, 세상이 지옥인데 아들 결석이 뭐 그리 큰일이고?



커피를 뜨겁게 데워야겠다. 그리고 천천히 음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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