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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ll Mar 25. 2022

은인

인복

이전 직장에서 해외출장 때,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무리하게 음주를 한 적이 있다. 보통은 여권과 현금을 정장 호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검은색 파우치에 중요한 물건을 넣고 식사와 술을 함께 했다.


이전에는 한 자리에서 접대가 끝나고 휴대폰이나 개인물품을 서로 챙겨주고 숙소로 돌아와서 쉬다가 다시 다음 식사자리로 이동해서 가방이나 겉옷을 분실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그날은 거래처의 신축공장 기념식이라 그런지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내부에 있던 레스토랑의 방과 방을 넘나들며 술잔을 들고 인사를 하고 건배를 했는데,


평소 주량을 넘어선 나는 어느 순간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KTV 바닥에 실례를 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호텔 방으로 들어왔고, 잠들었다.


새벽 3시경 나는 잠에서 깼는데, 검은색 파우치가 갑자기 떠올랐다. 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없었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주중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서 여권 분실 신고를 해야 하나... 출장 일정 전부 뒤집어지고 사장님한테 엄청 혼나고 찍히겠구나...


나는 정신을 추스르고 호텔 로비 리셉션으로 가서 혹시 분실물 접수되지 않았는지 확인했지만 없었다... 호텔 안에 있던 레스토랑은 영업이 끝난 상태라 들어갈 수 없었다.


새벽이었지만 이중 통역을 함께하던 중국 한족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동이 틀 때까지 나는 지옥에 있었다.

 

그 중국 한족 친구는 침착하게 어제 함께 식사를 했던 다른 친구들에게 위챗 메시지를 보냈고, 그 친구들 중 하나가 내 검은색 파우치를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심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미군 부대 카투사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보다 더 기뻤다.


그러고 보니 미군 부대에서 군 복무 시절 선임들 중에서 유별나게 까칠하고 무서운 선임이 있었다. 그 선임에게 찍히지 않고 지내는 것이 자대 배치 후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선임은 나와 고향이 같았고, 그 선임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대학교 후배가 나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사실 그 중학교 동창과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고 반장과 부반장으로 학급일로만 마주쳤다.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르게 진학해서 서로의 소식을 다른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듣는 정도였다.


그 친구는 나의 군대 선임에게 나에 대해 굉장히 좋게 얘기했고, 나는 무탈하게 군 생활을 했다.


그 선임은 내 중학교 동창이 자기가 만난 몇 안 되는 천재들 중 하나라고 했다.


중학교 때 그 친구는 세계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친구였다. 그리고 군 복무를 어떤 고등 기관에서 복잡한 계산만 하는 것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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