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좌 당근주스 #소녀는 어디 가고 아저씨께서 #본격 환경보호 실천도전만
육지에서 손님이 오셨다. 내게는 5명의 이모와 2명의 외삼촌이 계신데(TMI: 5명의 고모와 1명의 삼촌-작은아버지-까지, 그러고 보니 친척 부자) 그중 3번, 4번 이모께서 사촌동생(셋째 이모의 아들)과 불시에 제주를 습격하셨다. 엄마를 통해 이모, 외삼촌들 시간 되시면 우리 제주살이 하는 동안 함께 놀다 가시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당장 내일 오신다니 뭘 해야 하나... 막막하다.
결론만 말하면, 아무것도 안 했다. 괜히 조카 신경 쓴다고 온다고 통보만 하시고, 알아서 숙소 예약에 일정까지 다 정하셨다(목적지를 정했다기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느낌 있는 곳으로 가겠노라 선언).
제주도민으로서 육지 손님맞이 준비가 아직 덜 되어 죄송했다.
육지 손님은 비자림을 선택하셨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야 했기 때문에 식사를 함께 하기는 어려웠고 차 한잔 할 수 있는 곳을 정해 중간 접선을 하기로 하였다.
"비자림은 구좌읍, 구좌읍은 당근, 당근은 맛있어!"
나는 평소 지인 추천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그때그때 지도에 저장해 두는 습관이 있다. 굳이 그곳을 찾아가진 않더라도, 근처에서 뭘 먹거나 머물 곳이 필요하면 참고하기 위해서! 하지만 아쉽게도 비자림 근처엔 저장해 둔 장소가 없었다.
다행히 비자림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구좌 당근주스가 주력 메뉴인 "제주소녀" 카페가 검색되어 이곳을 접선 장소로 잡았다. 육지손님들께서 제주시 어디선가 갈치한상으로 아점을 드시는 동안, 우리는 먼저 도착하여 당근주스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앞마당 가득 허브가 무성한 싱그러움이 있는 이곳은 전면이 완전 오픈되어 제주의 숲내음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소녀는 비록 없었지만 목재 가구들과 아기자기한 소품들, 갖가지 식물들로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그리고 제주 자연을 지키는 따뜻한 책과 실천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기다림이 더 설렌다.
기다리는 시간, 제주소녀의 책장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카운터 아래쪽에 두 칸짜리 책장이 있고, 카페의 앞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평대에도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녹색평론,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음식물 쓰레기 전쟁, 소농의 공부, 마당의 순례자, 자연을 닮은 밥상,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9월이여 오라...... 오랜 세월의 흔적과 손때 묻은 제주소녀의 책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삶을 지향하는 주인분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평대 서적 리스트는 카페에 머무는 짧은 시간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의 생활 습관을 되돌아보고, 자연환경을 보호(아니, 더 악화시키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실천을 이끄는 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주 바람 지도"는 "아름다운 섬 제주, 지속가능한 제주를 위한 여러 바람을 모아 세 번째 지도"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공정여행, 착한 여행을 소개하고, 제주가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이어질 수 있도록 생각하는, 실천하는 업장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 지도는 아래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https://la21jeju.or.kr/bbs/board.php?bo_table=4_1_1_1&wr_id=410]
당근주스와 함께 마이클 J. 로젠 글, 베카 스태틀랜더 그림의 "위대한 식탁"을 펼쳐 들었다. 먹거리의 소중함, 함께 먹는 것의 기쁨! 바로 지금 내게 충만한 그 마음이 동화책을 보며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제주에 살게 되며 행복에 대한 역치가 도시에서에 비해 확 내려간 느낌이 든다. 아마도 이 기간이 내 인생의 쉼표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제주에서 이런 따뜻한 순간을 만날 때면 이 시간의 특수성만큼이나 장소의 특별함이 더 와닿곤 한다.
오늘 제대로 소개하고 싶은 책은 바로 이 만화이다. 제주 출생 작가의 (제주) 환경보호 실천도전 만화!
핑계를 살짝 대보자면... 그동안 내가 접했던 환경보호에 대한 책들은 걱정과 죄책감을 유발하거나, (내 입장에서는) 넘사벽의 실천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그 마음과 행동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당장 선물로 들어왔던 보자기를 찾아내고, EM 희석액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이끌어낸다. 소프넛(無患者 나무 열매)은 바로 검색 들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특히 제주식 돼지화장실-똥돼지 에피소드("돼지고기 우리가 냠냠 - 우리가 응가 - 돼지가 냠냠 -> 뱅뱅 돌고 낭비 없이 돌고!" vs. "변기에 응가 - 물로 씻어 내림 - 똥물 제조")는 내게 최고였다. 음, "똥", "방귀"에 아직도 난리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나도 전염된 걸까? 꺄~
육지손님들이 도착하시기 전 한숨에 다 읽어버렸다. 우와! 이 책 완전 소장각!
어떤 사람을 보면 참 그 사람 "답다"고 느끼게 하는 지점들이 한 구석씩은 꼭 있게 마련이다. 책 세 권(동화책과, 만화책 2권)을 내리읽으며 기다린 육지손님들은 역시 상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아유, 미리 계획해서 내려오는 게 더 어려워!"
내일 제주도 갈까?로 시작되어 진짜 오신 이 분들의 자유로움에 나는 왜 그동안 이런 여유 없이 살았던가 싶다. 직장도, 일상의 바쁨도 다 나와 다를 바가 없는데 여행을, 쉼을, 억지로 가져야 가능한 것으로 착각한 그 작은 차이. 아이들 하교를 위해 일상으로 복귀하며, 1년의 제주살이 이후라면 그 차이를 좀 좁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생긴다.
어떤 장소를 보아도 그 장소 "답다"는 느낌이 있다. 육지와 다른 풍광과 자연은 굳이 쉼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우리를 그 자리로 끄집어내린다.
"어머, 저거 라벤더야, 뭐야, 어쩐지 향이 좋더라니.
이렇게 큰 허브가 마당에 자라고 있는 건 처음 봐!
오늘의 제주는 제주를 제주답게 만들고 지키려는 많은 사람들로 오늘도 "제주답다". 제주소녀의 환경 사랑 알리기, 그 작은 카페와 이어진 제주의 수많은 실천 스팟들, 일상 그 자체가 멋진 지구인이신 매옹이작가님의 재미진 지구사랑 실천기. 이 모든 것들도 제주다운 것.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지만 오늘 더 널리 소문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