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집구경 #즐거운불편 #함께살아가는지구인 #환경
세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의외로 많은 인간관계를 맺게 된 것의 구할은 아이들 덕분이다. 큰아이가 어디서 뭘 들었는지 몸의 유연성을 좀 더 기르면 축구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단다. 어린이 필라테스나 요가 같은 것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 집에서 5분 거리에 남자(아이들)를 위한 발레, "빌리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주에서 발레 수업이라니! 좀 멋지지 않은가? 심지어 기초반은 스트레칭 위주라니! 엄마도 어릴 때 안 해본 발레를 그렇게 큰아들이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의 발레 수업은 순조로웠다. 첫날 세 명의 아이들이 시작된 발레 수업은 어느덧 다섯이 되었고,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딱 필요한 말들만 오가는 이 단톡방에서 문득 어떤 아이들이 발레를 배울까 궁금해졌다. 그런데 프로필 사진(프사)을 들여다보다 오, 이런 곳이 있어? 싶은 멋진 곳을 발견했다. (내 프사에 무심한 만큼, 남의 프사에도 무심함에도 불구하고, 이 이후로 제주에서 만난 인연의 프사는 한번 들어가 본다. 제주의 숨겨진 보석 같은 곳들의 사진을 맘껏 감상할 수 있다!) 노란 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귤밭을 배경으로 유리로 만들어진 풍경이 바람에 흔들린다. 붉은 동백과 푸른 바다, 그 바다를 헤엄치는 아기해녀가 바람에 흔들리던 사진은 그 어느 낮이었다. 또 다른 사진, 어스름 푸른 어둠이 내려앉은 밤, 색색깔의 유리병이 박힌 벽으로 노란빛이 새어 나온 집 외관은 정말 독특했다. 이곳은 어딜까?
"사이" 10~20시. 이 메모를 힌트 삼아 찾기 시작했다. 오, "사이"는 친환경 로컬음식점이었다. 지도를 통해 들어간 블로그엔 이곳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블로그를 통해 이곳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읽다 보니 더 가보고 싶어졌다.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던 건물 외벽 색생의 유리병들, 외벽을 덧댄 알루미늄 캔, 그리고 건물 곳곳에는 바다에 밀려 내려온 폐품들과 쓰레기들이 이렇게 개성 있게 변신했단다. 블로그의 짧은 소개글이 감질나게 느껴졌다. 직접 가 보아야겠다!
표선에서 성산으로 향했다. 바닷길 따라가다 길을 잘못 들어 온평초등학교가 있는 큰길을 다시 되짚어가야 했다. 굽이 굽이 검고 낮은 돌담과 그 사이의 텃밭들을 지나 "사이"를 마주했을 때, 약간은 연예인을 본 기분이 들었다. 건축에 조예가 전혀 없을뿐더러, 제주살이 이전의 일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살아본 내게 집을 직접 짓는다는 행위는 내 인생 테두리에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낯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경과 로망이 뒤섞인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내 집을 짓는다는 것의 설렘, 그 원초적인 본능이 내 어느 밑자락에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예전에 읽었던 <집을, 순례하다>라는 책에서 왜 동양인(일본인)이 쓴 책에 동양의 건축은 없을까,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건축에 대한 문외한이 논하려니 낯 뜨겁지만) 아마도 이 집은 건축학적인 학술적 가치가 있다기보다 이 공간의 곳곳이 이 지구를 보듬는 손길이기 때문에 더 의미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이의 구석구석을 사진을 못 담아 온 것이 글을 쓰는 지금에는 아쉽다. (사실 또 올 공간이다 싶기도 했고, 음식이 나온 순간부터는 다른 곳에 한눈팔 겨를이 없었다!) 이곳은 직접 들러야 더 따숩다.
"사이"의 음식 메뉴는 많지 않다. 토마토 미트볼, 밀 버섯피자, 버섯튀김, 브루스게따, 통감귤정과까지... 재벌이나 된냥 "여기부터 여기까지 전부 하나씩 먹겠습니다!"를 시전 해버렸다. 채식주의자라면 토마토 미트볼 대신 토마토 두부볼을 선택할 수도 있다. 공간에 넋 놓고 있다가, 주문한 음식이 하나하나 나오면서 셰프님이자 주인장님께서 음식을 설명해 주시는 내용에 또 폭 빠져버렸다.
로컬 푸드라는 것은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 음식을 말한다. 좀 더 어려운 말로 말하면, 소비되는 곳과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식자재나 그것으로 만든 음식이다. 생산과 소비가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안전한 먹거리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내 밭에서 딴 상추를 오늘 점심상에 내어 놓는다는 것은 신선함을 보장한다. 먼 길을 운송하고, 오래 보관하기 위해 어떤 추가적인 행위를 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나와 가까운 곳이 생산지라는 것은 그것이 어떻게 커가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투명성(transparency)은 여러 명의 눈을 의미하고, 많은 경우 여럿이 지켜보면 윤리적으로 좀 더 나은 행동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좀 더 넓게 보면, 생산과 소비가 한 곳에서 이루어지므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의미도 있다. 생산된 식자재가 먼 길을 떠나는데 필요한 여비와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여러 환경파괴 행위들이 생략되니 환경에도 이득이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제주스러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여행자에게는 더더욱 여행의 의미를 풍족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관광지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 기념품을 사고 허탈해 본 경험은 많지만,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에는 거의 둔감하다. 농부 친구들과 고민하며 생산한 건강한 밀, 직접 농사지은 무농약 감귤, 텃밭에서 따낸 토마토와 콜라비, 시간을 들여 다듬고, 숙성시켜 만들어낸 음식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찬찬히 설명해 주시는 셰프의 자부심... 이런 대접받는 느낌은 고급 레스토랑의 격식 있는 코스요리에서 찾을 수 있는 것과 결이 다르다.
이런 멋진 곳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께 인생의 책들이 있다고 하신다. 셀프바에 놓인 두 권의 책!
음식을 기다리며, 그중 훌렁훌렁 볼 수 있다고 추천해 주신 <행복한 집구경>을 꺼내 들어 잡지 보듯 책장을 넘겼다. 아마도 이 집에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은, 1970년대 마 페이지의 "병으로 만든 집"도 보이고, 높은 층고에 얼기설기 엮인 천장이 인상적인 집도 있다. 집은 우리의 "꿈"이고, "쉼터"이다(이 책의 원제는 Home Work: Handbuilt Shelter이다). 의식주를 모두 내 손으로 해결했던 시기에서, 내가 선택하는 시절을 지나,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맞춰 살아야 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집 짓기를 내 손으로, 음식 만들기를 내 손으로 하다 보면 내 삶의 철학이 오롯이 담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우리가 수많은 요인들에 의해, 특히 디지털 혁명에 의해 크게 바뀐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집은 여전히 손으로 지어야 한다는 점이다. 집은 우리 대신 컴퓨터가 해결해주지 않는다. <행복한 집구경>이 여러분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기를, 여러분도 하기만 하면 무언가를 지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한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그냥 시작하자!
"당신이 흔들어보지 않는 한 무엇이 흔들릴지는 결코 알 수 없지." -자니 애덤스(블루스 가수)
<행복한 집구경> 중에서...
또 한 권의 인생책 <즐거운 불편>에 담긴 성찰은 자급자족의 삶, 환경을 생각하는 작은 실천에 대해 남겨진 가게의 메모에 그 흔적이 있었다. "일회용품 사용 최소화", "플라스틱 빨대는 뺄 때!".
에고, 우리가 음식을 많이 시킨 것인가 아니면 많이 주신 것인가. 음식이 나왔을 때는 아기자기 예쁜 플레이팅에 양이 많은 줄 몰랐는데 먹다 보니 가성비 음식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은근히 양이 많다. 우리가 남길까 봐 걱정이 많이 되셨나 보다. 일회용기 포장이 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결국 피자 몇 조각과 통감귤정과 1개를 남기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가 무슨 "사이"인가! 우리는 아이의 발레수업 라이딩 때문에 매주 토요일 만나는 사이였다. 먼저 기억해 주신 사장님께서 가게의 그릇에 남은 음식을 포장해 주셨다. 토요일에 깨끗이 씻어 반납하겠습니다. ^^
나는 특별히 환경 보호에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먼 미래의 후손들이 우리의 지구를, 환경을 망가뜨리는데 가속도 붙은 세대로 손가락질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간혹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인 환경운동을 하는 것도, 환경 보호를 위한 실천으로 내 삶의 곳곳을 준비해 놓고 사는 것도 아니다. 웬만하면 환경을 덜 해치는 방향으로 살려고는 하지만 이 "웬만하면: 허용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아니한 상태에 있으면"이라는 것에는 함정이 있는 법이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가슴으로 동감하지만, 몸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그런 사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범위 안에서 실천가적 습관이 강하거나 덜하거나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환경을 소중히 하는 실천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또 그런 실천이 켜켜이 묻은 음식을 먹다 보면 이 습관의 저울이 약간은 더 무거워지지 않을까 믿고 싶다.
이 글은 제주에 관한 책을 읽고 쓰겠다는 이 프로젝트에서 약간 빗겨 난 글일지 모르겠다. 아직 제주 곳곳을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제주는 환경운동가, 실천가들이 끌리는 공간인 것 같다. 과거부터 이곳에서 나고 자라신 분들은 관광지로, 개발로 소비되어 가며 옛 모습을 잃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울 듯하다. 제주 밖에서 건너온 분들은 아름다운 보물섬의 매력을 알리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고 싶은 의지 때문 일 것이다. 제주에서 이런 공간을 우연히 만나다 보면 그들과 함께 걸어가는 느낌이 든다. 작은 조각의 행복을 주운 것 같다.
집으로 가는 여행은 절대 곧은길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나 굽은 길이다.
우리는 둘러가는 길 어딘가에서 여행이 목적지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며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이 영원한 길동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넬슨 드밀(<행복한 집구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