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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 너머 Jul 05. 2024

종달리 책방으로 오세요

#소심한책방 #종달리746 #책약방

하얀 소금밭, 하얀 감자꽃밭, 수국과 들꽃으로 가득한 6월의 제주


오늘은 책방 투어를 해보자 마음먹고 떠난 참이었다. 표선에서 30분 정도면 올 수 있는 곳인데 그 30분이 멀다고 여적 미루고 있었다. 이제 제주사람 다 된 모양이다.


종달새소리가 들릴 것 같은 예쁜 이름의 종달리의 한자명은 "終達". 끝에 다다른 곳에 있는 땅, 한라산 동쪽 끝 마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당근으로 유명한 구좌읍에 위치한 이곳이 예전에는 소금밭이었단다. 종달리의 책방을 찾아갔을 땐 소금 대신 하얀 감자꽃이 핀 밭도 있었고, 막 감자를 수확해 망에 담는 밭도 있었다. 제주에서 내비게이션은 종종 제주의 좁은 올레도 길로 인식하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때엔 차로 들어서기 미안한 곳까지 안내하기도 한다. 종달리 책방으로 가는 길이 약간 낯이 익다. 아마도 얼마 전 메밀꽃 보겠다고 내비게이션 믿고 구좌 어딘가를 헤매던 그 근방이 바로 여기 종달리였나보다. 길 가, 6월의 제주라면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는 수국도 곳곳에 소담스럽게 피어있다. 책방 나들이 길목마다 눈이 호사다.


이렇게 작은 동네에 책방이 무려 세 곳이나 자리해 있다. 제주 시내에서 가까운 제주의 작은 책방을 한 번에 경험하고 싶다면 여기가 좋은 답 중 하나가 아닐까. 종달리746, 소심한 책방, 그리고 책약방까지. 이 세 장소의 각기 다른 개성은 이곳을 부러 찾아올만하게 만든다. 우선 종달리746은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북카페이다. 소심한 책방은 '수상한 소금밭'이라는 북스테이와 함께 운영되는 큐레이션 서점이다. 책약방은 제주제주 한 느낌의 아주 작은 무인 서점이다. 독립서점, 작은 책방의 핵심은 무릇 큐레이션의 센스에 있게 마련인데, 이 세 곳 모두 완전 센스 만점! 이 셋을 도보권(이라고 하기엔 살짝 걸어야 하지만)으로 경험해 볼 수 있다니! 아우, 나는 이런 포인트에서 '부자 된' 것 같은 충만감을 마구 느낀다.  


종달리746: 북카페, 2시간 30분의 책 읽을 여유


(좌) 종달리746 (우) 우산을 꽂아주세요!


들어서자마자 '우와, 예쁘다'가 절로 나온다. 공간마다 느낌이 다르다. 새책과 헌책이 공존한다. 책에는 포스트잇들이 달려있다. 주인장님의 사색, 여기에 머물다 간 손님들의 감상이 담긴 메모들이다. 아니, 심지어 커피도 예쁘고 맛있다! 이렇게 멋진 공간에서 나의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난다.



검은 돌담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리에 앉아 <바람이 쌓은 제주돌담>이라는 사진집을 펼쳤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돌담의 곡선 사이에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김성라 작가님의 <고사리 가방>도 읽는다. 제주의 봄, 고사리 장마라 불리던 비가 온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여기저기 앞치마에 토시를 착용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이던 기억이 벌써 추억이 되어버렸다.


내친김에 김성라 작가님의 <귤 사람>까지 읽는다. 아직 제대로 된 제주의 귤철을 보내지 못했지만 작가님의 만화 속에 폭 빠져 읽다 보니 이미 마음은 따뜻한 겨울이다.


이다음에 육지살이 할 때가 되면 귤 철되면 귤 따러, 고사리 장마즈음엔 고사리 끊으러 오고 싶다. 넘실대는 메밀밭에 경계지은 검은 돌담따라, 돌담 키를 넘어 몽글몽글 피어낸 수국길 따라 뒷짐 지고 슬렁슬렁 걷고 싶다.


소심한 책방: 숨겨둔 책을 열어볼 낭만 대신 스스로 선택할 용기



다음은 서점이다. 소심한 책방 표지판을 따라 샛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보인다. 이곳은 제주올레 1코스 길이라 서점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은근히 길목을 지나는 사람이 있다. 서점을 들어서려는데 "경축 10주년"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책방 안의 공간은 미로 같다. 벽을 따라 둘러진 책장 말고도 창 뚫린 방들이 숨어 있다. 책장이 없는 벽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는 숨겨둔 책도 있고, 숨겨둔 공간도 있다. 숨겨둔 책에 대한 소심한 책방 측의 수수께끼 같은 소개를 보고 골라 살 수 있다. 어떤 책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책을 구입하는 것. 의외로 이런 스릴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소심한 책방 베스트셀러 Top 15 중 두 권을 제외하면 모두 숨겨진 책이다. 나는 좀 낭만이 없는 사람이라 낮은 확률에 기댄 로또도, 내가 낸 돈 보다 더 값나가는 물건이 무작위로 들어있다는 랜덤박스도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골랐다. <당신은 당근을 싫어하는군요, 저는 김치를 싫어합니다>라는 소심한 책방 제작 서적.

음, 낭만 대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책약방: 스치는 사람들의 책 치유 시간이 되길



내가 언젠가 한의원 원장이 된다면 한의원 한켠에 책약방을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진짜 책약방이 여기 있었네. 24시간 연중무휴. 도대체 여긴 누가 관리하고 있는 것일까? 비가 들이치면 어떡하지? 누가 방충망을 안 닫고 가서 밤새 벌레들이 온통 가득하면 어쩌지?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거지?


어딘가 차를 대고 그냥 걸어갔더라면 금방 찾았을 텐데,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차로 빨리 찾겠다고 하다가 그만 지나쳐버렸다. 아주 작은 곳이다. 걷다 만나면 더 반가울 것 같은 그런 곳. 작은 공간이지만 발 밑에서부터 고개를 훌쩍 들어야 볼 수 있는 곳까지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먼저 온 손님들이 있었다. 한 분은 가운데 책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한 분은 실로폰을 뚱땅뚱땅 두드리고 있었다. 책상을 둘러 조심조심 걸으며 구경하고 나왔다. 아무래도 여긴 배고플 때가 아니라 아플 때 와야 할 모양이다. 약방을 등지고 영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좀 어색하다.


종달리 책방으로 오세요.


겨우 한나절도 채 안 되는 시간을 보냈는데도 마치 긴 여행이 끝난 기분이다. 종달리 삼거리에서 인심 좋아 보이는 할머니가 말아주신 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고, 하교할 아이들을 데리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아쉽다. 이 여행, 내일 또 할 수 있는데도 그렇다. 배가 부르니 더 그런 것 같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데, 종달리 책방투어를 하고 나니 마음은 배부른데 배는 고파진다. 더 머물고 싶고, 오래 머물러도 고플 것 같다. 여기 참 좋다.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다 다른 계절에 다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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