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를 깊이 공부하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디테일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나중에 알게된 것인데 기획자들은 이런 디테일과 일상의 영감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수집하고 기록해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그런 것들을 묶어 책을 내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문득 기획자(혹은 디자이너)들을 위한 영감 수집에 특화된 앱을 만들면 어떨까, 일상의 한 끗들을 기록하는 앱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다른 프로젝트를 하나 마쳤던 터라 "못먹어도 고" 심정으로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 프로젝트는 내 개인적인 니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이 프로젝트에 영감을 준 것들.
1. 별 게 다 영감(2021)
사소한, 스치는, 미미한, 질서없는 모든 생각과 느낌도 때에 따라선,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2. 디테일의 발견(2023)
눈에 힘을 주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 한번 보이기 시작하면 이전의 무감각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것들. 디테일, 다시 말해 한끗이다.
3. 제텔카스텐 메모법
제텔카스텐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연결이다. 이 플랫폼이 태그를 축으로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4. 피카소와 아인슈타인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피카소의 말이다. 창의성의 비밀은 그 창의성의 원천을 숨기는 방법을 아는데 있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기존의 것을 어떻게 변형시키느냐, 어떻게 새롭게 recreate하느냐, 창의성의 본질이다.
5. 브뤼꼴라쥬
스티븐 존슨은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다. 그는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2012)에서 브뤼꼴라주를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브뤼꼴라주는 이미 있는 것들을 가져다 붙여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활자인쇄기는 포도 압착기에 뿌리를, 유튜브는 자바스크립트와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상을 바꿨다는 그 아이폰에도, 새로운 기술은 없었다.
6.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의 UI/UX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졌다. 죽자살자 차별화하기보다는 여기서 딱 한끗만 다르게.
7. 클럽하우스
클럽하우스는 실패한 서비스다. 아주 잠깐 타오르고 말았지만 초대장을 2장씩 주는 시스템+기존 회원들의 승인 등 회원가입 시스템은 버려지기 아깝다. 뾰족한 톤앤무드를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뭐가 어떻게 다르냐고?
서비스 이름부터 그렇지만 기획 단계, 개발 단계에서 스스로 계속해 되뇌였던 건 "딱 한 끗만 다르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악착같이 다르게 만들려 하지 말고, 딱 한 끗만 다르게.
- 태그(#) 중심 SNS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선 반드시 태그를 달아야 한다. 이 태그들은 자동으로 마이 페이지에 올라가는데, 클릭만 하면 해당 태그 게시물들이 한 번에 나오도록 했다. 태그란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올린 모든 태그를 볼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포스트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제텔카스텐 메모법을 사용하면서 얻게 된 인사이트를 녹인 것이다.
- 주제와 목적이 있는 SNS
이 앱이 일반 SNS와 다른 건 '한 끗'이라는 주제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강요하진 않겠지만 일종의 넛지가 되어 양질의 인사이트들이 모일 것이라 기대한다. 단순히 모으는 게 끝이 아니다. 목적도 있다. 이렇게 유저들이 모은 '끗'들은 매달 말 뉴스레터(나중엔 웹 매거진이나 실제 잡지로 만들어볼 계획이다) <월간한끗>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경험상 자신의 인사이트와 이름이 뉴스레터로, 잡지로 묶여 나오는 경험은 유저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강력한 유인이 된다.
- 폐쇄적이지만 안전한 SNS
끗은 클럽하우스처럼 기존 유저들에게 2장의 초대권을 부여한다. 초대권이 없는 경우라면 기존 유저 중 아무나 승인을 해줘야 가입이 가능하다. 이런 식의 허들은 성장이 목표인 스타트업이었다면 분명 양날의 검일 테지만, 나처럼 사업확장이 목표가 아니라면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클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스타트는 끊었다. 어제부터 주변 지인 10여명과 시작해봤다. 한 달 정도 일종의 베타테스트(?)를 돌려볼 생각인데, 과연 생각대로 굴러가게 될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