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가지 않기 위해
이혼하고 한동안은 이혼했다는 외로움, 나 혼자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매일 아침마다 나를 짓눌렀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눈을 뜨면 현실을 자각하는 게 연합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러기를 몇 달, 시간이 힘을 발휘했는지 최근엔 2~3일에 한 번은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조금씩 회복이 되면서 다시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를 실패했던 경험이 이성, 동성을 떠나 앞으로 또 누군가와 이런 관계를 맺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와 건강한 모녀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다시금 확실하게 세워보고 싶었다.
이렇게 나는 나의 결혼 실패과정을 복기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역시나 책에서 답을 찾으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을 읽으며 예시로 설명하는 문제 상황에 전남편과 나를 자꾸 대입하게 되었다. 부부관계에 관한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내 뇌를 꺼내 전남편과 관련된 기억만 깨끗하게 씻어낸 후 다시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기설기 봉합해 놓은 상처를 다시 벌려 내 눈앞에 가져다 대는 게 고통스러웠다. 마음속 심해에 묻어두려 깊이 던져놨던 하나하나의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건져 올릴 때마다 이 아픔에 비해 나는 정작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어쩌나 무서웠다. 왜 전남편은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원망과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 내 상처를 계속해서 마주하는 것이 힘들어 책을 몇 번이나 덮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몇 권의 책을 차분하게 끝내 읽었고 미래의 나를 위해 글을 쓴다.
외도도 시댁과의 불화도 그럭저럭 이겨내고 살아가던 때쯤 정말로 부부관계에 위기가 온건 대화가 없어진 그때였다. 전남편의 사소한 농담조차 한심하게 느껴진 나는 조소로 대답했고 일상의 감정이나 일을 전혀 교류하지 않았다. 아이랑 같이 있다가 아이가 없어지면 우리 둘은 남처럼 따로 앉아 있었다. 마음의 거리만큼이나 몸의 거리도 멀었다. 아이 행사에도 같은 집에 있으면서 각자 따로 출발해 그 장소에서 만났고 아이가 나오기 전까지는 서로 떨어져 앉아있었다. 위험신호가 빨간색으로 요란하게 번쩍이고 있었는데 그냥 아이를 키우는 동반자로 이렇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에서 보듯 몇십 년 동안 마음속으로는 칼을 품고는 겉으로 평화롭게 부부관계를 이어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속내를 드러내는 독한 마음을 내가 계속 품고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사람 관계에서 더 이상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실없는 장난을 치지 않는다는 건 위기의 징조이다. 이때의 위험신호를 받아들이고 적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적절한 노력은 뭐였을까?
첫 번째는 고마운걸 고맙다고, 미안한걸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태도이다. 전남편과 같이 지내면서 100% 엉망진창이기만 하지는 않았는데 가끔 고마운 일이 있어도 고맙다는 말을 꾸-욱 삼켰다. 오기였는지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받지 못 한말을 해주기 싫었다. 지금은 조금은 진솔하고 담백하게 고마워, 미안해 이 한 마디쯤 가볍게 뚝 던져냈으면 지금 이런 반성은 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옳은 말도 상대방의 상태를 고려하며 말하는 태도이다. 당장 이기고 지는 것에 급급해 내 논리를 앞세워 시시비비를 따지려 들었던 것이 미련했다는 생각이 든다. 논리로 상대방을 이긴다고 해도 둘 중 아무에게도 득이 없는 그 싸움을 굳이 왜 했던 걸까. 그 당시에 속사포처럼 쏟아놓은 말들은 나중에 거둬드릴 수도 없었다. 차라리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감정이 가라앉은 후 그때는 이러저러해서 그랬노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존중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말하기는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는 상대방의 감정까지 컨트롤하려 하지 않는 태도이다. 나는 내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이기를 바랐고 내가 즐겁다고 여기는 것들을 똑같이 즐겨주기를 바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비참하다.
지금 생각했던 것들을 잊지 않고 누구를 만나도 행복할 수 있도록, 상처에 두려워하지 않도록 살 계획이다. 어려웠던 첫 번째 책을 읽고 이후로 여러 권의 책을 읽어가며 노력한 나를 칭찬한다. 이제 상처를 가리는 게 급해 대충 덮어 버리는 게 아니라 덧나지 않게 제대로 봉합할 것이다. 흉이 남더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흉이 되지 않도록 지금 당장 살갗을 뚫고 들어가는 바늘을 두려워하지 않아야겠다.
*참고도서
김용태(2017). 부부 같이 사는 게 기적입니다. 덴스토리.
낸 실버, 존 가트맨 저(2014). 가트맨의 부부 감정 치유. 을유문화사
법륜, 김점선(2018). 스님의 주례사.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