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전남편과 살던 집에서 아이와 나와 지내면서 이혼의 슬픔도 슬픔이지만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불안은 하루하루 나를 좀먹었고 무기력, 혼란, 자책감..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몰고 왔다. 그때 마침 같이 일하는 동료가 공인중개사 공부를 같이 해보자고 권유했다. 이런 불안의 굴레를 과감하게 끊어내고 싶었던 나는 작년에 직장과 대학공부를 병행하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동생이 생각나 연락을 했다. 동생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지만 통화 이후로도 시작을 해야 하는지 계속 망설였다. 지금 이 순간도 힘든데 또 삶을 위해 노력까지 해야 한다는 게 버겁기도 하고 굳이 내 직업과 관련 있는 자격증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아는 사람이 공부를 포기해 40만 원에 책과 강의를 모두 살 수 있다며 시작을 해보라고 이야기했다. 생전 접해보지도 못한 자격증에 대해 알게 되고 권유를 받고 강의를 구매하기 전까지 마치 바람에 휩쓸려가듯 모든 상황이 나를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나아가고 있었다.
2월부터는 설렁설렁 강의를 들었다. 어떤 것에 치열하게 임할 힘이나 열성적으로 덤빌 힘은 없었지만 강의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내가 처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어 좋았다. 아이와 함께 책상에 앉아 공부의 어려움을 토로하다가 서로를 격려하는 대화도 좋았다. 하지만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모든 행위가 그렇듯 코로나에 걸린 4월부터는 일주일에 몇 번, 5월부터는 한 달에 몇 번 정도 겨우 강의를 들었다. 여름방학 때라도 집중해서 듣자 결심했건만 여름방학 때 쉼표를 찍지 않으면 정말 고갈되어 버릴 것 같아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9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추석 연휴 내내 밀린 강의를 듣기로 계획했다. 빡빡한 강의 스케줄을 보며 소화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볼 여유도 없었다. 강사는 3월에 공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지금부터 계속 반복하면 합격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나의 시간은 9월이었다. 끝없이'미리 할걸.. 미루지 말걸.. 조금이라도 들을걸' 후회하면서도 오늘도 계획한 양을 채우지 못하고 미루게 되었다. 애초에 물리적인 시간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리한 계획을 세운 탓이기도 했다.
강의를 5강쯤 연속해서 들으면 더 이상 내용이 머리를 통과하지 못하고 귀에서 멈춰버린다. 그러면 조금 쉬었다가 1.2배속으로 했다가 1.6배속까지 속도를 올린다. 소리를 따라가느라 집중력을 발휘하다가도 덜커덩. 또 멈춰 버린다. 그렇게 계속 멈춰버린 뇌를 깨워 다시 시동을 걸고 또 걸고를 반복하니 추석 연휴가 끝나버렸다. 수능을 앞두고, 임용고시를 앞두고 추석 연휴를 비슷하게 보냈던 과거의 내가 떠오르고 지금 이렇게 공부를 할 수험생들의 마음에 공감했다. 송편하나, 전하나 먹지 못하고 꽉찬 달을 보며 소원을 비지도 못한 우리가 처량하기도 하다.
추석 연휴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쉼과 공부 둘 중 하나였다. 연휴가 끝나가는 지금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 시간에 뭐라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들어야 할 강의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도대체 이 강의를 다 듣고 시험장에 들어갈 수는 있는 건지. 내가 내용을 흡수하는 공부를 할 시간은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끝까지 해서 지금의 처량함을 뿌듯함으로 바꾸고, 1차만이라도 합격했다고 동생에게, 가족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먼 훗날의 내가 이혼마저도 공부로 승화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