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단상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해 모든 계절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중 유독 봄, 가을은 더 무겁게 다가온다. 봄은 설레고 가을은 쓸쓸하다. 올해도 처서가 지나자마자 서늘하게 닿는 공기의 온도로 가을이 왔음을 알았다. 꺼내놓았던 선풍기를 정리하고 에어컨에 커버를 씌우는 일상 속 행동에서도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혼할 때는 겨울이었는데 어느새 봄이 생동하고 여름이 밝게 빛나더니 옷깃을 여미는 가을이 온 것이다.
매년 가을이면 허한 마음을 붙잡고 가을 풍경들을 눈에 담으러 다녔다. 마음속에 어떤 부분이 뚫렸는지 모르는 채 다니는 가을은 무얼 채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헤매게 된다. 아니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면 마음이 찢겨 흔들리는 나를 보면 사람을 이렇게 감성적으로 만드는 가을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 마음을 호르몬이나 과학적인 현상으로 설명하는 게 꼭 맞는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을 탄다”는 말로 불리는 이 현상이 호르몬이나 일조량, 계절성 우울증으로 증명이 되기도 하는 걸 보면 비단 나만 가을에 이런 절절한 고독을 겪는 것이 아닌 것이다.
1년으로 치면 겨울엔 1년을 계획하고 봄과 여름은 힘차게 내달리고 가을쯤부터는 1년 동안 노력한 일의 성과가 보이기 시작한다. 또다시 겨울이면 성과를 정리하고 새로운 1년을 준비한다. 내 삶뿐 아니라 곡식도, 열매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달도 추석이 되면 꽉 차올라 완연하게 둥글다. 이 풍요로운 계절에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건 왜일까? 어쩌면 겸허하게 주변을 돌아보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풍요에 휩쓸려 둥둥 떠있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나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우주가, 이 계절이 나를 중심으로 나를 위해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면 본의 아니게 주변을 챙기지 못할 때도 있고 실수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가을의 고독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내 쓸쓸함을 거울삼아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돌아보고 손길을 건네게 된다. 떨어진 낙엽을 주워 이리저리 살펴보고 깨끗하게 씻어 책 사이에 두고 말리는 하나하나의 행동 속에 깊은 생각이 깃든다. 나만 보지 않는 것, 주변을 살피며 균형을 찾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렇게 나의 가을은 풍요와 고독이 공존하며 기록된다.
[ 사진첩에는 여름의 푸르름이나 봄의 따뜻함, 겨울의 차가움보다는 가을 풍경 사진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