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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투명 Sep 13. 2021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트빌리시인데요.


이곳에서 2년을 지냈다고 하면, 사람들의 눈이 똥그래진다. 여기서 공부나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렇게 오래 있냐고 물어보면, 사실할 말은 하나 뿐이다.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까요?"



그러니까 시작은 이랬다. 스무 살 이후 처음으로 부모님+엄마 아들과  달 살게  나는  지쳐있었고,

박사과정을 하고 있던 친구는 방학이 돼서 어디든 떠나야겠다고 들썩거리던 상태였다. 우린 여행지에서 친구가 됐고, 한번 통화를 하면 2시간은 디폴트인  통하는 사이여서, 여행을 같이해도 싸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여름이었고, 가난하지도 부자이지도 않은 적당한 재정 상태였고, 꽤나 지루했고,   유럽을 좋아했고 그랬기 때문에 안 가본 이 별로 없어서 적당한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가고 싶은 곳을 서로 읊어만대다가, 목적지를 폴란드 크라쿠프로 정했다. 한 달간 크라쿠프의  숙소를 에어비앤비를 잡았고, 스탑오버로 무료로 제공해주던 근사한 아부다비 호텔에서 조우해 여행을 시작했다.




한 달 정도 되는 기간이었기에, 여름옷만 대강 싸서 배낭을 절반 정도만 채우고 집을 나섰다. 부모님은 이미 나의 방랑벽에 이미 익숙한 상태라, 흔쾌히 보내주셨다

(아마 그 흔쾌함 속에는 딸을 2년 동안 못 볼 거라고는 예상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을 것이다..)

한창 사업이 진행 중이었기에, 형제들에게는 에스토니아 비자, 세금 어쩌고 하면서 핑계를 대었다.


 달간 친구와 지내다가 친구가 먼저 돌아갔고, 조금만  지내다 가야지, 하다가 독일+폴란드에서 3개월을 채웠다. 비자 문제로  EU 국가에 가야겠다고 생각해 스카이스캐너 everywhere(사랑한다) 돌리다가, 눈에 조지아가 들어오게 된다. 뭐든 시작이 그렇게 되기도 하는 거다, 우연하게.




태국에 있을  마드처럼 지내는 친구들에게서 조지아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들었었다.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 것은 360일의  비자 기간이었다.

태국에서 지낼 때는 3개월 이후에 비자 런을 했어야 했기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360일의 비자를 제공하기에,   정도  편히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같다, 그렇게 달랑 몇만 원을 주고  편도표로 조지아에 입국하게 된다.




사실  개의 조건만 채워진다면, 도시가 어디든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지금 트빌리시의 사부탈로 어느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쓰고 있는 나를 집어다가 홍대 스타벅스에 앉혀놔도 오늘과 내일의 일상은 찍어낸 듯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커피와 빠른 인터넷, 귀여운 고양이, 쾌적한 , 나무 많은 산책로 정도면 삶의 만족도 90% 채워지는 단순한 삶인 거시다. 물론 그것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단순하지 않고, 트빌리시에서는  많이 절감할 수가 있다. 아마도 홍대의 1/2 수준으로?




사람마다 삶의 조건은 다를 텐데, 그걸 정확하게 알려면 여러 도시에서 수난을 겪어가며 깨닫는 수밖에 없는  같다. 모든 조건이  채워져도 이건 절대 양보할  없어! 하는 것도 있는데, 나의 경우는 어릴  개한테 물린 적이 있어서, 개가 사나운 도시에서는   없다.

(치앙마이의 개들은 정말 미친 듯이 사나워서, 바이크를 계속 탈 수밖에 없었다)

트빌리시에는 개들이 많지만, 개의 탈을 쓴 양처럼 순해서 점점 트라우마도 극복 중이다.


예전이라면 2 동안 이곳저곳 다니며 사람들을 많이도 만나고 다녔던  같은데, 코비드 탓도 있지만, 늙고 낡아서 풍화 중인 나는 그새 새로운 사람이나 여행지 등에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되었다. 적당한 거리감을 지키며  할 일만 하며, 풍경처럼 스치듯 지내기엔 트빌리시는 좋은 대안이   있을  같다.

이곳엔 전 세계에서 몰려온 많은 노마드들이 살고 있는데, 사실 이들과 친해질 만하면 금방 떠난다. 또한 현지인들은 나보다  심하게 풍화 중이거나, 밤새 술을 같이 마실 체력 정도는 있어야 친해질  있다. ㅋㅋ


사실 트빌리시로 다시 돌아온 지 2달도  되지 않았다, 그동안은 조지아의 바투미라는 작은 바다도시에 1년 동안 살았다. 락다운 동안 바투미에 갇혀있으면서 자주 했던 생각은 ‘글을 써야지’ 였었다. 기록을 남겨두지 않으면 이곳에서의 일들과 감정 또한 모두 언젠가 없어져버릴지 모른다, 하루하루가 너무 닮아있고 큰 사건이 없는 평온한 일상이어서 더 조바심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게으른 나는 지금에야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적게 돼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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