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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투명 Oct 07. 2021

이게 다 조지아 고양이가 귀여운 탓이다



이스탄불에 잘 다녀왔다, 이번 방문은 여행과 동시에 사전답사가 목적이었다, 터키로 이사를 갈까 예전부터 고민 중이었기에 이사 전에 살짝 구경만 해볼까 했던 것. 도착한 첫날에는 당장 이사 와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이스탄불과 사랑에 푹 빠졌다가, 며칠이 지나자 그 마음이 약간 시들더니, 여행 끝날 즘에는 빨리 조지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사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한 나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난 내가 조지아에 그리 애정이 없는 줄로만 알았지, 오랜만의 여행을 끝내고 빨리 돌아가고 싶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 이게 다 조지아의 고양이가 귀여운 탓이다. 물론,, 터키의 고양이도 엄청나게 귀엽다. 그렇지만 1년간 어화둥둥 키운 내 고양이만 할까. 나는 지금 두 마리의 고양이를 반려하고 있다. 2-3주 때 우리 집에 입양 온 회색 빛깔의 자매 고양이다. 바투미에 살던 때에 우연히 현지 페이스북 그룹에서 삐쩍 마른 새끼 고양이의 사진을 보게 된다, 누군가 쓰레기통에 버린 걸 발견해서 자기 집 정원에 뒀다는데 본인은 키울 수가 없어서 주인을 찾는다는 글이었다. 글을 보고 처음에는 걱정만 하고 넘어갔는데, 그 뒤로도 입양을 못 가는 건지 며칠 동안 계속 사진이 업로드되었다. 눈과 귀만 커다란 건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이리라. 신경 쓰이는 마음에 오천 번쯤 고민을 하고, 결국 녀석들을 입양하게 된다.




누군가 내가 사는 방식을 '디지털 노마드'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이게 영 손가락 오글거리는 표현이라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랩탑만 가지고 일하는 방식을 굳이 정의하자면, 저 표현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삶에 고양이 두 마리라니, 사실 디지털 노마드라고 불리는 생활을 반쯤은 포기한 셈이다. 사실 어디 고양이뿐이겠는가, 반만 채웠던 배낭이 이제는 제일 큰 캐리어 2개에 큰 박스 3-4개를 채워 넣어도 부족할 만큼 살림살이가 늘어놨다. 커피 머신에 로봇청소기까지 갖추고 사는 주제에 나 디지털 노마드요 하기에는 좀 민망한 감이 있다.




여행자 vs 생활자는 쇼핑을 하는 순간 결정된다


한곳에 머물며 오랫동안 생활하는 게 여행 트렌드가 된지는 한참 되었다, 에어비앤비의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브랜드 캠페인이 제대로 먹혔다. 한 도시에서 길게 생활을 하다 보면, 오만가지 물욕과 마주하게 된다. 여행에서 생활로 바뀌는 순간, 눈에 차지 않는 것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게 다 취향의 문제이다. 만약 요리를 위해 평범한 흰 소금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느새 히말라야 어쩌고 핑크 소금과 트러플 소금 같은 걸 주섬주섬 사게 된다면.. 축하한다, 이제 현지인이 다 된 거다 ㅋㅋ




또한, 계절이 한두 번 바뀌면 앞으로 여행자로 살 것인지, 생활자로 살 것인지 결정해야 될 순간이 온다. 계절이 바뀌면 그에 따라 짐도 늘고, 생활방식도 바뀌는데, 마음에 차는만큼 양껏 사들일지 아니면 없으면 없는 대로 버텨볼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코비드가 오기 전에는 이 생활이 길어질 줄 예상을 못 했기 때문에, 캐리어 정도의 짐으로 버티다가 코비드 이후에 완전히 항복을 하고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모든 항공편이 끊겨서 해외로 돌아갈 길도 없었고, 사실은 별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못 먹어도 고'라는 지혜로운 선조님들의 말을 사랑한다)



마당냥 홈즈와 루팡



요리와 커피, 옷에 대한 취향은 채우는 선에서, 인테리어, 이외 패션잡화, 화장품 등에 대한 취향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옷은 잘 차려입었는데, 3천 원짜리 슬리퍼를 신고 나가는 일이 종종 생기곤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직까지는 여행자와 생활자의 반쯤에는 걸쳐있고 싶은걸...

그치만 사실 조지아 고양이가 귀여워서 다 망했다. 벌써 마당냥이만 5마리라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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