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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림스케치 Jan 31. 2022

전 재산 털어서 샀어

상추가 얼었으니 할머니는 얼마나 추웠을까?

<전 재산 털어서 사온 상추>


"띠 띠 띠 띠리리~"

친구 만나러 나갔던 딸아이가

현관문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선다.

오른손에 든 검정 비닐봉지를 수줍게 내밀며,

“혹시 우리 집에 상추 필요하지 않아?" 라며 묻는다.


"웬 상추? 어디서 났어?"

물어보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 집에서 얻어 왔나?

아님 오는 길에 아시는 분이 주셨나?'


딸아이는 민망한 듯

엿가락 늘어지듯 말을 수줍게 했다.

"아니~그게 아니라~

지하철에 내려서 올라오는데~~

입구에 할머니가~

옷도 얇게 입으시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상추를 팔고 계시는 거야~

날은 어두워지고~

밤이라 더 추워질 텐데~

그래서 내가 사 왔어.~"


그렇지 않아도 한 덩어리 남은 고기를 딸아이 돌아오면 구워주려고 했었다. 상추 사러 나가려니 추워서 그냥 김치에 싸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오늘 날씨 최저 영하 9도씨. 마음 온도 최고 100도씨.


"그랬어? 그럼 다 사 오지? 할머니 일찍 귀가하시게..."


딸아이가 또 엿가락 늘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실은~ 남은 돈이 천 원 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천 원어치밖에 못 샀어.

전 재산 털어서 산거야~”


그때 남편과 나는 빵 터졌다. 엄마의 입장에서 예비 고3 학생의 손에 검정 봉지를 들고 버스를 타고 많은 인파를 뒤로하며 거리를 활보했을 생각을 하니 씁쓸한 웃음이, 기특한 웃음이 교차되었다. 


돈을 어디에 다 쓰고 천 원만 남았는지 캐묻고 싶은 마음이 목청까지 올라왔지만 삭혔다. 감동적인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 감동 파괴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이고 잘했네! 기특하네! 어서 손 씻고 밥 먹자.”


묶인 검정 봉지를 풀며 여린 상추를 뒤적이며 살펴보니 직접 키우신 상추였다. 시중에 판매되는 상추와 크기가 달랐다. 손바닥보다 작은 상추는 화학비료 없이 정성으로 키운 것 같았다. 상추에 볏짚 지푸라기가 묻어 있는 걸  보니 짚으로 덮고 비닐을 씌워서 당신 드시려고 키우다 양이 많아 지하철 역 앞에 팔러 나오신 모양이다. 영하의 날씨에 상추가 살짝 얼었는데 할머니는 얼마나 추울까? 상추 얼기 전에 다 팔고 귀가하셔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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