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이기는 게 아니라 채워나가는 거야. 산다는 것은 시간과 더불어 앞으로 나아가는 거고. 이건 곧 삶에는 불가피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시간을 상대로 승부를 거는 것은 무모한 일이야. 이길 수가 없거든. 그래서 나만 되거든. 마음이 급해질수록 천천히, 언젠가 시련의 날들이 지나 편히 숨 쉴 수 있을 날을 그리며 초침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때로는 그게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하거든.
사랑도 삶의 일부니까 끈기 있는 인내와 포기하지 않는 뚝심이 필요한 것이었어. 그런데 말이야 사랑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이라는 내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는지 어리석게도 나는 사랑에 시련이 없을 줄 알았어. 아니, 너와의 사랑은 그럴 줄 알았어. 너는 특별했으니까.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전쟁하듯 지켜내야 하는 게 사랑이었어. 그렇게 지켜내고 나면 파김치가 되어 더는 못하겠다 싶은데도 네 얼굴 보면 웃게 되는 게 또 사랑이기도 했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 줄 몰랐기에 고비가 있을 때마다 타서 녹아버린 가슴을 앞에 두고 마치 사랑이 전소된 것처럼 꺼이꺼이 울었어.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다고 울면서 외쳤었는데. 마음이 이렇게까지 아프면 슬픔으로 심장이 멎어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는 어느 날 문득 살아있음의 흔적을 알려왔어. 그것으로 너는 그리움과 걱정으로 메말라가던 내 어깨를 내 어깨를 토닥여 줬어.
한참 만에 발견한 너의 흔적을 보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 눈물이 흐르니까 심장에 피가 돌고 피가 도니까 온기도 감돌더라. 네가 무사한 것만 확인하면 어떤 욕심도 내지 않기로 했으니까 너를 보고 싶어 하지 않기로 했어.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속에서 내내 너의 무사함을 확인할 수 있기만 기도하였고, 신은 그런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어. 다른 것은 욕심내서는 안 됐어. 물론 그럴 리는 없다고 믿었지만 설령 네 옆에 다른 여자가 있다고 해도 그것마저 괜찮다고 생각했어.
살아있으면 됐다는 생각이 드니까 눈물이 나더라. 네가 쓰러지기 전 꿈에서 널 본 후 펑펑 울며 다짜고짜 너에게 말없이 사라지면 안 된다고 소리쳤던 그때처럼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어. 너무 많이 울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고 말도 나오지 않았어. 네 가슴에 눈물을 쏟아내며 나에게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미안하지만 우리에게도 언젠가 죽음이 오면 나보다 한 시간만 더 늦게 눈감아 달라고 속으로 외쳤어. 그때는 너를 붙들고 울 수 있었는데 내게 가슴을 내주는 너로 인해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공포를 잠재울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
있잖아, 눈물이 너무 많이 날 때는 슬픔의 칼이 심장을 파고드는 것 같은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지는 거 알아? 마음이 아픈 게 몸으로 나타날 때의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이 지독하고 잔인해. 그날 너는 네가 문득 사라져 버릴까 봐 하얗게 사색이 되어가는 나를 차분한 손길로 매만지며 끝없이 괜찮다고 말해 주었어. 나는 그런 네 손을 꼭 잡은 채 온몸을 부들거리며 울었고. 지금은 주체할 수 없이 몸이 흔들리는데도 이 떨림을 진정시켜 줄 네가 보이지 않아. 사실은 네가 내 곁에 없어서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것 같아. 슬프고 무섭고 두려워. 그래도 괜찮아. 네가 어딘가에서 어둠의 시간을 버텨내고 있음을 알려왔으니까. 그거면 된다고 신께 약속했으니까.
네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건 나는 내 마음을 너의 행복과 사랑, 안정에 관한 바람으로 가득 채우고 있을 거야.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남루한 내 마음이 먼먼 어디에선가 홀로 애태우고 있을 너의 영혼의 양식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있어 줘. 그게 너의 나를 위한 일이니 너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 온전한 너 인 채로 시간의 물레를 돌리고 있어 줘. 그 물레가 돌고 돌아 기다림의 실이 지구를 휘감을 지경이 되어도 나는 괜찮아. 허니 지금은 그냥 그대로 있어 줘.
어디에도 지기 싫어하는 거 알아. 그래도 지금은 시간을 넘어서려 하지 말고 이 시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천천히 함께 걸어가자. 우리를 둘러싼 이 부당하고 불가사의한 흐름을 이 사랑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마주해 보자. 지금까지도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다는 감각 속에 우린 같은 시간 다른 곳을 함께 걸어왔으니 어떤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해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나를 위해 죽을힘을 다해 견뎌 줄 너를,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다 걸고 버텨낼 나를 믿어.
당장이라도 달려오고 싶겠지만 아직은 뛰어서는 안 돼. 지금 전속력으로 달려버리면 시간이 더 어긋나 버릴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한 걸음씩 발을 앞으로 내딛는 거야. 아이가 첫걸음을 떼듯이 말이야. 견디는 것이 쉽지 않기는 하겠지.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 못하는 성격이니 조바심도 날 거야. 그 모든 게 날 위한 마음 때물이란 거 알아. 그런데 지금은 아냐. 나에게 멋진 남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대며 상황에 휘말리는 남자가 아니라 페이스를 조율하며 상황을 통제할 줄 아는 남자니까 지금은 내가 늘 너에게 전했던 'BE PATIENT' 이 두 단어를 가슴에 새겨줘.
나에게는 네가 인생을 마주해 걸어온 시간 그 자체가 선물이었어. 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떨어져 있더라도 네가 나와 같은 시간을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나에게 귀한 선물을 준 거야. 빨리 돌아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돼. 죽을 만큼 보고 싶지만 참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참아 줘. 가만히 그 자리에 머물러 줘. 지금은 그게 필요해.
너에게 혹독한 시련을 준 신을 원망했었는데 오늘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해. 너와 나에게 닥친 이 시련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너를 이렇게 무사히 지켜주셨으니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알려 주시겠지. 그리하여 먼 훗날 지금을 뒤돌아보며 어쩌면 우리는 이 시간을 너와 나에게 주어진 보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몰라. 우리의 사랑을 세상에 다시없을 신화로 만들어내기 위한 신의 특별한 선물이었다고 생각하며 신에게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지도 몰라.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나는 그거면 충분해.